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비행기, 여행의 문을 여는
02 비행기, 여행의 문을 여는
귀를 막아야 할 만큼의 거창한 소음으로 활주로를 뒤엎을 듯 내달리던 비행기는 그 육중한 몸체를 가볍게 들어 올려 하늘로 날아올랐다. 누군가 저 멀리서 바라봤다면 비행기는 아무렇지도 않게, 표정을 일그러뜨리지도 않고, 천사의 날갯짓처럼, 마법사의 손짓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날아올랐다고 말했을 것이다. 내가 늘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처럼 아무런 몸부림도 없이. 누군가에게는 천사의 날갯짓처럼, 그러나 나는 와르르 쏟아지는 그 거창한 소음을 감당해야 했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팔짱을 끼고 있었지만 가슴은 제법 두근거렸고, 움켜쥔 거칠거칠한 손바닥은 은근히 땀에 젖고 있었다. 언제나처럼 이착륙은 목과 어깨를 굳혀 놓았고, 그 순간은 여행이라는 낭창낭창한 설렘을 지워버렸다. 그래놓고는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고고한 자세를 유지하며 화장실을 사용해도 좋다는 파란불을 켜놓는다.
ㅡ할아버지, 비행기는 힘이 아주 많아요. 그래서 우리를 태우고 하늘을 날아갈 수 있대요.
세 살 때 대만행 비행기를 처음 탔던 손녀가 자랑스럽게 하던 말을 생각했다. '그래. 비행기가 힘이 세긴 하지. 그 힘으로 여행의 시작과 끝을 제멋대로 디자인하기도 하는 거지.'
장춘 공항에서 남방항공이 벌인 7시간의 난동. 한국행 비행기인데 단 한마디도 한국어 방송을 안 해주는 공항과 편먹고 조폭처럼 쿵쾅거리던 그 모지락스러움. 쏼라쏼라 지껄이며 흘러 다니던 중국어의 낯선 비행. 그리고 얻어들은 '要去宾馆(yào qù bīnguǎn)'. 이동하는 사람들을 따라 눈치껏 버스 타고, 호텔에서 주는 대로 밥 먹고, 4시간을 무료하게 뒹굴다가 다 저녁에서야 탑승했더니 미안한 표정하나 짓지 않고 날아오를 때, '내일 출근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라고 말했던 게 바로 나였다.
안전을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너무나 심하게 뒤지고 더듬거리는 공항. 그들이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에도 고분고분하게 머리 숙여야 하는 그곳. 도대체 이유도 없이 한참 떨어진 곳으로 혼자 불려 들어가 옷까지 벗어야 했던 프랑크푸르트 공항. T-shirt에 달려 있던 장식용 브로치로 인해 두려움에 떨어야 했던 아내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트라우마에 짓눌리고 있다. 손톱깎기가 무엇이라고 검색대에서 빼앗아간 비 내리던 스페인의 마드리드 공항.
비행기는 언제나 날카롭다. 아니 비행기가 날카로운 게 아니라 비행기와 관련된 사람들이 그렇다. 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건 모두 안전상의 이유라는 걸. 승무원들은 바닥에 놓은 작은 가방을 지적하며 의자 밑에 넣으라고 한다. 혹시라도 난기류와 부딪힐 경우 가방이 튀어 오르는 위험 상황을 미리 차단하려는 이유라는 걸 알면서도 늘 신경이 쓰인다. 이게 다 하늘길을 날아야 하는 비행기가 지닌 숙명적인 사항인지라 모두 다 수긍할 수는 있지만 어딘가 모르게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날개 위에 떨어지던 햇볕. 눈이 부셨다. 창을 닫을까 하다가 그대로 두었다. 눈이 부실 만큼 다가오는 하늘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며칠 동안 떠나 있어야 하는 내 나라, 내 땅은 자꾸만 뒤로 밀려났다. 이쯤 해서 나는 어이없게도 카츄사를 버리고 미련 없이 떠나버리는 네퓨로도프를 생각하기도 했고, 이미자의 '섬마을 선생님'을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비행기는 하늘을 날고 있다. 시드니를 향한 여행길도 그렇게 열리고 있었다.
비행기는 캄캄함 밤하늘을 무표정하게 날고 있다. 스크린을 켜고 이리저리 돌려가며 적절한 영상을 찾아보는데 그저 밍밍하다. 이럴 때 사용하라는 것이 스마트폰이다. 영화 몇 편과 언제나 읽을 수 있는 단편소설 몇 편이 들어 있다. 황정은의 연작 소설 "연년세세". 우리가 안고 사는 가슴 저린 삶의 편린들을 펼쳐보면서 나의 가슴마저 쏙쏙 아려오는 것을 즐긴다. 사람 살아가는 맛이다. 대부분 승객들이 잠에 빠져든 비행기는 무서울 정도로 적막하다. 김대현의 "홍도"의 첫 부분의 분위기가 느껴진다. 화장실을 다녀왔을 때 자기 자리에 앉아 자신의 스크랩북을 들여다보고 있는 여자. 그렇게 시작하는 소설. 아, 그건 비즈니스 클래스였지. 그렇지만 비좁은 이코노미 클래스에서도 지금은 충분히 그런 분위기를 받아들일 만큼 기내는 적막했다. 그 적막 속에서 '연년세세'의 한영진을 이해하려 했다. K- 장녀 한영진. 이제는 노인들 몇몇이나 받아줄 한영진의 안쓰러움을 시드니로 가는 밤 비행기 속에서 나는 끄덕이고 끄덕이면서 받아들였다.
무릎도 제대로 펴지 못하는 비좁은 좌석. 이거야말로 제대로 된 여행 이야기라고 생각하다가 이순일의 피맺힌 삶의 절규에 고개를 숙였고, 순자인 듯, 순자 아닌 순자 같은 이순일의 한恨을 알알이 그려봤다. 그리고는 이런 세세한 것들까지 소환해 내는 비행기에 소름이 돋았다. 잔뜩 구부리고 웅크려 앉은 까닭에 한영진을, 이순일을 만나게 되는 거라고 혼자서 히죽거렸다. 이것이야말로 루쉰魯迅이 "아Q정전"에서 말하는 정신승리법이 아니고 무엇일까. 터질 듯이 아픈 종아리를 주무르면서도 소설에는 쉽게 빠져들었다. 스마트폰에 소설을 담아 놓기를 잘했다고 스스로를 대견해하면서.
치킨? 비프?를 내세우며 승무원들이 건네는 밥을 두 번이나 받아먹으며 이젠 자야겠다고 몇 번이고 주억거렸으나 어깨를 타고 내려 온몸으로 차곡차곡 쌓이는 불편함 가운데로 이미 들어와 버린 한영진, 이순일 모녀와 그 사이로 끼어든 한세진과 한민수. 황정은이 던지는 화두는 자꾸만 쪼개졌고, 번번이 흩어져 칼날이 되었다. 작아도 날카로웠고, 무뎌도 가슴을 베어버릴 수 있는 기운이 스며 있는, 보기만 해도 가슴을 찔러오는 듯한 칼날. 그런 황정은의 칼날에 마주 서지도 못한 채로 폐부를 찔리고 가슴을 베었다. 비좁은 이코노미석에 앉아 발이 저리고, 가슴을 베이고 있는데도 비행기는 잘도 날고 있었다.
느닷없이 여행을 재정의하려고 했다. 황정은의 칼날에 폐부를 찔리고, 가슴을 베인 몸으로 생각해 낸 건 여행은 그대로 우리의 삶이라는 것이었다. 어디서든, 언제나든 우리가 살아야 하는 삶. 내 발로 걸어야 하고, 내 머리로 생각해야 하는. 잊을 수도 없고, 잊히지도 않는 우리의 삶. 그것을 여행은 벗어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도 여행은 적어도 '피안彼岸의 세계'이다. 건너편에서 나를 바라보는 시간 말이다. 오늘 불편한 이코노미석에 앉아 있는 것도 결국은 나를 바라보는 일이다.
한영진이 한세진이 되었다가 이순일이 한영진이 되기도 하면서 가냘픈 잠의 밑단을 잡아들었다. 여전히 비행기는 어두운 하늘을 날고 있었으며, 좌석은 비좁았고, 나의 여행은 불편했다. 그렇게 나는 시드니로 다가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