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 Coastal Walk에서 바람을 보았다
바람이었다. 그 옛날 찰스브른손이라는 배우가 광고하던 남성 화장품. "맨담"이 생각났다. 온몸을 파고드는 바람을 안고 "맨 바람" 이렇게 외쳐봤다. 그러나 나름 크게 외쳤지만, 나의 목소리는 한 오라기도 모습을 드러내지 못했다. 그랬다. 그날 본다이비치는 그야말로 "맨 바람"의 세상이었다. 누군가는 속이 시원하다고 했고, 또 다른 사람은 옷깃을 여미며 몸을 웅크렸다. 돌틈에 몸을 감추어 바람의 횡포를 견디었다. 그 본다이 비치를 따라 이어지는 길. Bondi to Bronte Coastal Walk를 걸었다. 바람과 함께 또는 바람을 따라.
말없이 달리던 우버택시 기사는 브론테 비치Bronte Beach에 내려놓았다. 그리고는 'Have a wonderful day!'라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세운다. 'Thank you. you are best driver.' 호주까지 와서도 영어는 참 고생이 많다.
ㅡ할아버지, 발음이 그게 뭐예요?
손자 녀석이 입을 삐쭉 내밀며 비아냥거린다.
ㅡ아이고 이 녀석아, 늙은이는 세상 무서울 게 없단다.
브론테 비치Bronte Beach에서 본다이 비치Bondi Beach까지, 아니 그 너머까지도 이어지는 Bondi to Bronte Coastal Walk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점령하고 있었다. 걷는 사람들, 달리는 사람들. 작은 배낭을 메고 걷는 노부부의 뒤를 따라간다. 빠른 걸음이다. 그렇다. 건강에 좋다는 빠르게 걷기다. 저녁마다 고인돌 공원에서 내가 걷는 방식이다. 그러나 바람이 옆구리를 찔러오다 못해 거대한 포말을 일으키며 바다를 짓밟고 있는 여기는 너나 할 것 없이 즐기는 여기는 Bondi to Bronte Coastal Walk. 나는 길을 아껴가며 걸어야겠다.
걸음을 멈추기도 하면서 걷는, 달리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저들이 품고 있는 화두는 무엇일까. 걷거나 달릴 때 꼭 챙겨야 하는 것은 그날의 화두話頭다. 무엇인가 열고 싶은, 그러나 쉽게 열리지 않는. 괜히 언저리만 맴돌다 마는. 그러나 어쩌다 활짝 열려 마음을 통째로 흔들어 주기도 하는.
타마라마 비치Tamarama Beach까지는 낯섦을 즐기며 걸었다. 남태평양을 휘저으며 한꺼번에 몰아닥치는 바람에 짓눌렸고, 호주 사람들의 걸음을 바라보아야 했다. 우측통행에 익숙한 우리와는 달리 좌측통행을 하고 있는 그들과 자꾸 부딪치고 보니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사람들 중에 절반 정도는 달리고 있었고, 달리는 사람 중에 절반 정도의 남자들은 웃옷을 벗어부쳤다. 그리고 그들 중 셋의 둘은 몸에 그림을 그려 놓았다. 총천연색으로. 자유분방한 사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는 하지만, 동양적 사고를 바탕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자유롭지 못했다. 여성분들의 복장도 자꾸 눈길을 피하게 했다.
타마라마 비치Tamarama Beach에서 길은 모래사장으로 이어진다. 그 많은 사람들이 즐기고 있는 모래사장에서 바람은 씻은 듯이 사라져 버렸고, 나도 걸음을 멈추었다. 비치 발리볼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배구공을 떨어뜨리지 않고 제기차기하듯이 패스하며 놀고 있는 젊은이들. 그들은 모두 한여름처럼 비키니 차림이었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중년들도 똑같았다. 남자들은 한결같이 상반신을 드러내고 있었고, 그들의 등이나 어깨, 팔에는 그림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거의 맨몸이나 다름없는 여자들도 대부분 그림을 그려 넣었다. 충격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딘가 낯설어 약간은 당황했다.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바위에 앉았다. 바람이 살아 있어서 그런지 파도타기를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 거대한 파도에 갇혔다가 다시 풀려나는 짜릿함을 즐기는 사람들의 등에도 그림은 어김없이 그려져 있었다. 그때 문득 스쳐가는 생각 하나. 서양의 개인주의.
마크스 공원Marks Park 아래에 자리 잡은 멕켄지스 전망대Mackenzie’s Point lookout에서 바람은 최절정의 무공을 시전 했다. 견딜 수 없을 만큼. 그 거대한 해풍을 맞으면서도 간식을 먹었다. 소고기를 사기 위해 매일 저녁에 들러서 우리의 홈플이나 이마트처럼 익숙해졌던 콜즈 월드스퀘어점Coles World Square에서 사 온 빵, 소시지. 바위 뒤에 숨어서 목까지 지퍼를 올리고 단단히 여미고 앉았는데도 감당할 수 없었던 멕켄지스 전망대Mackenzie’s Point lookout로 몰려온 바람. 그 바람 앞에서도 거의 수영복 차림이거나 상반신을 벗어버린 호주 사람들은 춥지 않은 걸까. 그것보다 부끄럽지는 않은 걸까.
ㅡ관점과 초점이 다르니까.
미국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친구의 말이 생각났다.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저들의 개인주의도 분명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개인주의를 이기주의와 혼동하면 큰일이다. 물론 우리의 입장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기는 하지만.
캐나다 고등학교에 연수하러 갔었다. 수업 참관을 하러 교실에 들어갔는데 한 학생이 책상 위에 발을 올리고 앉아 있었다. 교사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수업을 했다. 그 학급에 있던 한국인 학생은 학생이 선생님을 대하는 마음이 중요한 것이지, 겉으로 보이는 자세는 본질이 아니라고 했다.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그들과 남을 먼저 의식하는 우리와 크게 다른 점이다.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우리로서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이다.
코스탈 워크Bondi to Bronte Coastal Walk를 걸으면서 품고 걸었던 개인주의. 그걸 수용하는 관점으로 시드니를 여행하면서 깨달은 점이 많다. 끊고 맺음이 분명한 삶의 방식은 우리는 수용하기가 어렵지만 저들은 생활화되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는 호주. 호주에서는 호주법을 따라야 한다.
본다이 비치가 시작되는 어름에 아이스버그 수영장Bondi Icebergs Swimming Club이 있었다. 바닷물을 담아 놓은 야외 수영장. 가슴까지 저려오는 차가운 물을 견딜 수 있었지만, 입에 들어오는 짠물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익숙하지 않은 탓에 오래 있을 수가 없었다. 1인 10달러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왔는데 사진이나 몇 장 찍고 나가야 하다니. 아쉬웠지만 숙소에 있는 수영장에서 실컷 즐긴 것으로 퉁치기로 한다.
본다이비치 공원에 앉아 피쉬앤칩스Fish and Chips를 먹는다. 공원 앞에 유명한 가게가 있었는데 포장만 되는 집이었다. 말 그대로 생선과 감자튀김인데 그야말로 순삭이었다. 감자튀김이 건강에 해롭다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 맛있으면 0칼로리고, 입에 달라붙는 맛이라면, 하하 호호 재밌게 먹는 것이라면 틀림없이 약이 될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노래를 흥얼거렸다. 김광석이었던가. 꿈에서 보았다던 길에서 그는 새로운 꿈을 이으려 한다고 노래했다. 햇살이 웃고 있는, 떠나간 사람의 머릿결 같은, 느끼며 바라볼 하늘과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는 떠나간 사람을 그리워하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그는 바람을 향해 걷는다.
본다이 비치 공원에 앉아 같이 걸어온 바람과 작별을 한다. 남태평양의 바람과 함께 코스탈 워크Bondi to Bronte Coastal Walk를 걸었던 걸음. 서양의 개인주의를 생각했던 걸음의 끝에서 무엇을 들고 돌아서야 할까. 결국은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오늘 몸으로 부딪쳤던 바람이 동해를 따라 걷는 해파랑길에서 맞는 바람과 같은 듯 다르듯이. 내가 걷는 걸음이 문신으로 가득한 상반신을 내놓고 걷는 저들과 다른 것처럼.
바람은 제 방식대로 불어온다. 그 바람을 따라 사는 사람들의 숨결도 다르다. 그래도 우리는 지구촌에서 살아가는 같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