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선배와 친구 그리고 청년에게 보내는 편지
한국에 계신 벗들 안녕히 지내시는지요?
주일인 오늘, 오전 예배만으로도 피로하지만 오후 워십을 마저 드려야 하는 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아침엔 한인교회의 예배로, 흩어져 사는 서로의 안부라도 물을라 치면 시간을 내야 하고, 오후엔 학교의 예배라 학생과 참여하는 현지인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함께 해야 합니다.
아침 찬양은 11시 30분에 시작하는데, 차량이 없는 저를 픽업해 주셔서 한 시간 전에 집을 나섭니다. 11시경에 미리 예배당에 도착하면 잠시 성경을 읽고 지체들과 인사를 나눈 뒤 본예배에 들어갑니다. 1시간가량의 예배를 마치면 다과로 친교를 나누다, 오후 3시에 시작하는 학교 예배를 위해 다시 서두릅니다. 학교 모임은 2시부터 시작되지만 한 시간은 현지인들이 서로의 삶을 나누고 성경 공부하는 시간이라 본 예배의 시작은 세십니다.
찬양이 시작되면 현지인들이 얼마나 열정적이고 역동적인 찬송을 드리는지 자리가 들썩들썩해집니다. 목소리만으로는 표현이 부족하니 찬양과 춤이 뒤섞인 카니발과 같은 에너지를 뿜어 냅니다. 오전의 한인예배가 점잖게 손을 올리며 고요한 묵상과 내면의 성찰을 추구하는 스타일에 가깝다면 오후의 찬양은 환호성을 질러 대며 발을 구르고 껑충껑충 춤추는 축제를 연상케 합니다.
어떤 스타일이 좋고 바람직하다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앞의 예배엔 외국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으로서의 간절함과 절실함이 담겨있다면, 후자에선 그를 찬양하고 경배하는 감사와 즐거움의 기쁨이 살아있다는 말입니다.
순간, 나의 벗들도 이런 감격과 절실함으로 예배에 임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사람이 텅 비어 있는 교회의 모습이 떠올라 마음이 아리기 시작했습니다.
손을 들고 찬양하며 몸을 움직이고는 있었지만 그 생각으로 인해 슬픔이 엄습해 왔습니다.
봉사단원으로서 복된 소식을 나누려 이곳에 왔지만, 정작 보혈의 기쁨을 회복해야 할 곳이
나의 모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모이기를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SNS로 만나고 온라인으로 교감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서로의 눈을 보고 이야기 나누고 악수와 포옹을 통해서 온정을 느끼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바빠서 해야 할 일도 많고 쉬고 놀고 구경도 해야 하지만 주일의 우선순위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 중요한 가치입니다.
교회에 사람이 주는 것을 체감합니다.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고 청년들이 사라지며 급속한 노령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경험합니다.
상호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고, 관계가 어려워지며, 이데올로기와 이념의 문제가 표면화되기도 합니다.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 같은 성직자와 교인들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리 쳤듯이 종교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우리를 신앙으로부터 떠나게 만드는 요소가 너무도 많다는 점입니다. 시험에 들게 만들어서 떠나게 하고,
서로를 정결케하는 자정 능력도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죠.
그만큼 신앙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중심으로 모이는 것은 너무도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우리의 교회에 문제가 있고 하자가 보이더라도 그분이 바라보시는 교회공동체의 가치는 실로 빈약하지 않습니다. 지역의 자그마한 교회는 시내의 큰 규모와 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공동체적 실존의 생명체라 믿습니다. 건강하게 서지 않으면 소멸되고 사라지는 것에 차이가 없으며 시간차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그 지역을 섬기는 공간이 소중한 가치를 담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해서, 그 자리를 지키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성실함이 심히 아름다운 순종임을 깨닫습니다.
딱히 선교의 전후방이란 개념을 들이대지 않더라도 본국의 베이스캠프를 지키는 임무는 실로 작은 사명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제가 아는 신앙의 공동체를 거쳐갔던 친구와 선배 청년들에게 문안합니다.
어디에 계시든 믿음의 가치를 부여잡기 바랍니다. 신앙의 공동체 안에 머물러 계시기를 권면합니다.
서로를 투명하게 바라보고 선하게 인도하는 관계 안에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역의 성전을 지키고 거하며 그를 만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소망이 없어 보이는 세상에 한줄기 빛과 생수의 근원이 되면 좋겠습니다.
분단과 이념으로 쩍쩍 갈리지는 한반도의 해결하지 못한 분열을 혜안과 깊은 학문을 겸비한
신앙인이 조율해 나갈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돈과 학벌 이기주의와 자본의 맘몬을 극복하는 것은, 믿는 자가 그리스도의 가치를
삶으로 온전히 살아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마음이 무거워서 편지가 심각하게 흘렀습니다.
제가 말씀대로 살고 있느냐면 그렇지 못한 점이 더 많은 지라 부끄럽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명백합니다. 다만 우리가 거기에 도달하지 못할 뿐…….
내일 아침에 다시 보면 지울 것 같은 글이지만 용기 내어 부치려 합니다.
제 친구 중엔 다른 종교를 가진 분도 계시고 신앙이 없는 분도 계신 것을 압니다.
종교는 상통하는 점이 많으니 보편적인 것은 취하시면 되고 무시하셔도 괜찮습니다.
모든 분들께 안부를 전하고 싶었다 생각해 주십시오.
외국에 나가면 모국을 생각하고 그리워하기 마련인가 봅니다.
진실로 친구들의 안부와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