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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트다움 Dec 08. 2023

딱 손에 닿는 날들까지만

일상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한 끄적임

책상에 앉아 가장 먼저 하는 일. 무언가 머릿속이 복잡하고 중요한 것들을 빠뜨릴까 봐 걱정이 될 때 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는 일. 일기도 아닌 것이 어느 한 구석 내 감정이 담긴 것도 아닌데 구석구석 빈 곳을 찾아 내 목표를 향한 몸부림들을 적어 넣고 나면 뿌듯하고 작은 성취감마저 드는 일. 빼어나지 않아도 이것과 관련된 흔적들이 모이면 무언가 그럴듯해 보이는 그런 것.


그건 바로, 플래너에 일정 정리하기. 멀리 앞을 내다보지 않고 딱 손에 닿는 날들까지만.


쉼 디자인 여정에서 논하는 일정 정리라니. 너무나 기계적인 작업이고 쉼보다 일에 더 가까워 보이는 무언가라 이것이 쉼이 될 수 있을까 몇 번이고 생각해 봤다. 그리고 결론은 최소한 나에게만큼은 쉼의 도구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로 4년째 플래너를 구입해서 이미 2024년 플래너를 쓰고 있는 것에는 단순히 필요에 의해서만은 아닌 무언가의 끌림에 의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느낌적인 느낌이 드는 중이다. 생각해 보니 플래너와의 인연은 최근 4년이 아니라 분초를 아끼던 학생 시절부터였다. MBTI와 연관 짓는 것에 흥미가 있지는 않지만 ENTJ의 J가 여기서 설명되나 싶기도 하다.  

4년 동안 컬러 선택을 어쩜 이리 일관되게 했을까.


플래너 구입의 의미 : 일정 정리에서 내년 계획까지

11월쯤 되면 내년 계획을 세워야지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플래너를 사고 싶어 진다. 새 술은 새 부대에. 가끔 들추어 볼 수 있도록 내년 플래너에 내년 계획을 세우는 것이 적합하다는 나만의 논리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만다라트나 비전보드도 아니고 그냥 플래너의 아무것도 없는 페이지에 떠오르는 의식의 흐름대로 새해 목표와 계획을 정리해 나간다. 이 또한 내가 나를 알아가는 과정 후에야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만다라트는 수렴되지 않고 뻗어나가는 듯한 사고를 유발하는 경향이 있어 실천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집중할 사항들로 모아지는 정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나라는 인간에게는 적합한 도구가 되어 주지 못하고 비전보드의 이루고 싶은 것들을 눈앞에 나열하는 방식 또한 목표들 간의 맥락이 중요한 나에게는 맞는 방법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차례 다음 1년을 계획하고 그 1년을 살아보며 신년계획 세우기는 점점 단출해지다 못해 이제는 키워드 몇 개를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적어놓는 것으로 끝. 그 뒤는 매일의 끄적임에 맡긴다.


해야 할 일을 정리하다 못해 일 년의 계획을 실행하는 것도 일정 정리의 카테고리에 해당이 된다면 그것이 진정 쉼이 맞나?


쉼표코칭을 진행하면서 쉼표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만나본적이 없다. 제대로 된 쉼을 위해서는 일과 삶 또한 원하는 자신이 생각하는 right track위에 있어야 한다. 각자의 인생에서의 right track에 대한 기준은 모두 다르고 얼마나 회복탄력성이 뛰어난지 그리고 얼마나 긍정적인 마인드가 단단한지에 따라 일과 삶과 쉼의 밸런스를 맞춰가는 능력 또한 제각각이겠지만 쉼이 일이나 삶의 어떠함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은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에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일정을 끄적거리는 것은 내 일과 삶의 안녕을 점검하며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순간순간 돌아보게 해주는 역할을 해준다. 딱히 중요한 일정이나 계획을 적어 내리는 것이 아니더라도 내가 하루하루 무엇을 하겠다고 선택하고 무엇을 하지 않겠다고 선택하는 지를 보여주는 마음 지도와 같은 것이기도 하다. 




어쩌면 '쉬는 방법을 모른다'라고 생각했던 것에는 나의 쉼에 대한 편견이 담겨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쉼은 반드시 온몸을 편안하게 이완시키고 골치 아픈 생각들을 하지 않는, 취향을 담은 취미들로 채워져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내가 좋아하는 소소한 쉼의 방법들을 쉼으로 인정하지 않게 한 것은 아닐까. 궁극적으로는 일이 쉼이 되고 쉼이 일이 되는 쉼일일체의 상태가 성장하는 사람들의 가장 이상적인 쉼이겠지. 하지만 이상적인 쉼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나의 살아가는 온갖 방법들을 나 스스로가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 그것이 나의 쉼을 디자인하는 것에도 시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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