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Blue Mountain으로 가야 하는 이유
ㅡ아빠는 엄청 좋아하실 걸요.
Blue Mountain 1일 투어를 예약하면서 딸이 웃음 짓는다. 원래는 우리들만 Blue Mountain 트레킹을 예약하려고 했는데 가능한 날짜를 잡을 수 없었다. 딸은 못내 아쉬워했다.
ㅡ엄빠는 두 발로 걸으며 느끼셔야 하는데......
Blue Mountain은 정말 한꺼번에 와락 덤벼들더니 장엄하고 시원한 조망을 안겨주었다. 우리나라의 산, 많이 돌아다녔지만, 지리산 천왕봉, 소백산 비로봉, 치악산 비로봉과는 전혀 다른 조망을 Blue Mountain은 여러 번 보여 주었다.
ㅡ다른 팀보다 30분 먼저 출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건 가보시면 압니다.
젊은 가이드는 자신을 믿으라며 차문을 닫았다. 오늘 일행은 우리와 다른 팀 3명.
ㅡ오늘 모시는 손님들이 적어서 아주아주 쾌적한 여행을 즐길 수 있겠습니다. 그러면 대한관광 Blue Mountain 1일 투어 시작합니다. 궁금하신 점은 언제든지 문의해 주시면 세밀하게 답변드리겠습니다.
Blue Mountain은 시드니에서 멀지 않다. 자동차로 1시간 30분 정도 거리.
ㅡ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녀오시는 분들도 많아요. 시드니 센트럴역에서 기차를 타고 카툼바역에서 내려 버스나 택시를 이용하면 됩니다. Lincoln's Lock은 택시, Three Sister's는 버스. Three Sister's에서 카툼바 폭포Katoomba Falls까지 숲길을 따라 걸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 대한관광에서는 개인여행자들은 갈 수 없는 특별한 뷰 포인트를 보여드릴 건데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ㅡ 블루마운틴을 걸어 다니면서 자연을 즐기는 트레킹 투어도 있다고 하던데요.
날짜가 맞지 않아 예약할 수 없었던 트레킹 투어에 대해 물었다.
ㅡ네, 전문 가이드 자격증이 있는 한인 2세가 안내하는데 등산을 많이 다니신 분들에게는 최고의 시간이 될 것입니다. 호주의 그랜드 캐년이라고 하는. 골짜기와 링컨스락 못지않은 뷰포인트까지.
ㅡ예약하려고 했는데 날짜가 없더라고요.
ㅡ아무래도 참가하는 분들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매일 진행하지 않거든요.
Lincoln's Lock은 버려진 듯한 느낌이었다. 주차장(같은 곳)에서 Lincoln's Lock까지 가는 길은 나중에 가게 되는 세 자매봉Three Sisters이나 카툼바 폭포Katoomba Falls와는 달리 날 것 그대로였다. 세차게 불어노는 바람을 안고 걸으면서 느낀 감정. '날 것 그대로라면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테고 그렇다면 대단할 거야.'
그랬다. Lincoln's Lock은 떨어져 앉은 느낌이었다. 지리산 와운마을 산꼭대기에 올라앉은 '와운 카페'같은 느낌말이다. 반야봉을 보겠다고 가파른 능선을 따라 1시간 이상 걸어 올라가야만 누릴 수 있는 좁지만 아늑한 '와운카페'처럼, Lincoln's Lock은 외로움을 잔뜩 머금고 있었다.
산행을 하면서 여러 곳의 전망대를 만났다. 이름도 없는, 그렇지만 애써 올라온 사람들의 마음을 마구마구 후벼 놓는 곳.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도 명성을 날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낮은 산 어디쯤이라고 해서 가볍지도 않은 곳. 도락산 꼭대기 아래 너럭바위, 속리산 입석대 부근의 숨은바위, 희양산 남릉 꼭지바위, 천반산의 한림대, 진도 동석산의 말바위 등.
전망대는 세상을 보기도 하지만, 그런 전망대에 앉아 조망을 즐기다가 내면을 들여다보는 때가 많다. 그래서 산에 오르고, 산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오늘 Lincoln's Lock은 세속에 물들어 있었다. 가이드가 가장 먼저 꺼낸 것은 어떤 여가수가 이곳 Lincoln's Lock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말이었다. 거슬렸다. Lincoln's Lock은 내가, 내 느낌으로 즐겨야 한다. 가이드가 지시하는 대로 똑같은 장소에서 똑같은 자세로, 아무런 마음가짐도 없이 그 여가수가 찍었다는 자세로 사진이나 찍는 Lincoln's Lock이라면 날 것 그대로의 전망대가 주는 살아있는 느낌은 아니다. 발아래 엎드려 있는 제이미슨 협곡 건너 펼쳐진, 마치 기와지붕과 같은 킹스 테이블 랜드King's Table Land를 실컷 흡입해야 하고, 너럭바위 물웅덩이에 비친 하늘도 낱낱이 들여다봐야 할 텐데 사람들은 반들반들하게 닦여진 그곳에서 사진만 찍고 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건너편의 킹스 테이블 랜드King's Table Land를 바라보며 링컨스 락Lincoln's Lock은 있는데 킹스 테이블 랜드King's Table Land는 완벽하지 않은 선운산 천마봉의 조망을 끌어다 놓아보기도 했다. 사자바위가 너무 가까워서 아쉬웠던 천마봉의 깎아지른 절벽을 애써 불러들였다.
Lincoln's Lock을 두고 돌아선다. 어느 산행에서나 돌아서는 걸음은 개운하지 않다. 무엇인가 잃어버린 느낌으로 허전함을 달래는 걸음이다. 그래서 또 다른 산행을 꿈꾸게 된다. Lincoln's Lock을 두고 나오는 걸음이 꼭 그랬다. 눈앞에 펼쳐진 산줄기와 발아래 골짜기를 바라보면서도 가지 못하는 아쉬움에서 오는 허전함으로 짓눌린 걸음을 걸어 주차장으로 가는데 기어이 비까지 내린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Lincoln's Lock으로 몰려가고 있다. 저들도 그렇겠지. 바위 끝에 걸터앉아 두 손을 들어 올리거나, 하트를 그리거나, 저 멀리 어느 곳이나 가리키는 자세로 사진 몇 장 찍고 돌아서겠지. 나처럼, 우리처럼.
잠시 이동한 버스는 카툼바Katoomba 시내를 통과해 세자매봉Three Sisters이 바라보이는 에코 포인트Echo Point에 우리를 내려놓았다. 눈앞에 보이는 세자매봉Three Sisters. 중국 장가계 십리화랑에 있는 세지매봉이 생각났다. 장가계의 세 자매봉이 더 좋은 것 같다. 장가계의 세 자매봉은 아래에서 올려다는 보아야 하고, 여기는 위에서 내려다보게 된다. 어떤 젊은이는 저 봉우리에 올라가 청혼을 했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세 자매봉은 눈길이 가지 않았다. 가이드는 더 아래에 있는 퀸 엘리자베스 전망대Queen Elizabeth Lookout에 가보라고 한다. 영국 여왕이 왔다 갔다는, 그래서 유명해졌다는. 가지 않았다. 제이미슨 골짜기와 건너편 기와지붕 같은 봉우리들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어느 곳이나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안내판을 보니 다음 목적지인 카툼바 폭포까지 이어지는 숲길이 있다. 그 길을 걸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걸을 수 있는 자유여행객이 아닌 것을.
가이드는 우리를 카툼바 폭포 전망대 입구에 내려 주었다. 시닉월드 케이블카 탑승을 신청하지 않은 우리는 자유시간이다. 안내판을 따라 숲길을 걷는다. 어디선가 새소리가 들려왔는데 아름답다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이다. 서식 환경을 이겨내고 멀리까지 의사소통하기 위한 적응의 결과라고 한다. 게다가 이 친구는 머리가 아주 뛰어나 5세 어린이 정도의 지능을 가지고 있어서 스스로 뚜껑을 열고 먹이를 먹거나 수도꼭지를 돌려 물을 마실 수도 있다고 한다. 머리에 노란 벼슬 같은 것이 달려 있는 큰유황앵무새. 제이미슨 협곡에서 오래오래 살아가기를.
몇 곳의 전망대에서 즐기는 조망은 에코 포인트 전망대에서 본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숲길을 걷다가 작은 폭포를 만났다. 그곳에서 이정표를 보았는데 세 자매봉을 바라보던 에코 포인트까지 갈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가이드가 숲길을 걸어서 그곳으로 가라고 했으면 좋았겠다며 아쉬워했지만 지나가버린 기차가 아니겠는가. 놓친 열차가 아름답다는 말이 생각났다.
약속한 장소에서 만난 가이드는 시드니로 돌아가기 전에 마지막 한 곳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인적이 없는 산속으로 차를 몰아가던 가이드는 길가에 차를 세웠다. 사람의 통행 흔적이 적은 길, 그러나 산꾼들의 눈으로 보면 고속도로 같은 길을 따라 숲 속으로 들어갔는데......
잠시 후 우리는 말을 잃었다.
블루마운틴은 오랜 기간 동안 퇴적된 지층이 통째로 솟아오른 고원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침식 작용을 받은 까닭이라고 한다. 약 2억 5천만 년에서 1억 7천만 년 전, 얕은 바다나 분지에 퇴적된 사암(sandstone과 셰일shale 같은 단단한 퇴적암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로 수평한 층을 이루며 쌓였다. 약 100만 년 전 플라이오세Pliocene 시기에 지각 변동(코시어스코 융기, Kosciusko Uplift)으로 인해 이 거대한 퇴적층이 거의 수평한 상태를 유지하며 통째로 솟아올라 거대한 고원(plateau)을 형성했다고 한다. 그 후 수백만 년 동안 바람과 물과 같은 자연의 힘에 의한 침식erosion 작용을 받는다. 침식이 계속되면서 단단한 사암층 부분은 남아 가파른 절벽이 되었으며, 평평한 봉우리 부분은 단단한 암석으로 이루어진 퇴적층의 표면이라고 한다.
따라서, 블루마운틴의 평평한 봉우리는 뾰족한 모양으로 솟아오른 산(peak-forming mountains)이 아니라, 침식에 의해 깊이 깎여나가고 남은 고원의 잔해인 것이다. 그래서 킹스 테이블 랜드King's Table Land가 여기저기 널려 있는 것이다.
저 기다랗게 뻗어가는 능선을 꼭 걸러보고 싶었다. 저런 길이라면 하루종일이라도 걸을 수 있다. 제이미슨이라고 불리는 협곡 안에 숨어 있는 비경은 말할 수도 없이 아름답다고 한다. 블루마운틴 트레킹을 위해서라도 다시 시드니에 와야겠다. 코알라가 즐겨 먹는다는 유칼립투스 잎에서 증발된 미세한 오일 입자가 햇빛과 만나 빛을 산란시키면서 신비로운 푸른색 안개를 형성하기 때문에 멀리서 보면 산 전체가 푸르게 보인다는 블루마운틴. 평평한 산등성이를 따라 걸으며 블루마운틴의 몸매를 실컷 즐기고, 제이미슨 협곡을 따라 블루마운틴의 속살을 들여다보며 소통하고 마음을 이어가며 자연의 이야기를 듣고, 자연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을 오롯이 느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