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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트다움 Dec 01. 2023

Kuhlau Op.55 No.3 1악장

그때의 긴장이 지금의 쉼으로  

어릴 때 동네 학원에서 피아노를 체르니 30까지 배웠었다. 학원에서 노는 것조차 나중엔 지루해져서 끝내는 학원을 그만 다니게 되었지만 그 시절 배웠던 것으로 평생을 어설프게 뚱땅거릴 수 있으니 그것으로 감사하다 싶다. 그 시절 피아노를 다니면서 유일하게 기억에 강하게 남은 추억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콩쿨에 나가기 위해 연습했던 시간들과 콩쿨 무대이다. 음 하나를 틀리고 최우수상을 받았던 것에 아직까지아쉬운 마음남아있을 정도이니 말이다. 그때를 떠올리지금도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과정에 최선을 다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무리 결과까지 세심하게 집중하는 것 또한 못지않게, 아니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피아노를 배우는 것이 재미있지 않았던 이유는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없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악보를 외우는 곡도 없었으니 어느 장소에서고 피아노를 만난 들 칠 수 있는 곡이 없었다. 그 후 살다 보니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까지는 아니었지만 '피아노를 치고 싶다'는 생각이 강렬하게 올라오는 시절을 만나게 되었다. 20대 초반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기 위해 준비하던 때였다. 떠나려니 마음이 적적했던 것이었을까. 이상하게 피아노 앞에 앉아서 코드로 CCM을 종종 뚱땅거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드디어 시카고로 유학을 갔고 처음으로 간 한인교회에서 예배 후 예배당에 아무도 없길래 아주 조용히 피아노로 코드를 쳐내려 가고 있었는데 저기 예배당 끝에서 전도사님 한분이 헐떡거리면서 뛰어오셨다. Youth Group에 반주할 사람을 찾고 있었다며 반주를 해줄 수 있냐고 물으시는데 교회에서 반주를 해본 적이 있어야지. 한국에서의 교회 반주는 전공자들이 든든하게 당해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잘 치지는 못하지만 당장 필요하시다고 하니 해보겠다고 대답을 했고 그렇게 매주 Youth Group 예배 반주를 하게 되었다. 음표도 제대로 있지 않고 코드들만 있는 악보를 받아 들고 매주 '내 맘대로 반주'를 했다. 웃긴 건 하니까 점점 늘기는 하더라는 사실이다. Give Thanks의 위아래 옥타브들을 왔다 갔다 혼자 정말 아티스트라도 된냥 연주하며 혼자 스스로에게 감동도 하고 말이다. 그땐 외로워서도 피아노 연습실을 찾았던 것 같다. 뭐라도 하며 그 시간의 허전함을 버텨야 했던 때라서 잘 치지도 못하는 피아노에 그리도 집착을 하며 단순한 선율이나마 마음에 흘려보냈나 싶다.


그땐 그랬다. 피아노가 쉼이었고 숨구멍이었다.


내 쉼표 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 지금, 마침 타이밍 좋게 집에 야마하 전자피아노를 새로 들였다. 그리고 아이가 피아노 학원에서 연말 연주회를 하기로 했다며 선생님이 골라주신 두 곡을 들고 왔는데 그 두 곡 중 한곡이 바로 Kuhlau Op.55 No.3 1악장이었다. 내 아이의 첫 연주회 곡이 나의 어린 시절 첫 콩쿨곡과 겹치니 신기하기도 하고 그때 생각이 몽글몽글 나기도 하고. 주저함 없이 악보를 펴고 피아노 앞에 앉았다. 신기하게도 기억이 나고 빠른 템포로는 아니지만 악보를 보고 칠 수는 있었다. 그날부터 그렇게 가끔 피아노 앞에 앉아 그 곡을 연습한다. 혹은 최근에 많이 듣게 되는 CCM 악보를 찾아서 코드를 누르며 따라 부르기도 하고 전자피아노에 딸려온 연습곡들을 따라 치기도 한다. 아이의 요청으로 티브이 앞쪽에 주방을 보며 놓인 전자피아노가 평소 내 성격대로라면 눈과 마음에 거슬릴 법도 한데 오히려 반은 내 것 인 것처럼 어쩌다 생긴 손자국을 닦곤 한다.


피아노를 치면서 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 돌아보면 뻣뻣해진 손가락으로 악보를 따라 가느라 정말 아무 생각하지 않음을 깨닫는다. 한가하게 코드만 누르면서도 이 부분에서 어떻게 하면 멜로디와 더 어울리게 코드 위치를 잡을까만 생각하게 된다. 길지 않은 시간이나마 몰입을 하며 그 순간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피아노를 치는 행위가 나의 일에 아무런 영감을 줄 수 없다해도 그 시간이 버려지는 시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고 왠지 모를 뿌듯함 마저 느껴진다.


피아노를 가끔 치기 시작하니 피아노를 연주하는 동영상 콘텐츠만 보게 되도 피아노 선율에 귀를 기울여보게 된다. 댓글에 써 놓은 사람들의 평가를 보면서 이런 연주를 다른 사람들은 듣고 이렇게 말로 표현하는구나 가끔은 공감도 하고 그 어려운 피아노를 저렇게 잘 치려면 얼마나 많이 연습했을까 경이로움에 나도 열심히 살아야지 멘탈도 잡는다. 의도한 느낌과 생각들은 아니었지만 피아노를 친다는 것이 나에게 새로운 활력소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어쩌다가 Hayato Sumino의 New Birth 연주를 듣게 된 날은 다른 사람들에게 링크를 퍼 나르며 공감을 종용하기도 다. 옥구슬 굴러가듯 피아노 위를 움직이는 손가락이 신기함을 넘어 존경스럽기까지 했던 감동을 나누고 싶어서.


지금의 나에게 피아노는 몰입의 쉼이고 귓가가 아름다운 쉼임을 알게 되었다. 강요하는 사람도 없지만 듣기 싫다 하는 사람도 없다. 반드시 달성해야 하는 목표 수준도 없고 남에게 보여줄 무대도 없다. 그저 내가 좋아서 하는 일. 그것으로 남을 돕고자 애쓸 필요도 없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시간을 내가 충분히 누리면 그만이다.



나에게는 몰입의 쉼이 있는가?

그것을 나는 충분히 누리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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