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힘이 됩니다
벽을 치는 둔탁한 쿵쿵 소리가 연이어 들려왔다.
답답하고 괴로운 마음을 고통스럽게 표현하는 중이다.
손으로 벽을 치는지 머리로 박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묵직한 파열음이 새어 나왔다.
그의 좌절을 이해하기에 그냥 모른척하며 스스로 사귈 시간을 주느라 외면하고 있다.
그 절망이 가라앉기만을 바라면서.
그런데 그때 누군가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그의 상황을 잘 아는 누나들에게서다. 영상통화를 걸어온 두 명의 누나들은 밝은 표정으로 그를 위로하고 격려하려는 의도다. 처음엔 마음을 가다듬지 못해서 똑바로 바라보며 말도 못 하던 그는
감정을 누그러뜨리며 누나들의 친절한 배려에 밝은 대답으로 응수했다.
어린 동생을 위해서 누나들이 발랄한 재롱을 떠는 것이다.
대화와 웃음과 깔깔대는 통화가 한 시간가량 이어지더니 그의 표정이 평소보다 더 밝아졌다.
저녁 무렵엔 누나들이 선약으로 잡았던 청년의 생일축하 자리에도 초대해 주었다.
고3으로 한국에서 대안학교를 다녔던 그가 이곳 르완다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까지는 좋았다. 다만 그것이 현실화되는 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 실감하려니 큰 상실감에 부딪혔다.
유럽이나 미주의 백인들이 주로 다니는 국제학교는 학비부터가 만만치 않다.
르완다 영부인이 세운 국제학교 역시 입학이 수월하지 않다. 둘 다 미국과 유럽의 기준을 따르는 커리큘럼이라 언어(영어)가 능숙하지 않으면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다.
초등이나 중등의 저학년이라면 입학 후 한 두 해 고생해서 적응한다 치지만 고등은 상황이 다르다.
뒤처진 학생을 위한 배려를 하기에는 학교 측의 수고로움과 에너지 소모가 너무 크다는 점이다.
학생도 학업을 따라가기 버거우니 수학에는 다소 앞선 한국의 똘똘한 아이들이라도 입학을 허락하기 어렵다.
몇 학교를 방문해서 상담을 해보니 새로운 학생을 환영하기보단 좀 늦은 감이 있으니
다른 방법을 모색하라는 느낌을 준다. 학비도 높은데 설령 기회를 얻는다 해도 적응을 자신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을 받아들여서, 그는 학교 대신 영어학원에서 열심히 언어를 익히기로 했다.
그런 어느 날, 현지인이 운영하는 또 다른 국제학교의 정보를 얻었다.
국제학교가 현지학교와 다른 점은 인터내셔널 기준의 커리큘럼을 가르친다는 점이다.
그 기준에 준한 교육과 학점을 이수하면 유럽과 미주 대학으로의 진학이 수월하다는 점인데, 이 학교의 학비는 기존의 학교에 비하면 훨씬 부담이 덜한 곳이었다.
그 학교를 방문했고, 우리를 맞아 학교 소개와 상담을 한 우간다출신의 영어 선생님도 친절했다.
환대하며 외국인을 존중하는 느낌을 주었다.
케임브리지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학교라, 그의 나이에 맞는 12학년이나 그 아래 11학년으로
어플라이 해볼 것을 권유했다. 학교는 아담하게 작았지만 음악 스튜디오와 교실이 아기자기하게 꾸며진 곳이었다. 9월 중순에 새 학기가 시작되고 초에 새로운 신입 전입생들의 레벨 테스트가 치러질 예정이란다.
캐임브리지시스템에서 배우는 영어, 수학, 과학, 세계사 등의 4과목을 본다는데 그는
그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교감 선생님이 참고하라며 알려준 레벨
11의 수학문제지를 주야장천 살펴볼 뿐이었다. 수학도 영어를 잘 읽어내야 수식을 세울 수 있는 주관식 문항이 많았다. 수식을 풀어낸다 해도 관건은 영어의 독해 능력이었다.
그는 시내의 학원을 다니며 나름 한 달간의 수고와 노력을 들여서 레벨 테스트를 치렀다.
아침 8시에 학교에 가서 3시간의 영어 시험과, 또 3시간에 이르는 수학 시험을 보았다.
그리고 다음날엔 과학과 세계사 시험을 연이어서 보았다.
첫날은 어떻게든 6시간을 버티며 답을 적어 냈는데 둘째 날은 어찌해 볼 재간이 없다며 두어 시간 만에 시험을 끝내고 나왔다.
그런 난관을 거치고 나서 일주일 후에 학교를 찾았다.
결과를 확인하고 입학금을 내고 교복을 받을 요량이었다.
전화와 인터넷으로 통보하고 결과를 알려주면 좋겠지만 여긴 모든 것이 그렇게 빠르지도 정확하지도 않다. 대면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결과는 냉정했다.
교감은 약간 둘러대며 말했지만 영어실력이 안 되니 당장 입학은 어렵고, 언어를 익혀서 3개월 후 새로운 학기에 다시 도전하라는 것이었다.
학년을 하나 아래로 내려서 받아줄 것이라 예상했던 우리의 생각은 처참히 무너졌다.
며칠간 아니 몇 주간 긴장하며 신경을 곤두 세웠던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몸에서 기운이 빠지며 의욕이 사라졌다.
현실을 직시하려니 막막한 좌절과 불안이 엄습했다.
그의 막막함은 더욱 심했다.
그렇게 처참하게 침잠해 들어가고 있을 때 여기저기서 전화를 걸어준 것이다.
어른들은 또 다른 가능성과 길을 제시해 주었고 형 누나들은 위로를 건네주었다.
긴장했던 몸과 마음을 위로하며 맛난 것을 먹고 잠도 푹 자고 나서 다시 모색하기 시작했다.
인생에는 다양한 길이 있고 또 다른 루트가 있다는 말을 새기는 중이다.
그는 그렇게 젊은 날, 이른 좌절을 맛보았다.
인생이란 순탄치 않지만 다시 일어서면 희망이 보이는 법이다.
청년은 주변의 관심과 사랑으로 다시 미소 지을 수 있었다.
한 통의 전화에는 사람을 세우는 사랑의 힘이 있다.
표지 : 무산제 화산 주변의 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