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 속에서 피어난 악의 꽃
내가 일하는 직장은 직원이 열명도 안 되는 공공기관이다. 대부분 계약직으로 나이가 있는 분들이 위주이고 2~30대는 거의 없다. 일상에서는 워낙에 타인에게 무심한 성격이라 입사할 당시에도 그리 말이 많지 않았다. 그러나 다른 분들은 서로 잘 지내보겠다고 왁자지껄 매일이 웃음꽃이다. 나는 뭐 그런 분위기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동조하지는 않고 그저 늘 가벼운 미소만 건네는 그런 존재이다.
매일 아침 9시가 되기 전부터 웃음꽃은 창문을 넘어 보도블록에까지 통통 튀었다. 당연히 나쁜 것은 없었다. 각자의 일도 다들 잘할뿐더러 이 사무실을 잘 이끌어가자는 좋은 취지니까. 그러다 한 달 정도가 지난 시점부터 내가 예상하고 상상했던 일들이 하나둘씩 일어나는 것 같았다. 직원분들이 각자의 공간에 있을 때 약간의 불평불만의 눈빛과 작은 말소리가 내 귀에만 들렸다. 그리고 또 한 달이 흐르자 업무 중에 목소리가 높이 치솟는 분위기가 몇 번 있었다. 그리곤 말없이 묵묵히 일하는 내게 그분들은 돌아가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온다. 역시나 매우 곤란한 상황에서 나는 그저 "네~에" "아~그렇죠." "아~어떻게요."라는 말들만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드디어 일이 터졌다. 직원 한분이 퇴사를 했다. 그분의 퇴사까지는 예상 못했지만 굉장히 위태로운 것 같은 상황은 여럿 보았다. 나는 다른 분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많이 하지 않기에 왜 퇴사를 했는지는 한참 나중에 알게 되었다. 어떤 한 분의 지속적인 훈계를 참지 못하셨다고 한다. 그런 큰일이 있은 후로도 이 작은 사무실에선 매일이 전쟁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사소한 것들을 나누는 과정에서 그분들은 삶의 "희로애락"을 진하게 느끼고 계신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도 갚지만 말 한마디로 사람도 죽인다.
하루 종일 한마디 말을 안 해도 불편하지 않은 나는 그들에게 이상하게 보일 것이다. 나도 알고 있다. 나는 그저 말 한마디로 빚진 걸 갚고 싶은 마음도 없고 말 한마디로 누군가를 죽이고 싶은 생각은 더욱 없기 때문이다. 아침에 사무실의 문을 열기도 전에 흘러나오는 즐거운 대화 소리가 그저 즐겁게 느껴지진 않는다. 오늘은 저 즐거운 대화 속에서 어떤 악의 꽃이 피어 나올지 훤히 보이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나누고자 하는 마음은 절대 적당한 선에서 멈추지 않는다.
맛있다며 먹으라는 말과 함께 입에 쑤셔 넣어주는 것을 관심과 사랑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거리"가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걸 알면서도 일상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정은 나눠야 행복하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은 나누는 정에 있는 것이 아니다. 타인이 원치 않는 걸 하지 않고 멈출 수 있는 자기 컨트롤에 있는 것이다. 다르다는 것을 모르고 인정하기 않기에 자신의 만족만큼 타인도 만족해야만 우리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무실 사람들에게 그리 친근하게 대하지 않는데도 가끔 내게 간식을 주면서 먹으라고 한다. 그러면 나는 벌떡 일어나 구십 도로 인사를 한다. 사무실 사람들에게 그리 친근하게 대하지는 않지만 사무실에 모든 사람들이 나를 싫어하거나 미워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서로에게 친근한 그들은 매일 작은 전쟁을 벌이고 나는 그 안에서 종종 의무관 역할을 한다. 아프거나 다쳐서 누가 내게 말을 걸어오면 "괜찮으세요?" "괜찮아질 거예요." "걱정 마세요." 이게 내가 말하는 전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