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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민수 Dec 24. 2023

의원면직이 수리되다

남는 것, 떠나는 것, 아쉬운 것.

 의원면직계가 수리되었다. 사직원을 제출하고 이 주 남짓 지났을까. 들어올 때는 그리도 높았던 울타리가 나갈 때는 한없이 낮다. 교사 타이틀을 떼어내는 데에 고작 이 주. 공문 속 인사 발령 통지서를 마주한 심정은 복잡했다. 설렘과 기대, 미래에 대한 의욕이 느껴지는가 하면 걱정과 두려움이 엄습하기도 했다. 두 달. 이제 교사로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두 달이었다.


 교사에게도 연말은 참 바쁘다. 성적표를 만들어 내고 교과 진도를 마무리 짓고 업무들을 갈무리한다. 그 정신없는 와중 손에 닿을 듯한 겨울방학. 방학식 다가옴이 야속하게도 더딤은 학생이나 교사나 마찬가지다. 어떤 교사들은 이야기한다. 방학이 되어서야 그간의 길었던 꿈에서 깨어 진짜 인생을 사는 것 같노라고. 발전을 원하는 교사에게도 쉼을 원하는 교사에게도 방학은 참 소중한 존재다. 마지막 방학을 앞둔 내 마음은 어떠한지.


 방학이라고 일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는 없다. 담임은 담임 대로, 업무부장은 업무부장 대로 챙겨야 할 일들이 참 많다. 때문에 방학임에도 왕왕 출근해야 한다. 학급 교체와 업무 인계가 이루어지는 2월은 되레 바쁘다. 열정인지 체질인지, 방학에도 매일같이 출근하는 선생님들이 계신다. 학교와 학급에 대한 애정이 사뭇 존경스럽다. 방학 때 출근해 보면 학교가 참 조용도 하다. 여하튼 '방학이 만들어 내는 학교의 고요함'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다.


 나는 학교라는 공간을 좋아한다. 교실, 복도, 운동장이 주는 푸근함. 옛 아련함이 떠오르는 기억들. 왠지 모를 따뜻함. 내 머릿속 학교의 심상들이다. 모르는 동네에 가도 초등학교를 마주치면 내심 반가운 마음이. 앞으로도 초등학교는 내게 정겨운 공간일 거다.

 일을 시작하고부터는 학교의 여러 매력 중 '아이들 없는 조용한 학교'가 주는 기운이 참 기분 좋았다. 하교 후 조용한 내 교실, 출근한 방학에 느껴지는 고요함. 커피숍이나 집에서 혼자 일하는 것과는 또 다른 뉘앙스를 주는 공간이다. 오래간 기억에 남을 기분 좋은 적막이다.


 의원면직을 앞둔 이 시점에서는 처음으로 '시끄러운 학교'가 아쉽다. 이제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소란한 학교의 모습. 이번 겨울방학식과 동시에 학교와도 학생들과도 작별해야 하니까. 학생들로 가득 찬 복도며 교실들이 이제 곧 '추억거리'로만 남을는지. 세상몰라 툭, 쏘아대던 저학년 꼬맹이들의 말투가 그리워질 것만 같다.

 가끔 욕지거리 섞여 들리는 점심시간 운동장의 소란함도 그리 될 것 같다. 자글자글. 아이들 모여 뛰노는 소리가 멀리서는 '자글자글' 들린다. 아이들은 건강하다. 종일 뛰놀고 넘어져도 제 즐거운 일을 좀체 포기하질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배울 점이 많다.


 또 그리워질 것은 우당탕 전쟁통인 체육시간 강당. 텅 빈 강당은 정말이지 외롭고 쓸쓸하다. 넓은 공간이 주는 무게를 고작 아이들 몇 명이 들어 올려 버리니 이 작은 존재들은 참으로 강하다. 늘 그랬듯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렴. 행복할 때는 박장대소도 해보고 분할 때는 울부짖어도 보렴. 건강하렴. 건강한 마음을 가지렴.




 교사를 벗어나 창업이라는 새로운 길로 접어드는 과정에 있다. 그간 무엇을 했던가, 떠올려 본다. 교사를 그만두리라 결심했다.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시장 조사를 위해 여기저기 다녔다. 책을 읽었다. 가족과 친구들의 조언을 들었다. 빈 상가 임대 현수막을 보면 바로바로 전화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마지막 직장 생활 최선을 다했다. 사직원을 냈다. 그간의 생각들을 글로 정리했다. 사직원이 수리되고 퇴직을 기다리게 되었다. 


 사직 결심을 하고부터 현재까지의 고민과 행동 과정을  글로 써보리라 마음먹곤 많은 것을 쏟아내었다. 여러 마음들, 고민들, 결의들. 다 뱉어냈다. 생각이 정리되는 듯도 하고 후련하기도 하다. 혼자만의 메모로 끝내지 않고 브런치를 통해 공개적으로 써보기로 한 결정 덕에 많은 응원과 위로를 받는다. 어떤 형태든 애정 보여주심에 늘 감사하다.


 열다섯 편의 작은 이야기들.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전의 일 년, 그 예고편 같은 나의 이야기들을 마친다. 이 짧은 예고편 뒤에는 훨씬 멋질 본편이 기분 좋이 기다리고 있으리라 확신한다. 이제야 준비 자세를 마친 한 청년이 앞으로 어떻게 달리는지, 어떤 말과 마음과 행동으로 뜀박질할지 지켜봐 주시라. 앞으로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그 흔적들을 즐겁게 써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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