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의 원시림 산책과 호숫가 여행
융해 포레스트의 울창한 원시림지역을 향하는 기대감으로 마음이 한껏 들떠 있었다.
이곳을 가는 방법이야 다양하겠지만 우리는 원시림 주변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키부 호숫가의 학교에 들려 학용품을 전달해야 하는 목적을 띠고 있었던 터라 부득이하게 여행사의 서비스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번 아카게라 국립공원의 관광 때처럼 운전사 겸 관광가이드인 아돌프가 5인승 지프를 몰고 우리 3명을 대동해서 길을 나선 것이다. 지난번 북쪽방향의 무산제는 갈수록 고도가 높아지며 급경사가 이어진 험한 길이었는데 이번 남서쪽 방향의 융해로 가는 길은 제법 평평한 길이 많아 비교적 완만한 편이었다. 그런 이유에서 간간히 평야가 나타났고 벼농사를 짓는 농지들이 눈에 띄었다.
키갈리에서 아침 7시에 떠나 융해 포레스트 캐노피 다리 매표소까지는 대략 5~6 시간이 걸렸다. 갑작스레 쏟아지는 비를 피할 겸 공원 내 건물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었지만 억세게 내리치는 비는 그칠 기미가 없었다. 해발 2,500미터 내외를 오가는 산악 지형은 사람이 인위적으로 길을 내지 않으면 접근과 진입이 어려울 만큼 빽빽하게 들어선 나무와 풀로 뒤덮여 있었다.
갑자기 침팬지나 영양 늪지대의 악어와 뱀이 튀어나온다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어 보이는 음습함이 도사리고 있었다. 원시림다운신비감과 범접할 수 없는 베일에 싸인채 인간의 발걸음을 거부하는 공간이라고나 해야 할까?
융해포레스트를 오는 관광객이라면 흔들 다리인 캐노피 코스를 선택하거나 침팬지들의 서식지를 둘러보는 루트 중 하나를 고르게 된다. 우리는 이곳을 오는 길에 야생동물과 침팬지들을 길에서도 보았으니 흔들 다리 코스로 입장을 했다. 외국인은 140달러이고 주민증을 가진 사람들은 80달러의 비용을 지불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기는 했지만 우비를 둘러쓰고 한 손에는 나눠준 나무지팡이를 들고 안내자의 인도 하에 2~3킬로에 달하는 숲길을 헤쳐 나갔다. 이미 한 바퀴를 둘러보고 나가는 외국인들과 이제 들어선 우리 일행이 좁은 길에서 만나 교차하며 지나간다. 곳곳엔 수령이 높아 보이는 웅장한 나무들이 하늘로 곧게 쏟아 있고 나무 표면엔 이끼와 고사리들로 생명의 신비함을 더했다.
비로 인해 길이 미끄러우니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떼었고 숲과 나무들 사이로 멀리 보이는
키부호수가 벅찬 발걸음에 지친 숨을 고르게 하는 장관을 펼쳐 보였다.
드디어 도착한 캐노피 다리, 한 사람이 양쪽 와이어를 붙들고 겨우 지날 수 있는 좁은 폭 발아래에는 아래가 훤히 보이는 원형 구멍의 철판이 깔려있었다. 지상에서 꽤 높은 곳의 고지 두 곳을 연결한 출렁다리는 왠지 지난날의 군시절을 연상케 하는 울렁거림을 전해주었다.
비도 내리는데 별로 유쾌하지 않은 긴장과 불안함으로 이 긴 다리를 굳이 지나야만 하나 라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 순간 그 걸음을 뒤로 돌렸다.
일행은 그 스릴과 추억을 담아내려고 애쓰는데 나는 의외의 선택을 한 것이다.
실은 우리나라 국립공원의 산림과 시설이 너무도 훌륭해서, 지불한 비용에 비해 큰 감동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는 입장료도 저렴한데 말이다. 어쩌면 침팬지의 서식지에서 그들의 세상에 발을 들여놓았으면 다른 감흥을 받았을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융해지역의 게스트하우스에서 하루를 쉬고 다음날 키부호수로 향했다.
호수지역이 가까워질수록 제법 큰 규모의 녹차밭이 그 푸르름을 뽐내며 향긋함을 피워내고 있었다. 잠시 사진을 찍으려고 차량에서 내리니 이내 쏜살같이 일꾼들이 다가와 갓 따낸 찻잎을 사라고 손을 잡아 끈다. 차를 볶아야 내려 마시기라도 할 텐데 그 싱싱한 잎을 내가 어떻게 말려서 먹을 수가 있을까? 그냥 미소만 남기고 발걸음을 옮긴다. 한 시간쯤을 달려 키부호숫가에 이르렀다. 호숫가를 굽어보는 자리에 위치한 초등학교에 전해줄 물건을 내려주고 잠시 학교를 둘러본다. 선교회가 세운 학교라 시설과 규모가 현지와는 큰 차이가 나는 견고함이 엿보이는 잘 지어진 찬구구의 조이플스쿨이다.
서둘러 키부호수의 북쪽으로 향했다.
호수라고는 하지만 우리나라의 호수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규모라 가로 폭은 3~40 키로, 남단에서 북쪽 호수까지는 90킬로 이상의 구불한 길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호수 중앙에는 커다랗고 조그마한 섬들이 솟아 있고 이 건너편이 콩고다.
키부호수의 북단에는 아직도 활화산으로 가끔씩 폭발을 하는 콩고의 고마가 나온다.
메탄가스와 온갖 지하자원이 매장되어 있다는 말인데 그만큼 개발에도 어려움이 따르는 지역이다.
우리는 호수 중간부쯤의 한 호텔 식당에서 여장을 풀고 점심을 주문했다.
남해의 바다에서 바라보는 전경과 비슷하게 바다처럼 넓은 호수에 여기저기 다도해와 섬들이 눈에 들어온다. 호숫가 주변의 모래사장과 갈대 사이로 노니는 갈매기를 보면 영락없는 바다다.
우스개 소리로 이곳의 갈매기는 이 호수가 바다인 줄 알고 평생을 살아간단다.
30이 넘는 나이에 아직 한 번도 대양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우리 학교 선생님들을 보면
르완다의 내륙에 사는 현지인은 아마 키부호수를 보면서 바다를 가늠해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을까 싶다.
장시간 차량에 탑승해서였는지 호숫가에서의 쉼이 달콤하고 감미로웠다. 호숫가의 산책은
잔잔한 만족과 여유를 선사해 주었다. 140불을 지불한 융해에서 보다 아무 입장료도 내지 않은 키부 호수에서의 산책에서 더 큰 환희와 감동이 밀려왔다.
키갈리로 돌아오는 길은 갈 때와는 다른 윗길 코스였는데 해발이 높은 고지대 길엔 비포장이 많았고 곳곳이 비와 산사태로 깎여나가고 포장된 도로라 해도 움푹 파인 웅덩이로 상태가 안 좋았다. 현지 드라이버와 SUV 차량이 아니었다면 1박 2일로 다녀오기엔 무리였을 여행이었단 생각이 든다.
안전하게 집에 도착한 순간 깊은 안도와 일상으로 돌아온 평온함이 몰려왔다.
길을 나서면 새로움과 만나고 그 에너지는 또 살아가는 자양분이 된다.
떠나서 배우고, 다시 새롭게 발을 딛고 나아가게 만드는 게 여행의 이유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