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 하나도 귀하게 사용하는데 하물며
일본 간사이 공항에서 내려 처음 마주한 사람은 허연 백발의 노인이었다.
여행자들의 출입국 안내를 맡아 내국인과 외국인을 분리해 줄을 세우며 신고서를 작성하라는 안내를 해주신다. 이미 은퇴했을 나이의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이 공항에서 일을 하고 계셨는데, 약간 생경하면서도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오사카 시내와 교토를 오가는 지하철 안팎에서도 나이가 꽤 들어 보이는 노년의 직장인들이 눈에 들어왔다.
매표소의 역무원을 비롯해서 제복을 입고 역내를 순찰하는 직원 중에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 분들이 많다.
출퇴근 시간의 지하철 안에도 노년의 직장인이 눈에 띄는데 어딘가에서 여전히 일을 하고 계시는 모양이어서 우리 사회와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느낀다.
오사카 성 주변을 거닐고 천수각으로 입장하는 과정에서도 나이 드신 남녀 어르신들이 길안내와 가이드를 맡아 왕성한 사회생활을 하고 계셨다. 젊은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역할이지만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일을 나누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은퇴를 이미 넘겼지만 노년을 건강하게 살아가게 하려는 사회적 합의와 배려로 느껴져 훈훈하다. 어른들을 공경한다는 것이 무임승차를 허용하는 것이나 입장료를 줄여주는 정도가 아니면 좋겠다. 그분들이 쌓아온 전문성과 경륜이 사장되지 않고 노년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근본적인 합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청년층이나 시니어 모두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겠지만 건강한 육신을 움직여 적당한 노동을 하며 존재가치를 확인케하는 것은 인간에 대한 존중이라 믿는다.
일본은 이미 장수시대의 노년사회로 접어들어서 노년층이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대안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직장의 정년을 늘리고 임금을 적게 받도록 한다거나 노년층의 일자리를 개발하는 식으로 말이다.
우리 사회 역시 노령화 시대로 접어들었음을 쉽게 느끼게 된다. 출근 시간이 지날 무렵에 지하철을 타보면 대번에 알 수 있다. 사회생활의 일선에서 벗어난 노년층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정년을 연장해서 적게 받으면서라도 일하고 싶어 하지만 그런 기회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엔 인정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젊을 때 한참 벌어서 노년기에는 일을 안 하면서 살겠다는 꿈을 꿀 수는 있지만, 수입과 상관없이 몸을 움직여서 노동을 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고귀한 것이다.
오사카 경제의 중심부이며 고층 빌딩이 운집한 우메다역 지하 공간을 걸었다.
여러 개의 지하철 노선과 철도가 만나는 지점에는 서울역사보다 넓은 지하 공간이 드 넓게 펼쳐져 있었고
사방팔방으로 오가는 인산인해의 출퇴근 인파로 요동쳤다. 바닥의 동선 표시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제 갈 길을 찾아 이동하는 무리 속에서 일본의 문화와 경제적 힘이 느껴진다.
세계인들이 대단하게 여기는 일본과 중국을 유일하게 한국만이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내게도 없지 않지만
이웃 나라 일본은 큰 땅을 지닌 경제대국이라는 수식어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느낀다. 정치에 있어서는 우리와 비슷하게 수준이 낮게 평가되지만 그래도 사회적 합의와 성숙도는 훨씬 앞서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잠겼다.
종교인과 정치인은 자신들의 사회적 생명 연장에는 혈안이지만 서민들의 삶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으니
깨어있는 시민들이 서로 연대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 모두들 안녕하시길......
여전히 동전의 쓰임새가 많고 아날로그적 감성이 살아 숨 쉬는 일본에서,
후쿠시마의 방사능으로 감정이 좋지 않은 그들에게서
임진년의 혼란을 도모한 오사카 성을 거닐면서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고 곱씹었다.
표지 : 도톤보리지역의 전광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