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성찰

글쓰기를 시작하며

by 준구

저는 90년대 중반에 방송에 입문해서 줄곧 제작 피디로 일하고 있습니다.

근 삼십여 년간 영상물 제작에 몸담으며, 변화무쌍한 기술발전과 그에 따른 시장환경의 변화를 체감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콘텐츠의 제작자와 수용자가 철저히 분리된 환경이었다면 이제는 그 구분이 모호한 시대를 맞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는 누구나 손쉽게 영상으로 메시지를 만들어냅니다.

시청자들이 수동적 수용자에서 이제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생산자로 변모한 것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개개인의 손에는 4k와 8K 퀄리티를 장착한 핸드폰이 쥐어 있고 가정에는 컴퓨터가 널려있습니다. 언제든지 바로 SNS에 올릴 수가 있고 맘만 먹으면 조금 더 정교한 편집을 거쳐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할 수도 있습니다.

실로 놀라운 변화가 아닐 수 없습니다. 불과 일이십 년 전에는 방송사나 제작사 정도가 방송용 카메라를 갖추고, 값비싼 편집 장비에 테이프를 넣어 영상물을 제작했으니 말입니다.

이처럼 소수의 전유물이었고 제한된 미디어 생산자가 메시지를 만들어내던 특권은, 급속한 기술발전으로 누구나 접근 가능한 수준의 환경으로 바뀌었습니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극소수 성직자들만 가지고 있던 성경을 모든 이의 손에 쥐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지만 레시피가 공개되었다고 해서 모두가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내지는 못합니다. 영상제작에도 건축의 공정과 같이 각 과정 과정이 있고 그 단계들이 정교할수록 완성도는 높아집니다. 잘 그려진 도면 하나로 그 건축물을 짐작할 수 있듯, 기획은 제작과정을 제작과정은 후반 작업을 잇는 가교이며 상호 보완해서 결과물을 빛냅니다.


방송을 비판적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


어떤 의도로 영상을 만들 것인가?

촬영 분량을 어느 정도로 하고, 어떤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인가? 얼마의 길이로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는 매 순간 놓인 선택의 기로입니다. 영상을 취사선택하는 순간 나는 시청자에게 보여줄 것을 정하는 선별 자이며 결정권자가 됩니다. 영상을 어디에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서 강조점이 달라집니다.

영상의 문법에 맞게 촬영하고 편집했느냐에 의해서 시청자는 편안하게 보기도 하고 불편해서 안 보게도 됩니다. 내레이션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감동과 이해의 폭이 다릅니다. 음악과 효과는 죽은 영상도 살려내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요즘은 방송사의 종류도 다양하고 SNS의 매체도 많아서 거침없이 만들어지는 영상이 많습니다. 영상 문법의 기본을 지키지 않아 거칠게 튀는 (점프컷)을 별생각 없이 남발하고 이미지 라인이 무시되기도 합니다.

모든 게 허용되고 모든 것이 자유롭습니다. 그러나 책임 있는 미디어의 생산자가 되고자 한다면, 영상 문법의 기본만 숙지하고도 수준 높은 양질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예전에 선배 피디가 1:1 편집기 앞에서 밤을 새우며 편집을 하면 그 뒤에 앉아서 한 땀 한 땀 이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생각했습니다. ‘왜 저 그림 다음에 저 샷을 붙였을까? 왜 저 정도의 길이로 잘랐을까? 왜 저기에 배치를 했을까?’ ‘아! 저렇게 붙이려고 촬영을 그런 식으로 한 거였구나.’ 하는 순간순간의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의 편집은 지금의 컴퓨터 편집처럼 언제라도 가져다 붙이고 수정하는 게 자유롭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시작부터 끝까지 차례에 맞춰 순서를 이어가야 끝을 보는 테이프 방식이었습니다. 그때는 전체 그림을 이해하고 1에서 100까지의 순서도를 머리에 외워서 그대로 붙여가야 했습니다. 만일 그때 요구되었던 총체적인 사고를 기초로, 오늘의 도구를 사용한다면 영상 편집에 그만한 고수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니들이 게 맛을 알아?”
"레시피를 안다고 다 요리 맛이 좋아?"
"성경이 있다고 진리를 이해해?”


네 맞는 말입니다. 이제 제대로 된 맛을 함께 음미해 보면 좋겠습니다.

먼저, 활자든 영상이든 미디어를 통해 생성된 메시지를 잘 평가하고 걸러내서 소화하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 이상을 뛰어넘는 나의 메시지를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녹여낼 수 있습니다. 재료가 좋은데 맛까지 훌륭하면 금상첨화입니다. 한 가지 일을 지속해오다 보니 이제는 누군가에게 저의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며 경험했던 기록과, 문화센터와 중고등학 및 대학에서 강의했던 미디어교육의 자료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저의 요리가 모두의 취향에 맞을 수는 없지만 정직한 재료와 애정을 담은 마음으로

깊게 우려낸 정성이 담겼기에 몸에는 좋은 음식일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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