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무중구!"

르완다에서 미디어를 강의한 이유는 2

by 준구

2003년 아프리카 동부지역 5개국을 방문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무중구 (mzungu : 스와힐리어로 하얀 사람, 외국인을 부를 때 사용)라는 말입니다. 아이들은 반가움의 표시로 아시아 사람인 우리에게 유럽 사람들을 향해 부르던 무중구를 외치며 환영했습니다. 제가 어릴 때 서양사람을 보고 신기해서 쫓아다니며 ‘헬로’를 외치던 정서와 비슷하게 말입니다.

현지 아프리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게 되면 많이 받는 질문도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어떤 언어를 쓰느냐는 것입니다. 한글을 사용한다고 답하면, 그 언어면 한국사람들끼리 소통하는 데 지장이 없냐고 재차 묻습니다.

저는 잠시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그렇다고 답하면 상대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그리곤 궁금함을 다시 풀어냅니다. "당신은 몇 개의 언어를 구사합니까?"

음...... 우리말이 전부이고 영어는 그냥 쭉 배워온 거라 익숙한 거고 그 외에 제2외국어로 배웠던 독일어는 입시용이라 꿀 먹은 벙어리니 그냥 2개 정도라고 답을 합니다. 그제야 현지인들은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아프리카 친구들의 질문 의도가 궁금해서 제가 똑같이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아프리카 사람들은 살아가기 위해서 적어도 3~4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해야 한다고 합니다. 부족마다 언어가 다르니 자기 부족어와 이웃의 부족어인 로컬 랭귀지를 알아야 하고, 이를 확장해서 만든 공용어인 스와힐리를 말해야 하며 그 지역을 지배했던 유럽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케냐, 우간다, 탄자니아 지역이 대략 과거 영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으니 이들은 영어를 공용어로 쓰면서 다른 언어들을 구사합니다. 킨샤사를 수도로 하는 콩고, 르완다는 벨기에의 지배를 받으며 불어를 공용어로 사용했으니, 당연히 그들은 그 언어를 중심으로 3~4개 이상을 말합니다. 정규 교육을 받지 않은 사람이 3~4개 정도니, 고등교육을 받은 아프리카 친구들은 4개 이상의 언어를 고급스럽게 구사합니다. 영어 잘하는 친구도 멋지지만 간드러진 불어가 터져 나오면 신기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배경을 갖고 있으니, 우리 일행을 향해 몇 개의 언어를 쓰느냐는 질문에 1~2개라는 답을 들은 이들이 놀라워하는 것에 이해가 갑니다.


좋게 말하면 한글의 위대함인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영어로 의사소통하며 살아가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아프리카 대륙의 접경지역 사람들은 걸어서 이웃 나라를 왔다 갔다 하니 문화나 언어의 개방성과 유연성에 놀랐습니다. 반도의 나라에서 허리가 잘려, 걸어서는 다른 나라를 밟아보지 못했던 제가 도보로 국경을 넘어 이웃 나라로 넘어간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놀라운 경험이었습니다. 유럽에서야 뭐 그다지 큰 경탄까지는 아니었는데, 그 현장이 아프리카라는 사실이 왜 더 큰 짜릿함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하튼 그때, 여러 미팅 장소에서 우리말로 하면 영어로 한번 바꾸고 이걸 다시 현지어로 바꾸는 2단계의 통역을 넘어 그 말을 다시 그 부족어로 바꿔야 하는 3중고도 많이 경험한 터라, 무조건 영어 하나만은 잘해야 소통의 시간을 줄인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우리가 미처 모르는 아프리카의 진면목 중의 하나는 이들이 가진 놀라운 언어 습득 능력일 것입니다. 르완다는 르완다어를 모국어로 쓰면서 과거 식민의 유산이던 공용어(official language)를 불어에서 영어로 바꿔놓았습니다. 물론 그 배경에는 벨기에를 비롯한 불어권의 영향에서 벗어나 영미권에 러브콜을 청하며 세계화로 발돋움하려는 의도를 깔고 있습니다. 이런 여러 정황으로 인해 불어로 가르치던 학교는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면서 사회 전반의 모든 시스템을 영미권의 시스템으로 바꿨습니다. 그러니 저 역시 여러 단계의 통역을 줄이기 위해 영미권에서 사용하는 책과 교제와 영상들을 모아서 영어를 써야 했습니다.


강의 주교재


주교재로는 The media of mass communication by Vivian과 The Digital filmmaking handbook을 토대로 했고, 저널리즘은 The elements of journalism을 참고했습니다. 제작에 관한 책은 실용서라 아무 책이든 상관없지만, 미디어와 저널리즘에 관해서는 연구자들에 의해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책이라 선정했습니다.

미리 구입해서 공부를 했지만 이를 PPT로 만들고 소화해서 전하는 것은 또 별개의 노력을 요했습니다.

바로 제작으로 들어가기 전에 미디어 리터러시 전반에 관한 설명이 빠질 수는 없습니다.

미국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협회(National Association for Media Literacy Education, NAMLE)는 미디어 메시지를 분석할 때 중요하게 짚고 넘어가야 할 내용을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미디어 메시지 분석 시 고려할 사항


- 수용자와 저작권

(저작권) : 누가 이 메시지를 만들었는가?

(목적) : 이 메시지를 만든 목적은 무엇인가?

누구를 대상으로 만들었는가?

(경제적 측면): 누가 비용을 댔는가?

(영향력) : 이 메시지를 통해 누가 유익을 얻는가?

이 메시지를 통해 누가 손해를 보는가?

이 메시지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반응 ) : 이 메시지에 대한 나의 반응은 어떤 것인가?


- 내용과 의미

(콘텐츠) : 무엇에 관한 내용인가?

어떠한 생각, 가치, 정보, 관점, 의견 등이 녹아 있는가?

언급된 것 외에 중요한 것이 빠진 것은 무엇인가?

(테크닉) : 어떤 테크닉(기법)이 사용되었나?

왜 이런 기법을 사용하였나?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하고 있는가?

(해석) : 메시지가 다양한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힐까?

나는 메시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으며, 나의 반응과 해석을 통해

얻는 것은 무엇인가?


- 표현과 실제

(상황) : 메시지가 언제 만들어졌는가?

메시지가 어디에서 어떻게 대중들에게 전해졌는가?

(신뢰성) : 이것은 사실(fact)인가, 의견인가 그 외 어떤 것인가?

얼마나 믿을만한가? (믿을 만한 근거로 여겨지는 것이 무엇인가?)

정보의 근원은 무엇인가? 아이디어, 주장?

위의 원칙은 수용자가 다양한 메시지를 분석하는 데 있어서 고려해야 하는 핵심적인 내용으로 아프리카에서도 동일하게 고려해야 하는 사항입니다. 거짓 정보와 페이크 뉴스의 범람으로 인해 팩트체크를 통한 진위를 판별하는 능력은 영상 제작법을 배우기 전에 갖춰야 하는 기본기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미디어 이론이나 카메라 작동법, 카메라 워킹, 사이즈와 앵글 등은 유튜브에서 다양한 실례로 보여줌으로 이를 다운로드하여 왔습니다. 사전에 외장하드에 담아온 이유는 아시다시피 아프리카에서 인터넷을 연결해 영상을 보면 그 속도가 안 나와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는 것을 대비한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전기까지 부족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르완다 전기계량기

르완다 키갈리 시는 전기를 미리 사서 그 분량만큼 쓰면 다시 구입하는 시스템입니다. 풀어서 말하면 우리가 사용하는 프로판 가스와 같은 개념인 것입니다. 가스가 떨어지면 다시 사거나 충전해서 쓰는 방식이었습니다.

아무튼, 강의 사이사이에 영상을 시청하면서 진행하려던 첫날의 수업 계획은, 전력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3시간 연강이라는 도전에 직면했습니다. 모국어가 아닌 말로 3시간을 떠든다는 것은 두뇌의 신경을 곤두세우는 긴장의 연속입니다. 전달하는 것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 질문에 답하며, 토론의 흐름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해야만 했습니다. 특유의 아프리칸 엑센트가 섞인 영어는 귀를 더 쫑긋 세우 게 만듭니다.


강의실 내부


진땀을 빼기는 했지만 그런대로 티 안 나게 넘기며, 서로의 의견 개진 속에서 활기찬 수업이 이루어졌습니다.

제작하고 푼 주제에 따라 조를 편성하고, 팀별로 카메라도 나누어주었습니다. 다행히 개인 소유의 노트북도 팀별로 하나씩은 소유하고 있어서, 편집은 노트북에 깔린 프로그램을 설명하는 것으로 정했습니다.

각 팀별로 피디, 카메라 감독, 작가, 편집, 내레이션 등의 역할을 나누어서 2주 동안 5분 내외의 영상을 제작하기로 했습니다. 아프리카도 제법 많은 사람들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만, 캠코더를 받아서 직접 다뤄본다는 것은 상당한 의미인 것 같습니다.


카메라 작동법과 사이즈 설명중


6~7명 정도로 구성된 팀은, 고작 한 대의 캠코더를 받았지만, 2주 동안 자유롭게 주야로 맘껏 찍으라는 말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고가의 캠코더를 어깨에 올리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권력을 얻은 것과 같은 기쁨을 발산했습니다. 아프리카 역시, 영상의 수요가 폭증해서 큰돈을 지불해야만 배울 수 있는 수업이, 무료로 진행되니 흥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우리는 그렇게 이틀 간의 이론 수업을 마치고, 드디어 필드로 나가 촬영 수업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다양한 사이즈로 촬영 연습 중인 수강생


초보에게 드리운 카메라지만, 먼지 하나 없는 파란 하늘의 흰 구름과, 강렬한 태양에 비친 빨간 대지위로 흩어진 초록의 싱그러움이 얼마나 매혹적인 색채로 찍히는지 상상도 못 한 채 야외로 나갑니다.

첫날과 둘째 날의 수업을 마치자 탄성처럼 터져 나온 깊은 안도감은

내 안의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며 텐트 안의 베드로 나를 밀어 넣고 있었습니다.



모기장 속의 배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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