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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걸음, SYDNEY

15 SEDNEY와 사람, 사람들 - Epilogue를 대신해서

by 힘날세상


1

여행의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할 무렵 즈음부터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그들이 호주 사람들인지, 여행객인지 구별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우습게도 나는 호주 사람들만 바라보려고 했었다. 호주 사람들의 감정과 그들의 이야기가 호주에 대해서 제대로 말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텀바롱 공원Tumbalong Park 아침 산책길에서 만났던 젊은이는 땀을 흘리며 달리고 있었다. 연두색 싱글렛에 검은 드라이핏 팬츠를 입은 그는 날렵해 보였다. 안정된 폼과 가볍게 앞뒤로 치는 팔 동작에서 고수의 기운이 풍겼다.

'달리기의 품질'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지는 모르지만, 2000년대 한참 마라톤에 몰입해 있을 때부터 '품질'이라는 말을 사용했었고, 그보다 더 적절한 말을 생각해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냥 쓰고 있다. 하여튼 그 젊은이의 '달리기 품질'은 그야말로 최고급이었다.

'달리기의 품질'을 매듭짓는 것은 내딛는 발에 있다. 당연히 그의 발을 바라보았다. 역시, 그는 아주 뛰어난 '품질'의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포어풋Forefoot이었다.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발의 착지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마라톤을 시작하는 초보인 경우 누구나 힐스트라이크를 권한다. 즉, 발뒤꿈치부터 바닥에 닿게 하는 방법이다. 그래서 일반 러닝화는 뒤꿈치가 두껍다. 몸의 체중을 다 받아내야 하기 때문이다. 풀코스를 몇 번 달리고 나면 뒤꿈치로 착지하고 발바닥으로 힘을 모은 후에 발가락으로 힘차게 박차고 나가는 방법을 익히게 된다. 그런데 최근에는 대부분의 러너들이 포어풋Forefoot으로 달리고 있다. 처음부터 발가락으로 착지하는 것이다. 100 미터 선수들처럼 말이다.


오늘 아침 달리기에 나선 젊은이의 러닝 폼은 사실 나에게는 큰 의미는 없다. 그런데도 뭐 눈에는 뭐만 보인다고 그의 러닝을 그런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아, 고수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문득 스쳐가는 것.


바람을 가를 듯이 질주하는 젊은이는 지금 어떤 화두話頭를 들고 있을까.


사람이라면 누구나 혼자 있게 되면 무언가를 생각하게 된다. 공상이든, 망상이든, 상념이든 말이다. 경험으로 보면 달리는 사람들은 그날의 화두를 지니게 된다. 얽히고설킨 삶의 이야기, 꼬여버린 연인과의 사랑줄, 며칠 째 이어지지 않는 글의 한 문장.


힐스트라이크에서 포어풋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말 힘든 노력이 필요하다. 발가락으로 받아내야 하는 무게감과 무릎을 스프링처럼 이용할 수 있는 자세 등을 익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그렇다면 저 젊은이는 힘겨운 노력을 하며 그 고통을 다 견뎌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기록을 단축하겠다는 진취적인 마음까지.


젊은이는 미래지향적이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자신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는 것은 쉽지 않다. 소파에서 뒹구는 순간의 쾌락을 이겨내기가 어디 쉽겠는가.



2

Bondi to Bronte Coastal Walk에서 만난 사람들. 웃통을 벗고 달리던 사람들. 처음에 그들을 봤을 때 참 거북스러웠다. 동남아에서 흔히 보던 모습을 여기에서도 보다니. 그날 Coastal Walk로 몰아붙인 바람은 가히 상상을 못 할 정도였다. 그 바람 앞에서 웃통을 벗어버린 사람들.


무례한 것이 아닐까.


서양 사람들은 언제나 나를 중심에 놓는다. 개인주의라고 한다. 우리는 나는 뒷전으로 돌리고 내가 속해 있는 집단을 중심에 놓는다. 그래서 언제나 남을 의식하게 된다. 그들은 'My Mother'라고 하고, 우리는 '우리 어머니'라고 말한다. 내 앞에 항상 다른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기에 가려야 하는 게 있다. 행동, 언어, 사고에 언제나 다른 사람이 들어와 있다.


지금 웃통을 벗고 달리거나 걷고 있는 저들이 거북스러운 것은 나뿐이다. 저들은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할 즈음, '그렇다면 왜 저들은 웃통을 벗고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순간 느끼는 것이 있었다.


다시 마라톤으로 돌아가보자. 마라톤에 한 번 몰입되면 쉽게 헤어나지 못한다. 어린이들이 게임에 빠졌을 때와 똑같다. 정말 모든 것 위에 달리기가 있다. 늦잠꾸러기가 새벽에 일어나 10km를 달리고 나서 출근하고, 저녁에도 달려야 한다. 주변 사람들이 손가락질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달리기에서 가장 즐거운 것은 소나기가 내리는 날 웃통을 벗고 달리는 것이다. 맨몸으로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줄기를 받아 본 적이 있다면 그 느낌을 조금을 알 것이다. 그러나 강한 소나기가 온몸에 부딪치는 쾌감은 느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다. 그렇다고 아무 데서나 옷을 벗을 수는 없다. 비 오는 날 달리기는 그래서 들판이 제격이다. 아무도 보지 않는 들판.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런 곳에서나 웃통을 벗고 달릴 수 있다.


Bondi to Bronte Coastal Walk에서 웃통을 벗은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남태평양의 바람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나의 의식으로, 나의 시간으로 나만을 생각하며 바람의 이야기를 몸으로 듣고 있는 것이다.



3

사람들은 저마다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어떤 이들은 손으로 밥을 먹고, 얼굴에 문신을 한다. 입술을 잡아 늘이기도 하고, 옷을 입지 않기도 한다. 우리는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지만, 그들도 우리를 분명히 손가락질하며 바라볼 것이다.


여행은 그런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어준다. '젖어든다'. '빠져든다'. 어느 게 적확할지는 모르지만 여행지를 며칠 돌아다니다 보면 눈에 보이는 낯선 풍경들이 낯설지 않게 보이게 된다. '젖어든' 까닭이다. 그때부터 여행지를 바라보는 시선이 부드러워지고, 마음이 느긋해진다. 어느 순간 그 지역의 언어로 인사하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다. 여행의 매력이다.


햇볕 때문에 총을 쏘았다고 말하는 "뫼르소"의 행동을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책을 읽고 나면 고개를 끄덕이며 어느 순간, 나 자신이 "뫼르소'가 되어 있는 것처럼 여행은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내려놓고 그 자리에 현지의 분위기나 흐름을 채워 넣게 한다. 그 짜릿한 느낌이 있어 우리는 기꺼이 비행기를 탄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 핸드폰의 칩을 바꾸면서 다시 나로 돌아오는 '나'를 보게 된다.


호주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한 때 '백호주의'가 있었지만, 이민移民을 많이 받아서 다양한 인종들이 살고 있다. 그래서 다양한 문화가 혼재하고 있다. 불과 며칠 그들의 세상에 끼어들었지만, 그 며칠 동안 내 마음속에 들어왔던 그들의 다양한 문화는 언제까지나 그대로 담겨 있을 것이다. 그들의 문화뿐만 아니라 그 문화를 펼쳐내는 마음도 슬며시 따라 들어와 있을 것이다.


여행은 낯선 것과의 대화이다. 짧은 시간일지라도 말이 섞이고, 마음이 오고 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그들 곁으로 다가서게 된다. 그들이 될 수는 없지만, 그들의 숨소리를 들을 수 있고, 그들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세상을 확장해 나가게 된다.


'사람을 낳으면 서울로 보내라'는 말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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