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책에도 언급했지만 양주를 1년에 1~2병 정도 마신다. 맥주는 한 모금 마시면 취하고, 소주는 너무 써서 한 모금 들이켜면 가라앉았던 알레르기가 튀어 오르는 기분이다. ⠀
술, 담배를 못하는 체질이지만 양주는 아주 조금씩 마신다. 독한 술을 먹는 방법은 주로 얼음과 음료를 가득 섞어서 마신다. 요즘 '하이볼'이라고 부르는 칵테일을 집에서 만들어 마시는 것이다. 이러한 습관은 20년째 지속되고 있다. ⠀
생각해 보니 난 술 자체를 즐기는 것보다 그 취함을 즐기는 것 같다. 그러나 주사가 있는 사람은 극도로 싫어한다. 아주 친한 사이일지라도 단번에 끊고 손절할 수 있는 충분한 이유이다. 내게 취함이란 이성의 끈을 살짝 놓고 정신이 아주 조금만 가볍게 뜨는 상태이다. 뭔가 삶이 늘 바닥에 찰싹 붙어있어서 살짝 떠오르고 싶은 바람이기도 한 것 같다. ⠀
일상의 이런 생각은 꿈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중년의 나이인데도 가끔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곤 한다. 30대까지만 해도 꿈을 컨트롤할 수가 있어서 '하늘을 나는 꿈을 꿔야지'라고 마음먹으면 이삼일 내로 꾸곤 했다. 하늘을 나는 꿈을 꾸고 나면 정말 그날은 몸과 마음, 정신이 깨끗하고 투명해지면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초능력이 생기는 것 같았다. ⠀
이제는 하늘을 나는 꿈을 몇 달에 한 번 꾸기도 쉽지 않다. 나이를 먹은 육체 때문이 아니다. 팍팍해진 세상 때문도 아니다. 한창 순수했던 그 시절의 선명한 기억과 생각들이 희미해져 가기 때문이다. 순수했을 때도 순진하진 않았지만 순진하지 않았어도 순수할 수 있다는 특권을 나는 누렸다. 쓰디쓴 독주를 몸속에 조금씩 흘려보내는 건 미세하게나마 숨 쉬고 있는 순수함을 깨우려는 행위일 수도 있다. ⠀
세상에 순진한 사람은 거의 없다. 순진하다는 건 멍청하다는 것과 동일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순수하다는 건 많은 걸 꿰뚫어 봐야 알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깨질 것 같은 유리의 느낌으로 세상과 사람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 순수한 거라 말할 수도 있겠다. 어쩌면 쓴 독주를 어떻게든 마시고 싶은 심리는 투명한 내가 되고 싶은 건 아닌지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