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에 돈을 지불하는 이유다
장인어른의 소천에 즈음하여 읽기 시작한 책이 ‘아버지의 해방일지’였다.
부모의 죽음을 맞아 육신을 하늘로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여정에 공감해서인지 문장의 표현 하나하나에 마음이 갔다. 생을 마감한 아버지의 삶을 회고하며 이를 역사로 남기는 자식의 정성도 감동이다. 남도의 언어가 구사하는 찰지게 감칠맛 나는 순박한 어감이 나의 밋밋한 표현에 신선한 자극을 주었다.
문학을 하는 사람들의 문장과 언어는 이런 것이로구나를 느끼게 만드는......
치열한 냉전의 논리 위에서 살아야만 했던 사람들.
누구나 원하는 자유와 해방이었지만 이를 쟁취하기 위한 길과 과정은 다르고 치열했다.
고향마을 사람들은 혈연과 친분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였지만 이념으로 나뉘어 대립해서 산으로 도망하고 이들을 쫓는 기구한 운명에 놓였다. 서로에게 총구를 겨누어야 했지만 정조준해서 살상할 수는 없기에 허공으로 방아쇠를 당길 수밖에 없었던 정분으로 얽힌 사람들.
빨갱이로 몰아붙이고 매도할 수는 있어도 붉든 파랗든 한 사람이라는 존재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인간일 뿐이었다. 거칠고 엄혹했던 세월, 한 사람의 선택이 연좌제로 이어져 혈연들의 삶을 가로막고 가족들은 피멍으로 낙인찍힌 삶을 살아가야만 했다. 이제는 과거의 구습이 되었지만 당시를 살아내야 했던 사람들에겐 좌절과 절망이며 가슴 터지는 굴레였다.
죽음은 그러한 낙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해방책이었는지도 모른다.
돌아가신 아버지와 실타래처럼 얽힌 인연들과 마주하면서, 작가가 곱씹는 빨치산 아비의
숭고한 그리고 인간적인 그러면서도 연약한 실존이던 부친의 기억이 애잔하고 덤덤해서 따스했다.
몇몇의 문장이 나의 마음에 꾹꾹 새겨졌다.
“오죽했으면 그랬겠냐”를 달고 사시던 빨치산 부모의 인간에 대한 깊은 배려.
가급적이면 책을 길게 오래 읽고 싶어서 찔끔찔끔 아껴가며 쳅터를 넘겼다.
감정을 이렇게 묘사하고 표현하는 것이구나를 감탄하며 문장을 베끼고 습작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의 공감을 일으키는 글쓰기.
사람 간의 공간과 거리를 이야기할 때에는 손발을 마주치고 맞장구치며 동의하고 싶어졌다.
이곳 아프리카에선 간혹 상대방이 내게 깊숙이 밀착해서 다가오는 때가 있다.
글에서 표현하듯 사람 사이와 간격이 연인이나 부부의 관계가 아니라면 허락될 수 없는 정도의
수준까지.
거리로 친근감을 가늠할 수 있다는 표현이 깊은 공감처럼 마음에 남았다. 이곳 사람들은 한국보다 사람 간의 거리를 더 가차이 밀착해서 들어온다. 문화의 차이 같은 소소한 다름이다.
작가 정지아가 그의 아버지를 떠나보내며 기억하고 더듬어내는 아름다운 추억의 파편이 아빠와의 거리를 이어주는 고리임을 발견한다. 육신으로는 보내지만 기억 속에선 더욱 따스하고 친근한 거리에 존재하게 하려는 존경하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나의 아빠.
그는 한 시대를 실천적이며 열정적으로 살아낸 우리의 아버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