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퇴사를 앞둔 나에게 남편이 당부한 세 가지

by 은행원


나는 늦은 저녁사무실을 계약하고 왔고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상세히 터놓은 건 다음날이나 되어서였다.


아이들을 재우고 난 늦은 시간. 사무실 계약한 이야기를 터놓았다. 남편은 내가 사무실을 임대로 구한 줄 알았던 듯 싶다. 내 사무실을 샀다라고 하니 놀라는 눈치다.


내 퇴사를 응원하는 유일한 사람은 남편이었다.


나는 조직생활보다 개인 사업에 더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내 옆에서 12년간 나를 봐온 남편은 잘 알고 있었다. 맥주를 나눠 마시면서 남편은 퇴사를 앞둔 나에게 세 가지 이야기를 했다.


1.1년간은 돈을 못 벌더라도 조급해하지 말 것.


-퇴사 후에 바로 돈을 벌지 못한다고 조급해 하지 마. 라는 남편의 말이 고마웠다. 그리고 나는 애초에 그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퇴사하고 1년 정도는 수입이 0이어도 괜찮다는 마음이었다. 매월 숨만 쉬어도 나가는 고정비라는 것이 있다. 거기에 대출이자까지. 퇴직금과 전세금 상승분으로 나는 감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한달에 500만원씩 12개월=6000만원. 500만원씩 쓰지도 않겠지만 나에겐 그 정도의 여유는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내심 고마웠다.

그런 말을 해준다는 것이. 퇴사를 할 때 가장 고민되는 것은 매월 주어지는 월급이었다. 월급을 생각하면 퇴사가 어려웠다.


나에게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집중했다. 나는 돈보다 자유를 더 원했다. 시간의 자유, 공간의 자유, 내 의지대로 무언가 할 수 있는 자유였다. 직장인에게는 자유가 없었다. 겸업이 금지된 보수적인 조직이었기에 책을 쓰는 것도, 유튜브를 하는 것도 다 조용히 해야만 했다.


휴가를 가는 일도 누군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팀장님 저 이날 휴가 가도 될까요? 월말이나 연휴에 휴가를 쓰는 자유마저도 없었는데 어느 순간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매월 정기적으로 받는 월급 대신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많았다. 자유를 얻는 대신 나는 정기적으로 매월 주어지는 월급은 잃게 될 것이다. 하지만 월급 이상의 돈을 벌게 될 것이다.


지금 일하는 시간보다 더 많이 일을 할 의지가 있었다. 나는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그게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해당되지 않았다. 나의 빈자리는 누구나 와서 채울 수 있었다. 은행원의 일은 창의적이거나 생산적이지는 않았다. 고객이 오면 매뉴얼대로 응대를 하고 누군가 원하는 것을 해결해주는 일이었다.


1년간은 돈을 벌기 위해 애쓰기 보다

경험을 쌓고 내공을 쌓는 기간으로 보내자.




2.사무실은 오로지 혼자만의 공간으로 이용할 것.


우리 모두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내 공간을 만들기 위해 결심한 순간 내세운 철학이다. 두 아이가 있는 우리 집은 짐이 많다. 책과 장난감. 내 책도 너무나 많다. 사람들은 여행을 떠난다. 텅 빈 숙소에서 여유를 느끼고 힐링을 한다. 사람들은 카페를 향한다.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그런 카페 같은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내 사무실을 구해서 인테리어를 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공간을 내가 24시간 이용하는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와 함께 공유를 하면 좋겠다. 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런 나에게 남편이, 처음엔 그냥 혼자만의 사무실로 이용을 하라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렇다, 그 말이 맞았다. 두개를 다 하려다간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할 수 있다. 처음엔 혼자 생각하는 공간, 글을 쓰는 공간으로 제대로 활용을 하고 그게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오면 그때 다른 방향으로 생각해보라는 것. 긴 대화를 나누었지만 나는 이 이야기가 가장 공감이 갔다.



3.내 심성을 알지만, 사회에 나오면 조금 더 약게 행동할 것.


나는 여간해서는 내 의견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좋지 않은 대우를 당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긴다. 항의하거나 화를 내는 일은 극히 드물다. 그래봐야 내 감정만 상할 뿐이다. 내 사상 중 하나는 모든 일은 나에게 돌아온다는 것이다. 15년간 은행에서 근무하면서 내가 직접적으로 만난 사람, 그리고 간접적으로 만난 사람을 포함하면 몇 천명 그 이상이 될 것이다. 무례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서비스직, 감정노동자들의 고충을 너무나 잘 이해한다. 그래서 좋은 게 좋은 거지. 하며 넘긴다.


그래서 남편의 마지막 조언은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그래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다. 겉으로 표현을 정말 못하지만 관심있는 사람에게는 의외로 섬세해서 표정만 봐도 누군가의 현재 상태를 알아차린다. 난 나의 장점과 단점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


누군가 내 시작을 위해 조언해준다는 것은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게 다른 사람이 아닌 내 남편이라서 나는 더 고마운 마음이 컸다. 세상에 내 편이 있다는 것만큼 든든한 일은 없을 것이다. 나도 가족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


남편의 조언 덕분에 나는 더 용기를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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