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창동에 견줄만한 부유한 주택이 언덕마다 즐비하게 들어섰습니다. 성북동의 외교단지와도 비슷하고 베버리 힐스의 모습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부촌의 규모가 더 늘어났습니다. 학교가 터를 닦을 무렵인 10여 년 전에는 흙먼지 날리던 황톳길은 이미 콘크리트 차도로 바뀐 지가 꽤 됩니다.
학교에서 번화가 시내로 가려고 소형버스를 탔는데, 아프리카답지 않게 정거장 위치, 노선표, 운행 시간, 요금 지불 방식이 잘 정착되어 있었습니다.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를 넘나드는 장거리 버스는 아프리카에서도 대체로 잘 정비되어 있지만, 시내 간선 대중교통 체계를 안정적으로 갖춘 나라는 찾아보기 힘듭니다.
르완다는 남한의 1/4 정도 크기의 나랍니다. 아프리카에서 비교적 작은 나라로 인구밀도가 상당히 높습니다. 그래서 나름 아시아의 홍콩과 같은 아프리카의 허브를 꿈꾸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업으로는 현대와 KT가 들어와 있습니다. 물론 삼성과 LG는 전 세계에 안 들어가 있는 나라가 없을 정도라 대리점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KT가 르완다에서 통신망을 설치했고 현대차가 들어와 있어서 현대 기아 마크의 자동차도 종종 만납니다. 아프리카 전역은 대체로 일본 구형 트럭과 SUV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해외 유무상 원조란 명목으로 자국의 중고차와 신차를 이미 오래전부터 아프리카 대륙에 퍼트려 놓았습니다. 평소에는 못 느끼던 자부심과 애국심을 먼 타국의 아프리카에서 우리 상표를 통해 확인하는 것 같습니다
케이티아르엔이 르완다 정부로부터 2014년부터 2038년까지 25년 동안 LTE망 도매 사업을 독점적으로 할 수 있는 사업권을 확보했다.
언덕 위에 자리잡은 고가의 주택단지
아프리카 친구들은 정말 열심히 수업을 듣고 영상제작에 임했습니다.
크리에이터 creator, 데스티니 Destiny, 트랜스포머 transformers라는 팀명으로 각자의 맡은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습니다. 크리에이터 팀은 르완다 키갈리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담아 외부에 알리는 홍보영상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서로가 모여 시내로 촬영을 다니며 촬영본을 제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구했습니다. 끙끙대며 편집에 열을 올리고 내레이션을 작성하며 낭독을 연습하고 녹음했습니다.
기획, 촬영, 편집에 임하는 수강생들
데스티니와 트랜스포머는 자신들이 다니는 월드미션프런티어 고등학교가 어떤 학교인지를 알리는 영상 제작에 들어갔습니다. 학교와 시내로 몰려다니며 촬영하고 인터뷰하는 모습과 열정이 더없이 멋져 보였습니다. 비록 한 대의 카메라일지언정 번갈아 촬영하며 배우고 익히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습니다.
시행착오도 많이 겪었습니다. 찍는 것은 자유지만 영상문법을 지키지 않고 찍은 원본으로 보기 좋은 편집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갑니다. 편집도 잘 붙을 수 있게 재촬영에 임합니다. 이제는 비교적 다양한 사이즈와 촬영하고, 시작점과 끝 지점에서 충분히 멈추는 시간도 줍니다. 다양한 카메라 워킹도 시도해 봅니다. 비록 초보의 손에 들린 카메라지만 아프리카의 강한 태양과 색감이 어우러져 매혹적인 순간들을 포착해내기도 했습니다.
애버딘에서의 커피와 휴식
저는 수업을 마친 주중과 주말에 학교 근처에 있는 애버딘이란 레스토랑을 즐겨 찾았습니다.
호텔 정원에 위치한 곳이라서 인터넷과 와이파이가 빠른 속도로 펑펑 터지니 쉼과 휴식을 즐기기엔 안성맞춤인 오아시스였습니다. 하얀 도자기 주전자에 담겨 나오는 커피는 3잔은 족히 나오는 분량인데 커피농장에서 갓 볶아서 나온듯한 원두의 맛은 황홀함 그 자체입니다.
아프리카의 고지대에서 태양 빛을 피한 나무 그늘 아래 누리는 커피 한잔,
토스트를 겸한 이 시간은 바로 평안과 힐링의 순간이었습니다.
세상이 참 좁다는 것을 경험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2009년 미국 서부를 여행할 때 산호세에서 2주간 우리 가족에게 자신의 집을 쓰라며 방을 내주셨던 최항 목사님을 다시 만났습니다. 70이 넘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멀리 르완다 키갈리에 오셔서 신학생을 가르치고 미국으로 돌아가시는 길에 하루 저녁을 같이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월드미션 고등학교의 건물과 인접해서 신학대학이 운영되고 있는데 목사님은 이곳에서 특강 차 와 계셨던 것입니다. 미국 GE에서 오랫동안 엔지니어로 근무하시고 직장에서 받은 공로상으로 도배되어있던 그분의 집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마냥 개구쟁이였던 제6살 아들에게 너무 관대하게 대한다고 저를 못마땅하게 여기셨는데, 이제 교육자의 길을 걸으시는 최 목사님에겐 그때의 깐깐함 보다는 넉넉한 훈훈함이 풍겨졌습니다.
그리고 저보다 앞서 르완다에 오셔서 신학생들에게 특강을 하시고 다시 우간다 대학으로 이동하는 조수아 여선교사를 만난 것입니다. 미국에 사는 1.5세 한국인인데 영어는 물론 우리말을 잘해서 대화를 나누다 보니, 제 여조카의 대학 선배로 둘이 함께 신앙생활을 했던 사이였습니다. ‘미국은 50개의 주가 있고 대학도 그 수가 엄청난데 이런 인연을 르완다에서 만나다니’...... 너무도 놀라워서 페이스톡으로 조카와 삼자대면하는 놀라운 기쁨도 나누었습니다. 그 둘도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간 후로는 연락이 닿지 않은 상태라 반가움이 더욱 컸습니다. 세상이 참 좁다는 생각이 들었고, 국적을 떠나 세계시민의 가치로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느꼈습니다.
강의가 늘 순조로웠던 것은 아닙니다.
멀쩡히 사용하던 노트북이 갑자기 전원이 나가더니 켜지지 않았습니다. 르완다에서 강의하려고 새로 산지 얼마 안 되는 노트북이었습니다. 이후 수업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고쳐야만 했습니다. 과연 다시 살려낼 수 있을지, 수리비는 얼마가 나올지도 모른 채 연결 연결로 알아낸 주소지를 찾아 나섰습니다. 키갈리 시내의 번듯한 상점들 뒤로 좁다란 골목을 따라 수리 점을 찾아갔습니다. 동행이 없었다거나 밤이었다면 결코 지나지 않았을 음침하고 후미진 골목길입니다. 매인 도로의 상가가 아닌지라 조그맣고 어두침침한 사무실은 첨단기기를 고치는 장소라기보다는 대장간 같은 분위기가 풍겼습니다. 더듬거리며 노트북을 분해하는 모습이 왠지 미덥지 못했는데 그의 손길이 우악스럽게만 느껴졌습니다. 저는 자리를 뜨지 못하고 불안하게 지켜보는데, 느리지만 꼼꼼한 살핌으로 하나씩 점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3시간여의 시간이 지났을까 약간의 납땜과 소프트웨어 체킹을 마치고 다시 살아났습니다. 적지 않은 돈을 수리비로 지불했지만, 대장간 같은 열악한 장소에서 첨단의 전자제품이
되살아났다는 기쁨이 더욱 컸습니다. 고장에는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아프리카의 불안정한 전기 상황도 제 노트북에 충격을 준 것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사용하는 편집 프로그램을 가져오긴 했지만 이곳의 컴퓨터 사양과 안 맞기 때문에 현지의 수준에 맞는 것에 눈높이를 맞추는 것도 애로사항 중의 하나입니다.
아프리카의 전파사와 부수기재 판매점
키갈리는 우기로 접어드는 시기였습니다. 낮에는 스콜 같은 폭우가 15분 정도 한차례씩 흩뿌렸다 개었습니다. 태양이 강하지만 습하지 않기에 모자 하나만 써도 덥지 않습니다. 그러나 밤이 되면 기온이 급속히 내려가서 초겨울의 쌀쌀한 날씨로 급변합니다. 가난한 선교사의 집에 머물며 샤워를 위해 보일러를 돌려 물을 데운다는 것이 때론 미안함으로 다가옵니다. 몇 번 찬물에 몸을 씻고, 그렇게 추우리라 생각 못하고 안 가져간 침낭 때문에 결국엔 심한 목감기를 앓았습니다. 교육 수료증을 주고 강의를 마친 이후에는 발가락까지 다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유럽인이 지어놓은 집은 거실에는 타일을 붙였는데 바닥보다 높이를 한 뼘 더 올려서 사각 위에 소파를 놓았습니다. 실내에서 샌들을 신기도 불편해서 맨발로 다니다 결국엔 모서리에 새끼발가락을 세차게 부딪혔습니다. 목은 아프고 발가락은 퍼런 멍으로 번져가는 게 비행기를 못 탈 지경으로 몸이 가라앉고 고열이 심했습니다. (추후 한국에서 새끼발가락 골절로 판명 )
현지 병원을 가자니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부랴부랴 일요일에 한인교회를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키갈리 병원으로 의료지원을 나오신 의사 선교사에게 제 상태를 보이고 헌금봉투에나마 황급히 처방전과 의사 사인을 써준 덕분에 약국에서 약을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한인교회에서 점심때 대접받은 미역국 한 사발이 제 몸을 다시 회복시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잠시 잠깐 만난 동포들은 대게 외교관, 주재원, 코이카 단원, 월드비전, 굿네이버스, 기아대책, 선교회 등의 사람들인데 공동체로 함께 모여 돕고 사는 모습이 훈훈했습니다.
상영 및 수료식
2주간의 결과물을 확인하고 멋진 수료식을 갖는 날입니다.
우리는 각 팀의 작품을 모아 함께 상영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작품의 완성도와는 상관없이
최종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도 자랑스러운 학생들입니다. 영상이 튀고 오디오 믹싱이 매끄럽지 않고 내레이션이 따로 놀지만, 효과 음악과 마지막 스크롤까지 모든 폼을 제대로 갖췄습니다. 의식을 중하게 여기는 이곳 전통에 따라 한 사람씩 수료장을 수여했습니다. 2주간의 노력을 이들도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할 것입니다. 이제 다시 멀리 콩고, 탄자니아, 부룬디, 우간다에서 함께한 월드미션의 스텝들은 다시 자기의 자리로 돌아갈 것입니다.
작품 상영회 및 수료증 수여식
“5분가량의 영상을 만들어서 상영한다는 것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열과 성을 다해서 일궈낸 노고와 열정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냅니다.
이런 열심이라면 빠른 시간 내에 놀라운 성장을 이룰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각자의 역할로 이뤄낸 열매는 협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운 것이니 끊임없이 연습하시길 권합니다.
무엇보다 사실에 입각해서 의미와 가치를 담아내는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이길 기원합니다.
어려운 발걸음으로 서로를 경험했으니, 하나의 가치를 지향하는 동역자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미력이나마 돕겠습니다. 2주간 수고하셨고 각자의 자리로 평안히 돌아가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