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 North Seydny는 평창동
키리빌리Kirribilli에서 오페라하우스를 바라보고 싶었다. 정확하게 말하면 오페라하우스 방향을 향해 멍하니 앉아서 남태평양의 바람을 느껴보고 싶었다. 서큘러키Circular Quay에서 키리빌리로 향하는 배를 탔다. 배를 기다리는 시간은 잠깐이었다. 그 짧은 와중에 손자가 히죽거리며 다가온다.
ㅡ할아버지, 저기 배 위에 있는 깃발이 뭔지 아세요? 호주 깃발 말고요. 가운데 노란 동그라미가 있는 거요.
호주에 대해서 전혀 공부를 안 하고 온 나는 손자 앞에서 부끄럽다.
ㅡ응, 그러니까 그게.......
ㅡ할아버지, 모르시죠?
ㅡ모른다기보다는 그게 말이야....
ㅡ솔직하게 모른다고 말씀하셔요. 저건 호주 원주민 깃발이에요.
초딩 2학년 짜리에게 한 방 제대로 먹었다.
이 녀석들은 호주 여행을 계획했을 때부터 인터넷을 찾아가며 이것저것 다 찾아보았다고 했다.
호주 원주민 깃발은 1971년 해롤드 토머스가 고안한 것으로, 검은색은 원주민을, 노란색 원은 태양을, 붉은색은 원주민들이 대지와의 영적 결속을 위한 의식에 사용하는 붉은 황토를 상징한다. 1995년 호주 의회에서 공식 깃발로 승인되었다. 원주민 깃발은 호주 백인의 인종차별과 원주민의 저항을 상징하는 의미가 커서, 공식 승인 이후에도 정치적 논란과 함께 특별한 경우에만 게양되었다. 2022년 호주 정부는 해롤드 토머스에게 2천만 달러를 지급하고 저작권을 확보해 누구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고 주요 국가기관이나 하버브리지에 영구적으로 게양하고 있다.
부두에 앉아 있다가 승선한다. 크램과 같이 승선하기 전에 교통카드를 태그하고 하선하여 다시 태그 해야 한다. 2층으로 올라가 바닷바람을 쐬며 이리저리 해찰하다가 키리빌리Kirribilli 부두를 지나치고 말았다. 거기가 종점인 줄 알고 있었던 우리는 참 엉터리 여행객이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구글지도를 들여다보는 난리부르스를 한참 추고 난 후 노스 시드니에서 내려 슬슬 걸어 키리빌리로 돌아오기로 했다.
노스시드니 부두는 한가한 시골 느낌이었다. 바람이 제법 세차게 불었다. 그랬다. 을씨년스러웠다.
ㅡ할아버지, 교통카드 찍으세요.
오늘 손자에게 제대로 걸렸다.
부두 옆에는 텅 빈 공원하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케스터튼 공원Kesterton Park. 아무리 봐도 누가 놀러 오지 않을 것 같은. 그저 바람만이 휘돌아 다니는.
그네를 발견한 아이들은 신이 났다. 그런데 호주의 그네는 우리 그네와 달리 의자가 달려 있어서 유아용 그네는 어린이들이 앉을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엉덩이가 들어가지 않는다. 바람 때문인지 텅 빈 공원을 차지하고 놀다가 슬슬 걸어보기로 한다. 그냥 이곳에서 놀다가 돌아가는 배를 타고 갈 생각도 했으나 시간은 많고, 이럴 때 호주의 주택가도 걸어보자고 했다.
그런데 검색해 보니 이곳은 우리의 평창동이었다. 다른 지역보다 집값이 20배가 비싸다고 한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부자티가 나지 않는다. 평창동의 성벽 같은 높은 담벼락도 없고, 집의 크기도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공기는 맑고 조용하고 뭐가 여유가 있어 보인다.
좁은 골목을 따라 작은 주택이 이어지기도 하고, 골목을 벗어나면 아주 작은 공원이 자리 잡고 있기도 하였다. 골목을 따라 밀슨공원으로 내려갔다. 가꾸어 놓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공원이다. 잔디밭만 잘 손질해 놓은.
벤치에 앉아 바람과 같이 논다. 시드니는 바닷가라서 그런지 바람이 많다. 그 맑고 싱그러운 바람말이다.
요트가 몇 척 정박되어 있다.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는 저 보트를 타고 즐기는 사람들이 부러웠다. 영화에서 흔히 보는 모양이다. 가끔씩 태평양을 횡단했다는 기사와 함께 우리 앞에 나타나는.
며칠이라도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처럼 모든 것이 정지되어 있는 고요함. 가슴으로 파고드는 신선함을 즐기고 있는데 느닷없이 소설가 이상李箱의 <권태>라는 수필이 떠올랐다. 이건 정말 아니다. 이런 상황과 그림 같은 마을에서 이상李箱이라니, 그것도 <권태>라니.
도시에서의 삶에 지친 이상은 평안남도 어느 농촌으로 도피한다. 푸르고 고요한 기운에 마음을 씻고자 하지만 그는 이내 싫증을 느낀다. 반복되는 폭염에 짓눌리는 단조로운 일상에서 기인하는 권태감에 그는 내면마저 무력해진다. 장기를 두기도 한다. 그야말로 멍한 상태에 빠져보기도 한다. 그야말로 완전한 허탈을 꿈꾼다.
젊었을 때 절에서 여름을 보낸 적이 있었다. 가소롭게도 소설을 쓰겠다는 치기 어린 마음의 발로發露였다. 법당 처마에서 덜렁거리고 있는 풍경소리만이 내가 존재하고 있다는 느을 가져다줄 뿐, 모든 것은 정지상태였다. 사흘을 보내면서 알았다. 정지상태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선禪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속세에 찌든 몸으로는 견뎌내지 못할 다른 차원의 세계라는 것을. 가부좌를 틀고, 면벽面壁하며 내면을 닦아내는 혹독한 시간을 통해 선禪의 세계로 들어선 스님들에게 고개가 숙여졌다. 수련을 하지 않은 입장에서는 적당히 시끄럽고, 무언가 얽히고 혼란스러운 속세가 좋다는 것을 그해 여름에 알았다.
이상李箱처럼 완전한 허탈에 빠져드는 것도 사실 우리 같은 범인凡人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음이 번잡해도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 틈바구니가 좋고, 적당히 소란스러운 캠핑장 모닥불에 앉아 있고 싶어 한다. 힐링이라는 허울 좋은 이름을 갖다 붙이면서.
이상李箱의 <권태>를 떨쳐버리기 위해서라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공원을 벗어나 도로로 나왔다. 아무도 없다. 길가에 멈추어 있는 차량들처럼 시간도 멈춘 듯하다. 평창동이 그랬다. 높은 담벼락만이 전부였던. 사람이 없는 것도, 세상의 고요가 다 몰려와 있는 것 같은 것도 두 동네가 똑같다.
'사는 게 재미없어. 정신이 퍼뜩 나는 게 어디 없나?' 돈은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넘쳐나고 시간은 지루하게 흘러가는 드라마 속 '우아한' 부인이 하는 말이다. 시장에서 생선이나 채소를 팔고 있는 여성에게 물어보라. '사는 게 재미없다'는 생각을 할 겨를이나 있는지를. 허리도 못 펴고 하루 번 돈으로 자식들 먹이고 가르치는 데 여념이 없는, 그래도 그게 재밌어 죽겠는 사람은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운 시장통에서도 고요한 저택에 앉아 있는 것 이상으로 살고 있다.
노스시드니. 이 고요하고 가라앉아 있는 정지상태의 동네를 느릿하게 걸었다. 바람이 불었고, 햇볕이 발목까지 내려와 같이 걸었다. 이 동네와 서울의 평창동을 수없이 왔다 갔다 했고. 이상李箱의 <권태>까지 떠안은 내 머릿속은 너절했다. 그러고 보면 여행은 꼭 마음을 가라앉혀 주거나 다독여 주는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어수선해지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가다듬어져 살이 붙기도 한다.
오전에 홀로 산길을 걸었다. 4시간 32분 동안 혼자의 시간을 걸었다. 가을을 장만하고 있는 산길은 파란 하늘을 불러왔고, 바람을 데려다 실컷 춤을 추어댔다.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혼자 걸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았으며, 잠깐이라도 '권태倦怠' 같은 느낌은 끼어들지 않았다. 그 산길에서, 홀로 걷는 산길에서 시드니를 생각했다. 내가 걸었던 시드니는 내가 걷는 산길 그대로였다. 낯섦에 잠깐 젖어들었지만, 이내 그 낯섦은 눈에서 익었으며 마음으로 들어올 때는 그냥 내가 걷는 시간이었었다. 거기에도 사람이 사는 시끄럽고 소란스러운 곳이었으며, 시장에는 장사하느라 여념이 없는 사람들이 전을 벌이고 있었다. 노스 시드니와는 다르게.
산길을 걷다가 길을 잃었다. 익숙한 산길에서 길을 잃었을 때, 여행은, 여행지에서 걷는 걸음은 어디까지나 낯섦을 객관적 상관물로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생각을 했다. 여행지에서는 나의 걸음을 걸어야 한다는 것. 그 걸음으로 인해서 잠깐이라도 나를, 나의 내면을 다르게 색칠해 보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받아들인 객관적 상관물이 쌓인다는 것. 그것이 나의 여행이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