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서는 여정의 여유와 의도적인 짧은 공백
약속된 시간보다 일찍 나서는 것이 한때는 시간 낭비인 것처럼 느껴졌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약속시간 보다 일찍 도착해서 의도적으로 나 자신에게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이 내 심신을 안정시키는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후로는 연이은 스케줄로 일찍 출발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는 한 일찍 나서서 얻어지는 틈새 시간이 주는 여유를 즐긴다.
도착시간에 조금 일찍 도착하는 그 짧은 여유시간을 가지고는 많은 일을 할 수 없다는 것도 어찌 보면 매력 중 하나이다. 생각을 날카롭게 정리하고 마음을 다잡고 기껏해야 짧은 글을 읽거나 메모를 남기는 정도이니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일찍 나서는 것의 힘은 생각보다 크다. 일정에 늦을까 봐 가는 내내 마음을 졸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도착해서 정확한 위치를 찾기 위한 시간이 확보된다는 것도 마음에 안정감을 준다. 어쩌면 도착해서 남는 시간에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의미보다 그곳까지 가는 여정에 심적 안정감과 여유를 더해준다는 데에 더 큰 의미가 있는 듯도 하다.
또 하나, 모든 만남과 일정에는 '기대'라는 것이 존재한다. 그 만남과 일정을 통해서 이익을 얻어야겠다는 기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 모두에게 유익이 되는 '의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강의가 되었든 미팅이 되었든 지인과의 만남이 되었든 그 자리가 내 삶과 일에 주는 각각의 '의미'가 다 있다. 현장에 도착하기 전에 그 의미를 되새기는 여유를 갖는 것과 그렇지 못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만남이 되었든 미팅이 되었든 그냥 함께 앉아 시간이 흐른다고 의미 있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만남 전 잠깐 생각 정리를 할 수 있는 여유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짧은 여유를 낭비 없이 활용하거나 혹은 맘 편히 의도적으로 쉬려면 내 하루가 큰 계획의 맥락 안에 있어야 한다. 반대로는 짧은 여유를 창의적으로 쉬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면 긴 여유시간에 하고 싶은 것이 생긴다. 찰나의 영감으로 쓰기 시작한 글을 조금 긴 여유를 찾아 마저 쓰고 싶어 진다거나, 잠깐 들었던 노래가 나중에 떠올라 다시 듣고 싶어 진다거나 짧게 남긴 메모가 좋은 아이디어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5분 먼저 나선 걸음은 나에게 참 좋은 선물과 같은 시간이 되곤 한다.
쉼에 있어서 여유 시간의 유무는 쉼 자체를 가능하게도 혹은 어렵게도 만든다. 그래서 더 고의로 라도 '남는' 시간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분주함의 틈새에서 잠깐의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능력을 갖는 것. 어쩌면 내 시간에 주도권을 뺏기지 않는 시작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