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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기만성온달이 Mar 14. 2024

선행학습을 해야만 공부를 잘한다는 오판

사교육비의 무게와 불행

가장이 돈을 잘 벌어다 주면서 자녀들의 사교육에 간섭을 안 해야 한다는 데 이두 저도 아닌 나로서는 한숨이 나왔다. 아이는 공부를 해야겠다며 학원을 알아봐 달랬고 상담도 해보라고 재촉하니 외면할 수가 없었다.

우리나라는 교사 수준이 높고 공교육의 질도 상당한 수준에 이르는데 이와는 상관없이 선행학습이 당연시되는 풍토가 과연 정상적인 모습일까? 과열 과당 경쟁 구조가 일상화된 현실을 알면서도 이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도 없고 방법도 모르는 것은 아닌가 싶다.  


아이를 데리고 학원을 방문하니 접수대 벽면에는 이곳을 거쳐 우수한 대학에 진학했다는 학생들의 이름이 플래카드에 빼곡히 적혀있었다. 지구촌의 어느 나라는 중고등학교 학비가 없어서 학업을 중단하는 아이들이 있고 또 어떤 나라는 학교에서 즐겁게 공부하다 때가 되면 순조롭게 대학에 진학하고 자연스럽게 사회에 나가서 직업을 갖고 살아 가는데, 우리는 모든 과정에 잔뜩 힘이 들어간다.


순적함이 아닌 악다구니와 치열한 무언가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외부의 힘과 인위적인 타력.

학원비는 초등 다음으로 중등이 높고 고등으로 갈수록 치솟았다. 고등학교까지 무상교육을 이룩한 선진국이지만 사교육비의 부담감은 전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어렵게 대학에 진학했다 해도 그다음은 졸업 후의 취업 걱정이 몰려온다. 어느 정도 자금을 모아야 결혼도하고 자녀도 낳지만 그다음엔 높은 집값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 배우자를 만나는 것도 어렵지만 결혼 자금을 준비한다는 것은 만만치 않다. 자녀를 갖지 않기로 하는 신혼부부들이 느는데, 이런 경쟁적 구조가 만연한 피폐한 사회에서 후손을 갖는다는 것은 무책임한 일이란 결론에 이른 것이다.  


출생률을 높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공적자금을 투여한다지만 사회 전반의 개혁적인 의식변화가 없다면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직장 생활하면서 눈치 보지 않고 아이를 낳고 맡길 수 있어야 하고

사교육 없이라도 행복하게 학교생활하다가 학문에 대한 의지만 있다면 대학교육의 기회가 주워져야 한다.

설령 대학을 선택하지 않더라도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지만 실제로 이렇게 살아가는 나라가 없지 않으니 그 사회의 성숙한 합의와 철학을 배우고 우리에 맞게 체화하는 것은 어떨지.   


초등학교 선생님이면서 자녀를 갖지 않기로 결정한 젊은 부부를 알고 있다. 서울에서도 학생 수가 없어서 문을 닫는 고등학교를 바라보며 산을 오르기도 한다. 경쟁에 내몰린 학생들은 행복하지 않은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설령 대학에 진학해서 다니더라도 졸업을 앞두고서 불안감에 휩싸인다. 우리 사회에서는 숨만 쉬고 살아가려고 해도 적지 않은 비용이 든다. 살아가는 동안 행복감을 느껴야 하는데 즐겁고 가벼운 마음으로 생활하는 세대를 찾아보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여러 가지 지표에서 선진국의 반열에 드는데 왜 우리의 삶은 여전히 빡빡하고 여유가 없는 냉랭함에 휩싸여 있을까? 길을 모르는 바는 아니되 관성에 이끌려 타력에 의해 살고 있다.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져 바닥에 이르렀을 때에야 비로소 호된 시련 뒤에야 그 답을 찾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없으면 학교도 필요 없고, 사교육도 존재하지 않는다.  의사에겐 환자가 없는 셈이고 기업은 제품을 소비해 줄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 격이다.


이것을 잘 알면서 우리 사회는 나비효과와 같은 연쇄반응을 멈출 혜안이 없는 것일까?   

장강의 앞물결은 밀려 나가는데 뒷물결이 마르고 있다는 것을 현저하게 절감한다. 모든 세대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후세대가 그런 풍토에서 자라나면 더 바랄 것이 없겠는데, 크나큰 염원일 뿐인가?

 

아이의 학원을 등록시키고 나왔지만, 그 돈은 아프리카 학생 10명을 다시 학교로 보낼 수 있는

금액이며, 유럽의 나라에서는 지불할 필요도 없는 허튼 지출임을 상기한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게 필요하게끔 유도하는 사회.

각성, 성찰, 의식의 전환, 개혁 이냐 아니면  지속적인 저출생률의 기록 경신이냐의 기로에 서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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