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트다움 Dec 12. 2023

식食, 쉬기 위해 먹는다?

음식을 앞에 놓은 시간을 먹는다

키도 몸집도 작던 어린 시절 학교 앞 분식집 사장님이 백 원에 떡 7-8개 담아주시던 떡볶이. 뭣도 잘 안 먹던 때렸는지라 배가 고파서 먹었다기보다 부담스럽지 않은 양에 떡볶이를 맛볼 수 있다는 매력에 종종 들러 서서 작은 떡볶이 한 접시를 비웠다. 나도 무언가를 다 먹을 수 있구나 신기하기도 하고 떡볶이를 먹는 시간만큼은 최소한 심심하지 않았다. 떡볶이가 뭐라고 그걸 먹는 시간이 힐링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어도 어린 마음에 왠지 모를 일탈? 의 느낌이 들었던 기억이 다.


회사에 다니던 시절 일을 하다가 머리가 깨지게 아프면 잠시 나와 편의점에 들러서 그전에는 평생 돈 주고 사 먹어 본 적 없는 초코가 두껍게 발린 과자를 사들고 사무실로 다시 들어가 혼자는 한 번에 다 먹지도 못하고 있는 대로 다 나눠주고는 정작 나는 한 개도 조금씩 나눠먹던 기억이 있다. 머리 아파하는 나에게 "과자 사러 갈래?"라고 말해 주었던 사수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고, 축 쳐진 목소리로 "과장님 과자 사러 가요"라고 이야기하던 동료가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었다.   


지금은 혼자 집에서 일을 하면서 한참을 일을 하다가 잠시 쉬어 볼까 시계를 보면 얼추 점심 식사를 해도 되는 시간이다. 채소 잔뜩에 닭가슴살을 넣어 익히든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든 아무 음식으로나 끼니를 때우며 그때만큼은 일은 치우고 책을 읽거나 잠시 다른 생각을 한다. 먹기 위한 시간이라기보다 쉬기 위해 먹는 듯한 느낌이 점점 더 든다. 식사를 끝낸 후 서재로 들고 들어가는 커피는 쉼에 대한 미련이다. 몇 모금 홀짝거리고는 컵만 들었다 놨다 하다가 그 안에 들은 커피가 차갑게 식어버릴 때까지 입을 대지 않는 날들이 허다하다.




가끔은 요리를 예술에 가깝게 잘하는 이들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맛있는 음식을 스스로에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것도 부럽지만 그보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맛 좋은 음식을 먹일 수 있음이 더 부럽다. 요리를 잘하게 되면 음식 이야기를 하며 나 스스로의 쉼을 논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만 우리 모두의 쉼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것 같다.  

 

음식은 인간에게 그 자체로 큰 주제이자 낙이다. 때로는 위로가 되고 또 때로는 경이로움이 된다. 음식에 추억이 담기기도 하고 마음이 담기기도 한다. 그래서 음식과 함께 논하는 쉼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다. 혼밥에 깃든 자유로움이 있고 음식을 나누며 오가는 이야기로 쌓아가는 유대감이 있다. 우리는 그 둘 모두에서 쉼을 포함한 다양한 감정을 느낀다.  


우리는 확실히 쉬기 위해 먹고 마신다. 퇴근 후 동료와 찾아가는 막창집이 그랬고 아이들을 다 재운 후 끓이는 라면이 그랬다. 매운 걸 먹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거나 피곤하면 당이 당긴다는 표현에 영양학적 근거를 떠올리며 인간으로 살면서 필요한 칼로리 이상을 먹는 나를 정당화한다. 먹는 것이 너무 즐거우니 이리 즐거워도 되나 싶어 '살 빼야 하는데'라는 말을 달고 살지만 그 말을 내뱉는 정신상태로는 이미 식食에서 벗어나긴 글러먹었다.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좋고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니 둘이 먹다 하나 죽어도 모를 좋아하는 음식을 찾아 삼매경이다. 그렇게 잘 먹고 충전되면 또 한동안은 그 힘으로 산다.


먹는 게 뭐길래.


이 글을 쓰면서 난 또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떠올린다. 계절이 바뀌면 제철음식을 먹어야 하고 먹으라는 부위보다 구석구석 기름진 부위들을 먹으며 나름의 스트레스를 푼다. 입은 좋아하지만 위는 싫어할 것 같은 그런 음식들을 한참 철이 들었어야 하는 이 나이에도 더 좋아하며 먹는 즐거움을 논하니 도대체가 주변 사람들과 음식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하기도 자주 먹기도 쉽지 않다.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떤가.


내가 즐기는 음식이든 평소에 먹든 음식이든 자고로 사람은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먹어야 하고 그 먹는 시간만큼은 정당하게 쉴 수 있다. "뭐 누가 못 쉬게 했나? 쉬고 싶을 땐 쉬면 되지!" 누가 쉬지 말라고 한 건 아니지만 할 일이 줄줄이 태산이라서. 방해받지 않고 쉴 수 있는 시간이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줄어드는 느낌이라서. 이런 이상한 소리를 하고 있다.


꼭 맛있는 음식이어서가 아니라. 음식을 앞에 놓은 그 시간을 음미하면서. 오늘도 나는 잘 쉬었다.  



이전 04화 딱 손에 닿는 날들까지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