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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준구 Sep 10. 2024

장애인활동지원사 교육을 받으며

장애인의 입장에서 이해하기

장애인활동지원사 이론교육장은 서울에만 몇 군데가 있었다. 

교육은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점심 한 시간을 빼면 하루 꼬박 8시간씩 주 5일을 할애해야 한다. 강북, 강남, 마포, 여의도 양천 교육장 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을 택해 수강해야겠다는 마음으로 전화 문의를 했다. 자격증교육은 처음이라 궁금한 것이 많았고 이론 교육 후의 실습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몰라 자세히 물었다.

집과 가까운 곳의 교육장에선 실습은 수강생이 기관에 문의해서 스스로 알아보는 거라며 사무적으로 응대해 주었고, 거리가 먼 곳에선 교육시간에 실습에 관한 내용을 잘 알려주니 걱정할 필요 없다며 친절했다. 이쯤 되면 집에서 멀리 떨어졌더라도 여의도 교육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여의도보단 강남 교육장이 더 가깝긴 했지만 홈페이지를 살피니 여의도의 이룸센터엔 각종 장애인단체들도 입주해 있어서 상징적인 곳인 것 같았다.

 

7호선을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김포라인으로 갈아타서 여의도국회의사당 역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 반 이상이 소요된다. 지하철 역까지 걷고 다시 나와서 찾으려면 넉넉히 두 시간은 잡아야 했다. 개강하는 월요일 일찌감치 일어나 7시경에 집에서 나왔다. 그 시간에 앉아 가는 것은 무리여서 40여분을 서서 이동했고 고속터미널역에선 사람들이 뒤엉키는 긴 환승통로를 걸어 9호선 지하철로 움직였다. 8시경 출근 피크 타임에 돌입해서 9호선 열차에 오르려다 크게 놀랐다.

개화행 급행열차는 이미 사람으로 꽉 차서 차량 안으로 진입할 공간이 없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사람들은 있는 힘을 다해 자신의 몸을 차 안으로 꾸겨 넣는 것이었다. 다행히 열차 문이 닫힌다 했지만 사람들에 짓눌려서 사고라도 나는 건 아닐까 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급행을 보내고 나니 다음번 일반열차엔 조금의 여유가 있었다. 급행과 일반 열차가 만나는 역에서는 정차하는 시간이 길었다. 20여분 가량을 타고 여의도국회의사당역에서 내리니 일터로 향하는 직장인들의 발소리가 군인들의 일사불란한 군홧발처럼 울려왔다. 교통카드를 태그하고 나갈 때 울리는 통과음도 합주할 때의 기계음처럼 선명하고 경쾌하다.       

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에 나오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이 쉬어졌고 교육장인 국회 앞 이룸빌딩에 들어와  강의실을 찾고 나니 평온해졌다. 


60여 명을 수용하는 강의실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이삼십 대 남녀 청년 한 두 명을 제하면 4.5.6십 대가 주를 이루었고 대부분이 여성에 남자는 10여 명도 안 돼 보였다. 시간이 지나며 앞 뒤 사람과 친해지며 어떤 동기로 수강하게 되었는지를 이야기했다. 

한 분은 유치원교사로 오랫동안 일 해왔는데 원아 수가 줄자 요양보호사와 장애인활동지원사 일로 눈을 돌렸다고 했다. 동대문 패션 타운에서 디자이너로 일했다는 분은 상권이 죽고 경기가 좋지 않아서 의미 있는 일을 찾고 싶었다고 했다. 70가 가운 나이의 권사님 한 분은 누군가를 돌봐 주는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도 돈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가치 있는 배움이냐며 뿌듯해하신다. 더러는 자기의 형제 부모 조카가 장애를 갖고 있어서 그들을 도우려는 마음으로 시작하는 분도 계셨다. 청년들의 경우는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면서 전공의 일환으로 수강하는 친구들이었다. 물론 은퇴 이후의 직업으로 생각하며 대비하시는 분도 계셨다. 


강의는 표준과정이 주 5일이고 전문과정은 주 4일 수업으로 편성되었다. 요양보호사나 다른 복지사 교육을 이수한 사람들은 하루 공부량을 감해주는 식이었다.  

하루 이틀 수업이 진행될수록 수강생과 강사와의 질의응답도 늘었는데 중국 조선족동포들의 말투가 눈에 띄었다. 대략 강의를 듣는 분의 4할이 그분들 인 것 같았다. 이미 요양보호사로 일하시는 분들이었고 이 과정까지 확장해서 공부하는 중이었다. 60 후반의 남성동포는 20여 년 전에 서울로 오셨고 목수로 좋은 시절을 보내다 중국인들이 제주도로 많이 관광 오던 시절엔 제주에서 호황을 맞았었다고 했다. 나이를 먹으니 기술은 있어도 60세 이상이라 건설현장에서는 산업재해가 두려워 써주질 않는단다.  줄담배를 피워가며 안타까운 현실을 토로했지만, 성실했던 그의 삶으로 인해 가족을 잘 건사하신 듯 보였다.   


수강료를 지불했고 나름 뜻한 바가 있기에 출석과 참여율은 높았다.장애인과 비장애인으로 구성된 강사진의 교육에서 함께 더불어 살기 위해서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며 존중하는 자세가 너무도 절실하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강의 내용도 천천히 곱씹어보려 한다. 


장애인은 선천적인 것보다 후천적인 사고와 질병으로 인한 요인이 높고

나이가 들수록 장애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https://ableservice.or.kr:8443 :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정보 국민연금관리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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