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걸음걸음, SYDNEY

01 프롤로그

by 힘날세상
시드니 QVB에서 마시는 커피, 걸음의 의미를 그려보려는



01 프롤로그

여행은 어떻게든 시작된다.



비가 내린다. 비행기를 타러 가는 날. 그만큼 마음도 내려앉는다. 여행이라는 게 떠날 때의 설렘이 참 맛인데 가슴이 뛰지를 않는다. 나이 탓일까. 아내는 소녀처럼 좋아하는데,

은퇴 후 세월은 무표정하게 흘렀다. 그래서일까. 여행의 세포까지 무지막지하게 가라앉았다. 흔히 은퇴는 여행으로 이어진다고 하는데, 아무리 코로나 19의 여파라지만 볼품없게도 뒷방늙은이가 되고 말았다. 더 심각한 건 내 마음은 아무렇지 않다는 것이다. 그 좋은, 산행에 나서지도 못했다. 꿈꾸었던 팔도유람, 그러니까 세칭 한 달 살이 같은 것도 다 무너지고 말았다. 더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그러고도 아무렇지 않다는 거였다. 여권은 서재 책상 서랍 속에서 늘어지게 깊은 잠에 빠져있고, 여행용 가방은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듯이 드레스룸 어딘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다. 말하자면 여행을 잃어버린 채 깊은 늪에 빠져버린 것이다.

낯선, 그러나 은근히 마음을 두고 있었던 수도권으로 터를 옮겼다. 그것은 그나마 큰 위안이었다. 그 위안으로 서울이며 경기도를 발길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명랑만화를 읽는 것처럼 은근한 흥이 돋았다. 여행지에서 느끼는 객창감을 들고 서울을 돌아다녔다. 복잡해서 싫다는 서울이 내놓는 낯섦이 좋았다. 4년을 낯선 동네에서 새로운 것들과 부딪히고, 맞서고, 보듬다 보니 한 달 살이, 일 년 살이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어느 순간 이거야말로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신선한 시공간이 당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동안 나는 지금까지 수도권이라는 그 낯선 지역을 여행하고 있었던 셈이다. 여행 세포가 가라앉은 게 아니라.
어느 날, 거센 비가 힘을 다해 창문을 두드리던 날 창가에 앉아 있었다. '빗방울은 무엇으로 창을 두드릴까. 부서지고 흩어지는데도 저렇게 들이받는 힘은 근원이 무엇일까.' 넋두리는 아니어도 아무 생각 없이 지껄일 때, 문득 솟구치는 게 있었다.
'여행을 가자'

비 내리는 정류장에서 공항버스를 기다리는 그때서야 여행가방을 쌌다는 걸 알아챘다. 버스가 예정시간을 50분을 넘기고도 도착하지 않고 있을 때, 비행기를 놓칠 수 있다는 생각보다, 이미 여행을 시작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川)를 이루어 빠르게 흘러가는 빗물에 '내 모습이 어떻게 비치고 있을까'하는 짧은 생각을 했다. 여행의 감각이 소름소름 돋아났다. 좋았다. 나는 이미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낯설어서 불편한, 거기에서 오는 가슴의 쫄깃함 같은 것은 이미 온몸으로 퍼지고 있었다. 시드니의 하늘이 보이는 듯했다. 빗줄기에 힘이 실리고 있었다. 그 빗줄기 사이로 공항버스가 보였다.

ㅡ좋아?
아내가 버스에 앉으며 물었다. 안다. 또 다른 여행을 이어보자는 말인 것을.
ㅡ좋아.
아내는 코로나에 무참하게 짓밟혔던 대만 남동부 여행을 토닥토닥 살려보자는 말을 금방 알아듣는다.

칠순이라고 자식들이 더 흥분한다. 비싼 밥을 먹자고 하더니 밥상 위에 시드니 여행을 펼쳐놓는다. 고마워서 좋고, 좋아서 고마웠다. 무엇보다 가라앉았든, 멀리 달아나버렸든 여행 감각을 흔들어 주었다.

비가 내린다고, 러시아워라고 갖다 붙여도 50분을 넘기서야 도착하는 공항버스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건 여간해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여행이 어디 내 맘대로 이어지겠는가. 공항에서 8시간 딜레이 하는 비행기에 맞서다가 바닥에 드러눕기도 해야 한다. 막차가 끊겨버린 시골 정류장에서 겨울이었으면 어쩔뻔했냐며 그나마 감사하다며 가슴을 쓸어내기도 하는 게 여행이다. 이것도 하나의 여행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자기 합리화인지 정신승리인지 모를 행태를 보이지 않는가. 이렇게라도 여행의 마인드가 살아난다면 출발부터 비 좀 내린다고, 버스가 좀 늦었다고 투덜거릴 일은 아니다. 낯설고, 어색하면서, 거기에 두려움까지 소환되는 긴장감이 여행의 실체이니까. 그 긴장감이 마음을 살찌우는 것이니까.


흔히 은퇴를 여행과 연관 짓는 사람들이 많다. 낯선 여행지가 불러일으키는 느낌, 그 가슴이 뛰는 쫄깃함 때문이다. 국내보다는 해외여행을 선호하는 것은 그 쫄깃함의 느낌이, 가슴이 뛰는 강도가 극렬하게 파고들기 때문이다. 들아다니는 걸음이, 먹는 것이, 자는 것이 생각과 달리 불편하지만 말이다. 그 불편함을, 낯섦을 즐기는 것은 우리가 번지점프나 롤러코스트를 타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그것이 여행이다.



이번 여행은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났다. 여행기 몇 편 읽어 본 것이 전부다. 왕복 비행기 티켓, 숙소만 예약했다. 믿는 것은 앞서서 걷는 딸과 사위이다. 옆에서 쫑알거리는 손주들이나 돌보면서 아무 소리 않아고 따라다니면 그만이다. 해외여행 가서 부모가 해서는 안된다는 10계명을 지키겠다는 굳은 마음과 함게. "아직 멀었냐”, “음식이 달다”, “음식이 짜다”, “겨우 이거 보러 왔냐”, “조식 이게 다냐”, “돈 아깝다”, “이 돈이면 집에서 해 먹는 게 낫다”, “이거 무슨 맛으로 먹냐”, “이거 한국 돈으로 얼마냐”, “물이 제일 맛있다” 등.

구글지도는 네이버 지도와 똑같이 가야 할 길과 타야 하는 버스를 안내해 주었고, 우버 택시는 카카오 택시와 다를 바가 없이 운전기사와 한마디 대화를 하지 않아도 이용에 불편이 없었다. 아이들 도움으로 해외에서 사용할 수 있는 체크카드 같은 것(결제하는 만큼 통장에서 빠져나가고, ATM에서 필요한 현금을 찾을 수 있는)을 발급받아 갔다. 갤럭시폰에 탑재되어 있는 통역서비스는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식당에서 메뉴판은 폰을 들이대면 한글로 번역을 해주었다. 딸과 사위가 영어와 중국어에 상당 수준에 도달해 있기에


인천공항에서 공항버스를 타고서야 긴장이 풀렸고,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이 다시금 실감이 났고, 무사히 돌아왔다는 안도감에 짓눌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잠에 곯아떨어졌다.


내 집이 최고이다. 정말.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