brunch

노원역 2번 출구에서 보석을 캤다

좋은 사람을 만난다는 건

by 이민혁

휴대폰을 새로 장만하고 예쁜 케이스를 인터넷에서 샀다.

역시 새 휴대폰에는 새 케이스였다. (대만족) 케이스를 새로 장착하고 나니 액정에도 보호장비를 붙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액정 보호필름은 제품을 사서 직접 붙이기에는 큰 모험이었다. 실패하면 돈만 날리는 것이니까. 외출 시 액세서리 매장에 들러 액정 보호필름을 구입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며칠 후 마침 책을 여러 권 살 일이 있어서 알라딘 서점을 가야 했다. 검색을 해보니 내가 있는 곳과 가까운 알라딘 서점은 노원역에 바로 있었다. 원하는 책도 알라딘 노원역점에 있었다.



회사에서 써야 하는 연차를 쓴 어느 날 노원역으로 가서 책도 사고, 맛있는 것도 먹고, 핸드폰도 꾸밀 생각으로 하루 일과를 짜 놨다. 노원역에 도착하자마자 혹시나 책이 팔렸을까 하는 마음에 책을 먼저 바로 샀다. 백화점이 있는 번화가 쪽으로 들어가서 맛있어 보이는 맛집을 둘러보기도 하고 인터넷으로 검색도 해보았다. 식사를 한 후 휴대폰 액정필름을 붙일만한 곳을 둘러보았다. 휴대폰 액세서리 집은 다들 비슷해서 검색해볼 것 까지는 없었고 둘러보고 좋은 데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상대로 많은 휴대폰 액세서리 집들이 즐비해 있었다. 혼자 생각에 "한 돈 만원이면 튼튼하고 좋은 걸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몇 군데를 둘러보기로 했다. 매장 외관엔 "휴대폰 액정 5000원"이라고 쓰여 있었지만 그래도 튼튼하고 쓸만한 것을 사려면 "만원"정도는 써야겠다,라고 생각했다. 한 가게를 들어가자 점원이 적극적으로 설명을 해주는데 무슨 종류가 이렇게나 많은지 정신이 조금 없었다. 그리곤 가격을 듣고 살짝 벌어진 입으로 몇 초간을 말없이 정지했다. 보통 2~3만 원이고 비싼 건 5만 원 가까이하는 것도 있었다.



"아... 이건 좀 아닌데..."

"휴대폰 액정 보호필름을 몇만 원이나 주고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한참을 맴돌았다.

서너 곳을 둘러보았지만 가격은 모두 비슷했다.

그래서 일단 이건 아닌 것 같아서 "그래, 인터넷을 한번 더 보고 천천히 알아보자."라고 생각했다.

(요즘은 휴대폰 출고 시 얇은 비닐로 덥여 있는 게 그냥 비닐이 아니고 기본 덥게라고 한다.)

당장은 튼튼한 휴대폰 액정필름을 사지 않아도 괜찮다는 생각에 돌아서서 귀가를 하려고 했다.

번화가 쪽을 누비며 역 쪽으로 향하는 대로변 길목에 아주 작은 휴대폰 액세서리 가게가 보였다.

그냥 간단히 물어나 보고 가자, 라는 생각에 들어가자마자 용건만 간단히 말하려고 입을 때려는 순간,

일하시는 분께서 선반을 위태롭게 잡고 어쩔 줄 몰라하고 계신 것을 보았다.

나는 길게 생각 안 하고 한 손으로 선반을 잡고 말했다.


"핀으로 고정하세요."

그러고 나서 그분의 모습을 순간 스캔했는데 몸이 약간은 불편해 보였다.

그분은 흔들리는 선반을 쉽게 고정하지 못하고 다시 내려놓곤,

"아... 어쩌지... 죄송합니다. 어떤 게 필요하세요? 먼저 봐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아니에요. 잡아드릴 테니 하던 거 계속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분은 감사하다며 부자연스러운 몸짓으로 선반을 떼어서 바닥에 내려놓은 후

"죄송합니다. 손님. 어떤 거 찾으세요?"라는 말을 정말 죄송함이 가득 묻어 있는 말투와 동작으로 하셨다.


나: 아 네. 이거 액정 보호 필름 붙이려고요. 가격만 알고 싶어서요.

직원: 휴대폰 기종이 어떻게 되세요?

나: 네. ㅇㅇㅇ입니다.

직원: 기본 강화 필름으로 붙이시면 되겠네요. 더 좋은 것도 있지만 가격만 비싸고 큰 차이도 안 납니다.

기본 필름은 1만 원입니다.

나: 아~네.



아~네. 하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이제껏 둘러본 다른 곳보다 반이상은 저렴했다.

같은 제품인데 어떻게 반 이상이나 저렴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짧게 한 후 "붙여 주세요!"라고 말했다.

직원분은 바로 앉아서 작업을 시작했다. 역시 전문가라서 다른 것 같았다. 앉은 지 2~3분 만에 정말 깔끔하고 깨끗하게 강화 보호 필름이 붙었다. 정말 마음에 쏙 들었다. 작은 가게에선 일부러 되도록 현금을 내려고 만 원짜리 한두 장은 들고 다닌다.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꺼내서 건네드리고 뒤돌아서 나가려는데 직원분이 불렀다.


직원: 저기 잠시만요. 아까 너무 감사해서 2천 원 깎아드릴게요. (주섬주섬하시더니 천 원짜리를 꺼내셨다.)

나: 아니에요! 별것도 아닌데요. 괜찮습니다.

직원: 아... 저기 그래도 제가 너무 고마워서요. 깎아드리겠습니다.

나: 아니에요. 진짜 괜찮습니다. 다음에 또 오면 잘해주세요.^^


라고 끝 말을 흐리며 가게를 나왔다. 짧은 순간의 대화였지만 나는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의 표정과, 몸짓, 말투 하나하나가 정말 감사함이 묻어났고 진심이 우러나오는 눈빛이었다.

불편한 몸으로 허리를 충분히 굽혀 손님을 배웅하는 모습도 흔치 않은 모습이라 인상에 깊이 남았다.

그리곤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생각했다. 요즘 보기 드문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착한 사람, 선한 사람,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그저 돈 만 원짜리 휴대폰 액세서리 하나를 샀지만 뭔가 좋은 사람을 만났다는 기분과 느낌의 여운은 하루 종일 비눗방울과 꽃가루가 떠다니는 숲 속을 걷는 느낌이었다. 다음에 또 올 일이 있을진 모르지만 휴대폰 관련된 액세서리는 꼭 여기에 와서 사고 싶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물건을 소중히 다루는 기본적인 성격이어서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흘리거나 떨어트리는 일은 일상에서 거의 없는 나다.

그런데 어느 날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액정 한쪽이 쪼개지면서 금이 파바박~갈라졌다. 액정 필름 때문에 다행히 휴대폰은 멀쩡했다. 속으로 많은 욕을 했지만 겉으론 말하지 않는 나다. "에잇! 노원에 가야겠다!"라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 이삼일 후 서점도 가서 책도 한 두 권 사고 바로 그 가게로 갔다. 들어가자마자 그분이 바로 알아보시고 먼저 인사를 하셨다.


직원: 안녕하세요. 또 오셨네요.

나: 아~네. 기억하시네요. 감사합니다.

직원: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나: (휴대폰을 보여주면서) 다시 해야 될 것 같아요.ㅠㅠ

직원: 어쩌시다가... 금방 해 드릴게요.


2분 정도 흘렀나? 또다시 금방 새 폰이 된 나는 살짝 미소를 띠우며 만원 짜리를 건네드렸다.

그러더니 그분께서,

직원: 또 오셨으니 7천 원만 받을게요.

나: 아이고~아닙니다. 이거 얼마나 남는다고 정말 괜찮습니다.

라는 말과 함께 궁금한 것들을 몇 가지 물어보았다.


나: 사장님은 거의 안 계신가 봐요?

직원: 아~ 제가 사장입니다.^^

나: 아~네. (속으로 아무리 생각해봐도 20대 중반 정도쯤 되어 보였다.) 실례지만 30대는 아니시죠?

직원: 네. 저 20대 중반입니다.

그리곤 한 10분 남짓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다.

너무나 예의 바르고 선한 인상에 마음까지 깊고 따뜻함을 강하게 느꼈다. 그리곤 나도 모르게 말했다.



나: 오랜만에 좋은 분을 만나서 제가 기분이 좋습니다.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사장님 같은 분이 흔하지가 않아요. 실은 저는 글 쓰는 사람이에요. 네이버에 쳐도 나와요. 활동하는 sns가 있는데 가게를 좀 찍어서 올리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직원: 아 그럼요. 정말 감사합니다. (90도 인사를 하심)

나: 근데 유명한 사람은 아니라서 큰 도움은 안 될 거예요. 그저 사장님 같이 좋은 분을 되도록 많은 사람들이 만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잠깐 했습니다.

직원: 정말 감사합니다. 별것도 아닌데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90도 인사를 또 하심)


환한 얼굴로 인사를 드리고 너무나 행복한 마음에 귀가를 한 날이었다. 좋은 사람을 만난 여운은 정말 오래갔다. 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평온함과 평화로움이 소음으로 가득한 일상을 휘감아 그저 포근한 행복만을 전해주었다.



모두가 원치 않는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간다.

모두가 원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아가기는 쉽지 않다.

원치 않은 일상 속에서 원하는 작은 것을 발견하는 것은

보석을 캐는 일과 견줄만한 값어치 있는 소중한 발견이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아름다운 보석을 노원역 2번 출구 앞 어느 휴대폰 액세서리 가게에서 캤다.



< 노원역에 위치한 작은 휴대폰 액세서리 가게 >

노원역 2번 출구
내려와서 좌측으로 유턴하면 보이는 국숫집
몇 발자국 앞에 보이는 GS편의점
편의점 간판 밑에 보이는 휴대폰 액세서리 가게
특별한 간판은 없는 노원역 2번 출구 앞 가게
2~3평 되어 보이는 가게 내부
사장님이 앉아 계신 작은 공간
노원역 폰.JPG 노원역 2번 출구 앞 단무지 폰




keyword
이전 10화작은 전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