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아내와 아들
토요일 집에서 점심을 먹는데 딸이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했다.
크게 탈이 날 음식은 없는 듯한데 뭐가 잘못되었나 싶어 걱정스럽게 쳐다보았다.
“아빠가 르완다 간다고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엄마가 오빠만 데리고 미국에 간 것은
부러워서 배가 아파!”
조카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아내는 일주일간 휴가를 얻었다. 외종질의 신부가 사는 미국에서 식을 올리는 만큼 신랑의 하객이 부족하겠다 싶어 처형과의 의리 차원에서 감행한 결심이었다. 아내가 가는 김에 머릿수 하나라도 더 채울 요량으로 큰 아들은 데려가기로 했다. 비행기 값과 체류비가 만만치 않지만 언제 또 미국을 다녀오겠냐 싶어 큰맘 먹고 결정했다. 아들은 덩달아 수지맞은 셈이었고, 아직 학기 중인 딸은 집에 남아야 했기에 나 역시 막내를 돌볼 겸 일도 해야 해서 서울에 남기로 했다.
회사에 매인 아내는 일주일간 자리를 비우는 허락을 얻어내는 과정에서 위아래 사람의 눈치를 살펴야만 했다.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얻어내는 것이 제일 큰 난관이었던 것 같다. 몇 주 전부터는 머무는 날들의 일정과 스케줄을 짜느라 분주했다.
조금 비싸더라도 국적기를 타서 시간을 절약할 것인지 캐나다에어를 이용해서 비용을 아낄 것인지를 놓고 씨름했다. 예식의 전야와 당일은 펜실베니아에 머물러야 하고 나머지는 맨해튼의 박물관과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봐야 한다며 숙소와 공연 예매 및 동선을 위한 렌터카 선정에 골몰했다.
동행하는 사람들의 표를 함께 구매하는 책임을 맡았는데 4명의 비행기 값만 천만 원에 육박했다. 묵을 호텔을 예약하고 비엔비로 집을 빌리는 작업을 마치자 비로소 아내는 출국날을 맞았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캐나다를 경유만 하더라도 입국 비자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탑승할 때가 되어서야 알았다. 여행사를 통했다면 진작 고지받았을 내용일 텐데 직접 항공권을 예매하느라 챙기지 못했던 황당한 사실이었다. 사전에 비자를 신청을 하지 않은 경우 캐나다 입국이 거부된다는 것이니 경유 비행기를 탑승할 수 없었다. 일행은 그제야 부랴부랴 캐나다 비자를 신청해 봤지만 프로세싱에도 시간이 걸리니 빨리 비행 편을 취소하고 대체 항공편을 찾는 편이 현명했다.
맙소사!
출국을 앞둔 공항에서 난감한 상황을 만났으니 내가 더 당황스럽고 걱정되었다. ‘당일 비행편을 취소하면 그 손실이 얼마며 대체항공을 제대로 구할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 잘 처리하기만을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늘이 도왔는지 기적적으로 대체 항공편인 국적기 표를 구했다는 연락이 왔다. 취소비용으로 받은 금액으로 아시아나항공기 표를 살 수 있었다는 소식이다. 아니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의아했다.
당일의 빈자리가 있어서 오히려 싸게 구입할 수 있었던 것인가? 잘 이해가 안 갔지만 하루를 넘기지 않고 조금 늦은 밤에 미국으로 떠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그렇게 밤을 보내고 다음날 아내로부터 미국의 사진이 카톡에 실려 날아왔다.
미국에서 보내온 몇 장의 사진 속에는 화창한 펜실베니아의 하늘이 보였다.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이 둥실 떠있고 숲 속에 위치한 야외 식장 주변으로는 나무들로 푸르렀다. 장마로 눅눅한 잔뜩 찌푸린 서울의 느낌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미국을 가지 못해서 뾰로통해진 딸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도 마음을 감추지 않고 “너무 부럽다”는 표현을 속 시원하게 말하는 딸의 정직함이 오히려 건강해 보였다.
“이번엔 일정이 너무 짧아서 너를 보내는 데 무리가 있었던 거고 나중에 길게 갈 수 있을 때 아빠랑
모두 함께 가자”는 말로 위로했다.
딸을 차에 태워 우이동의 숲으로 향했다. 계곡 사이에 자리 잡은 너른 커피숍에서 아이가 좋아하는 버블티와 조그마한 케이크를 시켰다. 나는 향이 좋은 커피 한잔을 시키고 노트북을 펼쳤다. 더위를 피하고 기분 전환을 할 겸 나온 외출에서 딸은 학원 숙제거리를 챙겨서 테이블에 올려놓는다. 어제저녁에는 아이가 원하는 데로 짜장면과 짬뽕에 탕수육을 시켜서 먹고 티브이도 같이 봤다. 지금은 숲을 내다보다가 글을 쓰고 아이는 숙제를 하다가 대화도 나누면서 각자의 일에 몰두하며 함께 또 따로의 휴식을 즐기는 중이다.
저녁으로 접어들면서 카페에 손님이 차고 주위의 대화 소리가 커질 무렵 우리는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들어가는 길에 딸이 좋아하는 수박을 한 덩어리 사서 저녁 후에 잘라서 실컷 먹을 예정이다.
아마도 아내는 아들의 비유를 맞추면서 다닐 터이고 나는 딸의 마음을 살피며 한 주간의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다. 그래도 함께 밥 먹고 대화할 누군가와 집에 있다는 사실이 감사할 따름이다. 딸이 즐겨보는 아이돌 뮤직 비디오도 함께 보고 애정하는 음식들을 먹게 될 것 같다.
오늘은 식 전야로 예행연습과 저녁 식사만 나누었다니 내일 본 게임에서도 즐거운 시간 보내길 바라는 맘이다. 조카의 결혼 소식을 듣고 서부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 준 친구도 만났으니 아내는 한껏 즐거운 편안한 상태일 것이다.
나의 형과 형수님은 사십여 년 전 미국땅에서 결혼하면서 일가친척 한 분도 초청하지 못하고 출석하던 교인의 축하만 받으며 식을 올렸었는데, 이젠 아무런 장애 없이 당당히 태평양을 건너 식에 참여하는 정도가 되었으니 대한민국의 삶이 많이 달라진 시절을 사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모쪼록 타국에서 행복한 결혼 생활을 꾸려 나가길 축원한다.
표지: 결혼 예식이 열릴 펜실베니아의 야외 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