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남의 사랑이란

월야밀회-신윤복, 18세기 후반경

by 루시

세상에서 제일 속 편하게 얘기할 수 있는 주제 중에 하나가 ‘남의 사랑’ 얘기가 아닐까 싶다. 사실 당사자가 되면 눈물바람에, 절망도 세상에 그런 절망이 없고 하루하루가 지옥 같기도 하고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일렁임을 겪게 되는 것이 사랑 이건만 묘하게 남의 일이 되어 버리면 편해진다. 아마 당사자가 아니라는 안도감, 옆에서 구경하는 재미 등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남자가 유머 감각이 없어.”

“왜 남자한테 유머 감각을 찾니? 그 남자, 묵직하겠구먼. 웃긴 일은 혼자 찾아보고 그 남자는 일단 만나봐.”


친구가 소개받은 남자의 단점을 말하면 무조건 그 단점을 남자의 장점으로 승화시키면서 일면식도 없는 그를 칭찬하게 된다. 그리고 친구에게 빨리 더 만나 보라고 종용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은 없는가? 나는 많다. 친구 편이 아닌 생판 남인, 말 한 번 섞어본 적이 없는 그 남자의 편이 되어 친구에게 마음을 열라며 성화를 치며 빨리 한 번만 더 만나보라고, 한번 만나서 어떻게 사람을 아느냐고 닦달을 하게 된다.

내가 그럴 때면 멋쩍어하는 친구도 있었고 네가 그 남자를 못 봐서 그렇다는 둥, 알지도 못하면서 훈수 두지 말라는 둥 다양한 반응들이 있었다. 친구들의 반응은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일 것이다. 끔찍이도 싫어하는 타입의 남자를 만났는데 옆에서 친구가 더 만나라고 난리를 친다면 누군들 좋을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쉽게 만남을 권유할 수 있는 것은 그래도 친구가 좋은 사람을 만나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과 남의 사랑에는 너그러워질 수밖에 없는 나의 본성이 작용한 결과라고 하겠다.


신윤복은 대한민국이 사랑하고 나 역시 김홍도와 같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다. 혜원 전신첩에 들어있는 그림들은 하나같이 좋다. 김홍도가 굵은 선으로 장난기를 머금고 있는 느낌을 전달한다면 신윤복은 날렵한 선으로 세련된 느낌을 전해준다. 쌍검대무, 주유청강, 연소답청, 월야정인, 상춘야흥 등 ‘흥’이 오른 곳의 느낌을 절묘하게 포착하여 보여준다. 당연히 그의 그림에는 ‘흥’하면 빠질 수 없는 기생들과 그 ‘흥’을 즐기고 있는 선비들이(한량이라고 표현해야할까) 어김없이 등장한다. 간송미술관에 가서 신윤복의 그림들을 봤던 때가 떠오른다. 성북동에 위치한 간송미술관은 적절한 규모에 컬렉션의 수준이 훌륭하여 아늑한 분위기 속에서 작품을 찬찬히 봤던 기억이 난다. 그중에서도 신윤복의 그림들은 형형히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생각보다 그림이 작고 아담하여 정겨웠고 조선 시대의 그림책을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 났다.

월야밀회.jpg

그중에서도 나는 이 그림이 흥미로웠다. ‘월야밀회’. 달 밝은 밤에 밀회를 즐기고 있는 남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남자의 모자와 의복, 그리고 손에 들고 있는 방망이로 미루어 장교쯤으로 짐작을 한다고 한다. 그 시절, 하급 무관들이 기생들의 기둥서방 노릇을 많이 했다고 하니 그렇게 짐작하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얼마나 애가 탔으면 그 많은 실내의 방을 놔두고 이렇게 야심한 시각, 후미진 담벼락을 장소로 마음을 고백할 것인가. 여기서 분명히 알 수 있는 한 가지는 지금 정을 통하는 두 사람의 관계는 필시 떳떳하지 못한 관계라는 것이다. 바로 앞의 담을 넘어 들어가면 정원수가 잘 가꿔진 뜰의 야경을 보면서 둘이 손을 맞잡고 이런저런 얘기를 따뜻한 실내에서 나눌 처소가 마련되어 있을 것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만나는 것을 택했다. 남자는 오랜만에 보는 애인의 얼굴에 감격한 눈치다. 얼굴이 온통 홍조를 띠었다. 그의 품에 ‘폭’ 안겨 있는 여자는 어떤가? 고개를 모로 돌려 남자를 보는 모양이 곧 남자에게 입맞춤을 할 것 같지 않은가? 이미 기쁨으로 몸은 '후끈' 달아오른 것 같다. 지금 두 연인에게는 장소의 불편함이나 다른 이들의 시선은 안드로메다로 날아간 지 오래다. 이 세상에 오직 너와 나, 우리 둘만 있는 것 같은 사랑의 황홀경에 도달해 있는 것이다. 금지된 사랑이건 뭐건, 아니 금지되었기에, 만나기 힘든 상황이기에 더더욱 사랑은 열정적으로 끓어오른다.

이 그림에서 나의 관심이 모아진 곳은 꺾어진 담벼락 너머에서 망을 보고 있는 한 여인이다. 그녀는 이들의 사랑의 열락 따위는 관심이 없다. 오직 관심이 있는 것은 이들의 만남이 다른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않고 끝나는 일이다. 추문으로 번지지 않는 것이다. 날카로운 눈을 연인들에게 고정한 채 그녀는 쓰개치마의 끈을 ‘꼭’ 쥐고 있다. 나는 그 손에 주목한다. 아주 세게 끈을 잡은 그녀의 손.

‘만약 누가 온다면 일단 나는 쓰개치마를 쓰고 그와 부딪쳐서 큰 소리를 내야 한다. 저들이 도망칠 수 있게.’ 내 귀에는 그녀의 이런 마음속 다짐이 들려오는 듯하다. 어쩌면 긴장감은 이 셋 중에서 망보기꾼인 그녀가 가장 높지 않을까? 쓰개치마의 끈을 잡은 손은 이미 땀으로 축축할 것이다.

한 폭의 그림 안에서 감정의 쓰나미를 맞이하고 있는 연인과 냉철하게 도주로를 계산하고 있는 얼음과 같은 여인을 배치하여 응축된 드라마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신윤복의 훌륭한 점은 이런 것 같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재미있다. 빛난다. 긴박감과 팽팽한 텐션이 그림을 뚫고 나온다. 영리하게 화첩의 접힌 부분을 담벼락에 맞춘 것은 그런 그의 능력으로 보자면 장난 수준의 위트일 것이다.

IMG_5617.JPG

나 역시 저 망보기꾼과 같은 역할을 하던 때가 있었다. 친구가 호감을 가지고 있던 남자가 있었는데 그 남자가 보통 남자가 아니었다. 여기서 ‘보통 남자’가 아니라는 말은 보통의 취향을 벗어나 있으며 독특함의 정도가 심하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그를 유인하거나 유혹하는 것은, 역시 보통의 방법으로는 어려웠다. 그래서 친구로부터 한 두 번 같이 여행을 가 달라는 청을 받았다. 물론 기묘하지만 3명이 함께하는 여행이었고 나는 그것이 친구의 사랑을 위한 징검다리라면 기꺼이 '징검돌'이 될 용의가 있어서 응했다.

슬프게도 그들은 커플이 되지 못했다. 내 얘기를 들은 나의 지인들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그런 여행에 도대체 왜 같이 가는 거냐. 가는 척하면서 빠졌어야지.'라는 말로 나를 질타했다. 그리고 친구 역시 질타했다. '무례한 부탁 아니야?' 음 역시 그런 것이었나? 내가 눈치가 없었던 것인가. 친구는 나에게 무례를 범한 것인가? 하지만 내 친구는 워낙 직설적인 사람이라 그저 본인의 감정에 충실했을 뿐이고(사랑에 빠지면 예의고 뭐고 없지 않나요?) 내가 중간에 빠질 것을 원했으면 그것까지도 계획의 일부로 나에게 설명했을 사람인데. 나의 지인들은 그녀를 모르니 이건 어떻게도 설명은 안 되었다. (단, 하나의 사건이 사람의 관점에 따라서 다양한 식으로 해석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느끼는 계기는 되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이들의 연애에 이용당하는 망보기 여인에게 항상 마음이 쓰인다. 그리고 그들의 연애는 실패하더라도 망보기 여인의 망보기는 성공하기를 응원하는 것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