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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중정원 Aug 08. 2022

내 선택의 불안을 오롯이 맞이하는 것.

삶에서는 선택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참 많다. 단순히 친구와 메신저로 대화를 나누며 어떤 이모티콘을 보낼지 선택하는 것에서부터, 직장인들의 최대 고민인 ‘오늘 점심은 뭘 먹지?’ 하는 것까지. 뿐만 아니라 내가 누군가와 평생 함께 할 각오를 다지는 일생일대의 선택도 있고, 온 몸과 마음이 부서지는 고통을 겪으며 그러한 관계를 끝내야 하는 선택도 있다.


세상에서 많은 선택이 주어지는 만큼, 그러한 선택들은 우리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 때 가장 쉬운 것은 남에게 의지해 버리는 것이다. 나의 선택을 타인에게 결정권을 넘기는 것. 칼자루는 내 손이 아닌 남의 손에 쥐어주는 것. 그 순간부터 본인은 그 선택의 귀책으로부터 오는 불안을 내 선택을 가져간 사람에게 넘길 수 있다. ‘네가 그렇게 하라고 하지만 않았어도.’ 가장 짧은 문장으로 나에게 주어진 선택의 불안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방어막을 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행위는 우리 주위에서 쉽게 발견된다. 단순히 상대에게 “뭐 먹을래?” 하는 질문에서부터, 중요한 결재사항을 상급자에게 “어떻게 처리할까요?”하고 묻는 것까지. 이렇게 나의 불안을 상대에게 의탁하려는 행위로 우리는 선택이 주는 불안을 외면하려고 한다. 내가 결정해서 결국은 내 손에 남는 그 위험과 찜찜함을 남에게 던져버리고 싶어한다. 결과가 어떻게 될 지도 모르면서 단지 불안하기 때문에. 그것이 주는 위험을 감수하고 행여나 잘못되면 ‘모든 것이 내 책임이다.’라고 말할 용기가 없기 때문에.


단순히 모든 것을 남에게 의존하는 사람은 결국 불안을 내려놓기 위해 본인의 안정을 남에게 맡긴다. 또한 남에게 자신의 선택에서 오는 불안을 던져버림으로써 나중에 자신이 책임져야 할 일을 남에게 전가하는 행위 역시 즐긴다. 이렇게 해야만 혹여 나중에 일이 틀어지더라도 본인의 일은 책임지지 않고, 타인으로 인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를 댈 수 있으며, 마침내 스스로의 얄팍한 자존심에 상처입지 않게 지킬 수 있으니까.


나 또한 그런 선택권을 넘기는 유혹에 자유롭지 못하다. 오늘만 해도 일을 어떻게 진행할 지 상급자에게 두 번 이상 물어봤으며, 점심을 고민하는 팀원들에게는 ‘막내의 의견을 따르자.’며 선택지를 넘기기도 했다. 내가 한 행위에 책임지고 싶지 않고, 내 선택의 결과에 기대하는 타인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껴 나도 모르게 그렇게 선택권을 넘기고 있었다. 나 또한 불안으로부터 숨으려고만 한다는 것을 느낀 순간은 오늘 팀장님과의 대화에서였다.


“그래서 OO씨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업무의 진행에 대해 묻는 나에게 팀장님은 오히려 되물었다. 나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는 듯이(물론 그 또한 상급자가 내려야 할 선택을 나에게 넘긴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톤 앤 매너는 그렇게 느껴지진 않았다.)


“글쎄요….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요?”


내 나름대로 고민을 내려 업무에 대한 방향성을 잡아 신중히 답했다. 그러자 팀장님은,


“그래. 그렇게 하자. 할 수 있겠어?” 하고 다시 한 번 나의 선택에 후회가 없는지, 그 결과를 모두 다 짊어질 수 있겠는지 다시 한 번 물었다.


 사실 그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생각보다 없었다. 이미 내 손에서 선택의 방향은 굳어져가고 있었으며, 더 우물쭈물해봐야 제대로 된 답이 나오지 않을 것이었다. ‘이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은 본인에게 있으며, 본인은 이를 감내할 것을 서약합니다.’ 하는 계약서에 마치 도장을 찍는 듯한 순간. 이전의 나였으면 “잘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할까요?”라고 얼버무리며 자리를 피하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 역시 내 선택에서 오는 불안을 타인에게 넘기려는 존재였다고 스스로 인지하며 그 이질감을 느낀 순간, 그 순간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의 선택에서 오는 불안을 온 몸을 다해 맞이하고 싶었다. 나의 선택을 남에게 넘기는 비겁한 내 모습을 스스로 보고 싶지 않았다. 


“해 봐야 알겠는데요. 안 되면 그때 가서 미안하다고 해야죠.”  결국 나는 씨익 웃으며 내 인생의 모토이자, 내가 던질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말을 꺼냈다.


“그래. 그렇게 하자. 나도 최대한 힘 보탤게. 나중에 더 이야기하자고.” 팀장님의 대답으로 대화는 그렇게 끝이 났다.


오늘 나는 나의 선택이 주는 불안을 자신의 선택으로 오롯이 맞이할 수 있었다. 선택을 불안과 함께 넘기는 것은 결국 그 불안을 감당하며 성장할 수 있는 기회까지 남에게 넘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언젠가 더 큰 선택의 기로에서, 기회가 될지도 모르는 그것을 누군가에게 맡겨버리지 않기 위해, 나는 오늘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연습을 했는지도. 미래의 내가 불안이 주는 위협으로 도망치지 않을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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