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트다움 Jan 02. 2024

결국 멘탈

'열정 권태 성숙' 

얼마 전에 유퀴즈에 김창욱 교수님 편에서 익명의 사연자의 '최근 무엇을 해도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는 고민에 대해 김창욱 교수님이 해준 이야기가 너무나 공감이 되어 기억에 깊이 남아있다. 


'우리는 보통 일을 할 때 열정의 시기로 시작을 한다. 이때 우리가 흔히 하는 착각은 열정이 영원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열정은 식고 열정의 크기에 비례하여 권태의 시기가 온다. 권태의 시기에 우리가 또 흔히 하는 두 번째 착각은 권태가 영원할 것이라는 것이다. 권태의 시기는 언젠가는 또 지나가고 성숙의 시기가 온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열정의 시기가 떠오르고 권태의 시기가 떠올랐다. 권태가 끝나고 성숙기에 접어들었는지에 대한 100%의 확신은 없지만 내 중심에 흔들리지 않는 무언가가 생겼음은 안다. 쉼을 부르짖으면서 치열하게 덜 힘들게 살려고 노력하면서도(이 표현이 심히 웃기지만 이 또한 정신 차리고 노력해야 하는 무언가이다.)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반드시 해야 할 것들은 다 챙겨서 한다. 이전만큼 헤프게 덤벼들지는 않지만 배움에 대한 금전적 시간적 투자도 여전히 한다. 그러고 돌아서서 또다시 쉼을 이야기한다. 


쉼은 결국 멘탈을 좌우하고, 멘탈에 좌우된다


나에게 쉼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그 시간을 확보하는 것도

내가 쉼의 시간을 갖는 것과 나를 뒤쳐지게 하는 게으름을 과감히 구별하는 것도

쉼의 시간에 재충전을 위해 몰입하는 동안 일에 대한 조바심을 눌러내리는 것도

나는 나에게 맞는 쉼으로 내 잠재력을 깨울 수 있다는 확신을 갖는 것도


이 모든 것이 결국은 멘탈 싸움이다.


꿈은 꾸되 주어진 상황을 냉철하게 바라보고 상황에 눈 가리며 마음을 앞세우지 않고 주어진 여건과 그 안에서의 삶에 자족하고 순간순간을 함께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순간으로 만들기 위해 집중하는 것. 나도 모르게 내 안에 자리 잡은 인정욕에 휘둘려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내 인생의 희로애락을 맡기지 않고 한걸음 한걸음 나와 그분만 아시는 내 인생의 단계들을 인정하고 자축하는 것. 이것들이 가능해져야 비로소 평안한 쉼을 누릴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쉴 수 있고 그래서 쉴 수 있고 함께라서 특별한 쉼이 되고 혼자라서 더 잘 쉴 수 있는 상태의 멘탈이 되려면 사람들의 보이는 모습에 흔들리지 않고 나의 작은 성공들을 인정하고 축하하는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내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것들에 집중하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갖고 난 후에 더 단단해진 '나'로 확실한 성공을 거두는 경험이 반복되어야 한다. 처음엔 나 스스로도 긴가민가 할 것이고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가는 과정을 반복한 후에는 이렇게 살면 '되겠다'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어디가 끝인지 몰라 나를 쉬지 못하게 했던 밑도 끝도 없는 '성공'이라는 것의 정의도 성공과 닿아 있는 것인지 아무 상관없는 것인지 막연하기만 했던 '행복'에 대한 욕망도 결국은 내 안에 만족에 이르는 척도가 그리고 답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을 아는 것'이라는 말 대신 멘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데에는 그저 '아는 것' 이상의 '잡는다' 혹은 '기준을 세운다'라는 조금 더 능동적인 의미를 담고자 했던 의도가 있다. 그냥 되는 것이 아닌 노력이 필요하고 의지가 필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 쉼이라는 것이 말이다.


뭐 이렇게까지. 쉼이 뭐라도 되는 양. 내 맘의 목소리를 따라 계속 물고 늘어지고 있는 이 글의 의지적 질척거림처럼 말이다.    

이전 10화 '목적이 있는'  쉼 디자인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