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백은 저만큼 앞에서 말없이 걷고 있다. 그의 걸음을 어둠과 그 어둠에 매달린 불빛이 느릿느릿 뒤를 따르고 있다. 남반구의 하늘을 따라 근육질의 몸매를 웅장하게 일으키고 있는 뉴질랜드 밀포드의 산봉우리들을 화폭에 담아 온 그는 단양강에 내려앉고 있는 어둠과 불빛을 차곡차곡 담아내고 있는 것이다. 돌아서고 있는 가을을 따라 걸으며 그는 마음의 화폭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강변에 차를 세우고 어둠이 내리기를 기다렸다. 차창을 열고 바람을 불러 들숨을 받아들이는데, 하늘이 나직하게 내려왔다.
"불빛이 아름다울까?"
"그래야지. 잔도에 매어 달리는 불빛을 따라 걸어야 하니까."
김화백은 다림질을 막 끝낸 듯한 수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의 시선의 끝은 언제나 뾰족하다. 그 뾰족한 시선을 콕콕 찔러 사물에 짙은 물을 들인다. 물을 들여 의미를 담고, 화폭으로 가져다 놓고 영혼을 불어넣는다. 오늘도 그렇다.
"갈까?"
"가자."
우리는 잔도에 올라섰다. 잔도는 이미 불빛을 두르고 있었고, 불빛 사이로 어둠이 끼어들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꽉꽉 채운 적막이 줄을 짓고 있었다.
그는 붓을 들지 못하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났으나 그의 몸부림은 이어졌고, 어두운 화실은 그 두께를 더해가고 있었다. 한 달이 지나고 다시 보름이 지나갈 무렵, 그는 힘없이 돌아왔다. 젊은 날의 방황이라고 치부하기에는 그는 너무 초췌해졌다. 그는 차디찬 방바닥에 쓰러졌다. 제5회 신라미술대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1984년은 그렇게 무너져가고 있었다.
며칠밤이 지난날 새벽, 그는 엎드린 채 눈을 떴다. 그리고 그는 한지 장판에 번져있는 곰팡이를 보았다. 어지럽고 난삽한 무늬는 방바닥을 넘어 그의 마음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직도 생생한 어젯밤의 꿈을 늘어놓았다. 영겁의 세월을 거슬러 날아오르던 천마天馬를 다소곳이 내려놓았다. 그는 미친 듯이 그렸다. 그가 쥐어뜯던 세월을 그렸다. 가슴을 저미고 있는 절망과 분노를 형상화했다. 그 안에서 천마는 맑은 눈으로 뛰어놀았다.
대상大賞이었다.
"강물이 흐르는 건 변화가 아닌가?"
내가 물었다.
"변화는 거듭나는 거니까 흐르는 건 살아있는 거겠지."
우리는 잔도 위에 시간을 널어놓았다. 빛이 바랬고, 흙이 묻었고, 여기저기 닳아버린 우리의 시간은 어둠에 짓눌렸다.
나는 가느다랗게 눈을 뜨고 짓눌려가는 나의 시간을 보았다. 이제는 놓아버리고 싶었던 내가 걸어왔던 시간은 발버둥 쳤다. 나는 오늘 가지고 있었던 시간을 죄다 버렸다. 12월의 끝이 와도 돌아볼 것이 이제는 없을 것이다. 새해의 해를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계획을 세우지도 않을 것이다. 그냥 느낌대로 흐를 것이다. 삶의 끝부분은 제멋대로 흘러가도 좋으리라.
"우리도 집념을 가질 수 있을까?"
그에게 물었다.
"이외수가 <들개>에 등장시킨 화가는, 쥐를 잡아먹던 화가는, 죽음으로 그림을 완성했지"
그는 붉은 불빛이 자맥질하는 수면을 항해서 거침없이 말했다.
"모든 걸 던져야 이룰 수 있다면 던져야지."
나는 그렇게 모지락스러운 삶은 살 수 없을 것 같았다. 소설 속의 세상에서 한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고 싶은 갈망을 어찌 버릴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정말 나는 모든 걸 던지지는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기어이 한 명의 인물도 세우지 못하고 말 것이다. 나는 결국 아마추어일 뿐인가 보다.
침낭을 뒤집어쓴 차 안은 고즈넉했다. 밤은 꼬리를 물고 어둠을 몰아다 세웠다. 우리는 그 밤을 바라보고 있다. 좋다.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사 와야 하는데?"
"그럼 그만 두자."
"그래."
단양강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우리는 심심했다.
나는 안다. 그는 시선이 닿았던 것들은 꼭 형상화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단양강 잔도에 남겨둔 시간은 어느 순간에 생명을 얻으리라는 것을.
내가 남겨놓은 것들은 어떻게 살려내야 할까. 한 줄의 글도 쓰지 못하고 있는 까닭에, 그것들에게 숨을 불어넣은 나의 펜은 무딘 까닭에 나는 새벽이 다가오도록 걱정만 하고 있었다. 잠든 친구를 바라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