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리에 앉았지만 좌불안석이었다
시청을 가기 위해 도봉산역에서 지하철 1호선을 탔다. 출근 러시아워를 막 넘긴 시간대라 군데군데 빈자리가 있었다. 1호선에서 좌석이 비어 있는 건 매우 드문 일이라 의아해하며 앉는다. 의정부 북부에서 출발하는 인천, 수원행의 1호선은 지하철 이라기보다 장거리 열차에 가깝다. 내부 좌석이 지하철의 형태를 띠었을 뿐이지 그 운행 거리는 다른 노선에 비해 월등히 길다.
경기 북부인 연천 소요산에서 사람을 태워 가장 번화한 서울 4대 문을 통과해 서해 인천과 충청도 아산 방향으로 시민들을 실어 나르니 객차 안은 늘 인산인해를 이룬다. 더구나 가장 먼저 개통된 오래된 구간이다 보니 직장인뿐 아니라 나이 드신 어르신들이 많다.
운 좋게 자리를 잡고 앉았지만 사람들이 탈수록 마음은 좌불안석이다. 열차의 끄트머리에 있는 경로석은 이미 어르신으로 가득 찼고 나머지 중앙 의자 쪽에 자리하신 분들도 대부분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이다. 젊은 측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거나 모바일의 동영상에 심취하지 않는 한 연로하신 분들이 서성이는 모습에 신경 쓰인다.
시내가 가까워 짐에 따라 사람들이 많이 내리고 탔다. 대학가에서 학생들이 우르르 내렸고 청량리 시장과 종로에 진입하자 어르신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시내에서 장을 보신 할머니는 자신의 몸도 거누기 힘들어 보이는데 밀대에 짐을 가득 싣고 객차에 들어오셨다. 앉아서 책을 읽다가도 앞에 선 사람에 신경을 쓰게 된다. 힐끗 올려다보면서 젊은 사람들이면 안도하며 다시 책에 눈을 두지만 연세가 높으신 분이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자리를 양보하고 일어설까? 아니지, 나이가 월등히 많아 보이지 않으시고 본인도 젊다고 느끼는데 노인 취급한다고 싫어하시는 것은 아닐까? 혼자서 고민에 빠진다. 솔직하게 말하면 어떤 때는 너무 피곤해서 앞에 누가 서있든 말든 눈을 감고 깊은 휴식에 빠져야겠다고 마음먹곤 한다. 이런 상태는 내가 어르신을 공경하고 안 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몸이 힘들어서 잠시나마 앉아서 쉬어야겠다는 생각이 강할 때다.
날도 더운데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쐬면서 땀을 식히고 편하게 앉아 시청역을 향하던 짜릿한 행운에 종지부를 찍은 건 청량리역에서였다. 머리가 허옇게 쇠고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가 장을 한가득 보신 체로 바뀌 달린 장바구니를 힘겹게 끌고 타셨다. 누가 봐도 현저하게 나이 드신 어르신이 가족을 위해 바리바리 물건을 사신 모습이었다. 미련 없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앉으시라 손짓했다. 몇 정거장만 서서 가면 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웠다. 1호선이라는 특수한 공간에서는 머리가 희끗한 나조차 앉아서 가는 게 편치 않다.
오래전 2~3십대 시절엔 책을 읽느라 주위를 둘러보지 않다가 어떤 어른이 내 머리를 강타하며 나이 많은 자기에게 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느냐며 시비를 걸어온 기억이 있다. 주위에 있던 사람들은 그 어른의 행패에 가까운 무뢰한 태도에 놀라 오히려 나를 감쌌지만 그때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열차에서 내렸다.
나이가 높다고 해서 상대적으로 연소한 이에게 당연한 듯 권리를 요구해서는 안된다. 연소한 이가 우러러 나와자발적으로 하는 행위가 아니라면, 양보하지 않음에도 이유가 있으니 상대를 존중해야 한다. 어르신 중 한 분은 젊은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그들이 앉은 좌석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고 멀찌감치 피해 주신다는 이도 계신다.
이제는, 지하철만 타봐도 우리 사회가 급격하게 노령화되고 있음을 안다. 계층별 인구비율이 현저하게 불균형을 이루고 있음을 체감한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세대가 함께 어우러져서 평화로운 상생의 성숙한 사회로 진입해야하는 때임을 깨닫는다.
시청역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렸고, 한 무더기의 외국인들이 끄는 케리어 가방에 주의하며 조심스레 하차한다.
사진 : 나무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