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게 다녀간 2주와 1년 살이의 다른 점
“집으로 돌아가는 길” 이란 제목으로 적어 두었던 메모가 핸드폰 노트에 다시금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아이폰 사용으로 바꾸면서 예전의 기록이모조리 복원되는 중입니다.
8년 전 지금의 학교에서 2주간의 영상제작 교육을 마치며 집으로 돌아가는 단상을 적은 글이었습니다.
2016년 12월 20일의 기록이네요.
목이 많이 부어올랐습니다. 침을 삼킬 수도 없는 통증이었습니다.
먼 비행길이 두려워 한인교회에 나오신다는 내과의사를 찾아갔습니다. 헌금 봉투에 적어준 처방전으로 겨우 약을 받아 듭니다. 기분은 벌써 낫는 것 같습니다.
어릴 적 잦은 앓이를 했었던 기억이 되살아 납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노랗고 달콤한 바나나우유를
머리맡에 두곤 하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사무치게 그리운 시간입니다.
우기의 아프리카가 이렇게 추운 줄 몰랐습니다.
차가운 물이라도 있음에 감사하며 벌컥벌컥 몸을 씻었던 것과 얇은 이불에 의지해서 잠을 청한
결과인 것 같습니다. 그 흔한 차량도 소유하지 못한 가난한 선교사들과 현지인과 같은 식생활을 받아들이며 병약함이 찾아왔나 봅니다. 물론 그들은 저를 정성껏 대해주었습니다.
물을 데워 쓰기에는 가스비가 아까워서 그럴 수 없었을 뿐입니다.
철저하게 결핍되고 빈곤한 곳에서 또 많은 깨달음을 얻고 갑니다.
풍요 속에서 중요한 것을 놓치고 허탄한 것에 마음을 쏟는 것에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새삼 느낍니다. 여전히 아프면서 배웁니다.
르완다. 에티오피아. 홍콩을 거쳐 우리의 땅에서 비로소 와이파이의 자유를 얻습니다.
8년 전의 기록이 오늘의 나에게 도전하듯 질문하는 것 같습니다.
현재의 너는 어떤 마음으로 살고 있느냐고?
그때보다는 조금 긴 여정으로 르완다에 머물고 있습니다.
영상제작을 가르치고 복음을 이야기하며 가난한 사람들을 살피고자 하는 마음은 여전합니다.
그렇지만 때로는 버겁고 지치고 힘들다는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도와야 하는지 알지만, 나의 능력과 재화와 힘에는 한계가 있으니
일일이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지혜롭고 적절하게 때론 거절하면서 상대를 애정으로 살핀다는 것은 여간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게 아닙니다. 그러다 보면 내게서도 힘이 쭉 빠져나가는 때가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있다면 감정의 회복이 빠를 텐데, 홀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아내와 딸이 이곳으로 와준다면 내년도 학생들과 마주할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계속 머무는 건 어려울 것 같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은 지금 다니는 학교와 친구들이 좋고 서울에서의 삶이 너무도 만족스러워 떠날 마음이 없습니다. 북미권의 선진국이었다면 두말없이 따라나섰을지도 모르지만 아이에겐 여전히 아프리카대륙이 두려운 땅인가 봅니다.
이곳에서 또 다른 문화와 교육을 경험해 보는 것도 즐거운 도전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설령 학교를 안 다니고 홈스쿨링을 하며 여행을 다니면 더 풍요로운 인생의 경험을 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만약 학교에 다닌다면 영어와 불어를 자연스럽게 접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다음 주 개강을 앞두고 마음이 산란한 게 강의를 준비해야 하는 부담도 있고 쓸쓸하다는 기분도 드네요.
오늘은 학교에 안 나가고 집에서 이런저런 정리와 채비를 합니다.
일단 개강하면 올해는 금세 지나갈 겁니다.
내년에 이곳에 계속 남느냐 한국으로 돌아가느냐는 아직 미정이지만 그분의 인도하심에 의지할 따름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 가족과 함께하는 것이, 가장 든든한 힘의 근원인 것 같습니다.
표지사진 : 루혼도 호숫가의 배와 하늘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