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 비디오는 간단하게 보였지만
빗물형 샤워기로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주문을 넣었다.
다양한 제품군 중 하나를 선택했는데, 가격이 어느 정도 나가면서 국내에서 제조한 물건을 골랐다. 설치를 돕는 동영상이 설명을 대신하고 있어서 타일을 뚫을 수 있는 드릴만 빌려오면 큰 어려움이 없을 것 같았다. 제품 구매 시 설치 서비스를 신청할 수도 있지만 추가되는 비용이니 만큼 스스로 해서 얼마라도 아낄 요량이었다. 꼭 돈이 더 들어서라기보다 가장이 이 정도의 일은 스스로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바람직해 보였다.
며칠 전 출장을 다녀오면서 묵었던 호텔의 욕실이 깨끗했다. 좌변기와 목욕부스가 깔끔하고 반들거렸는데, 유난히 하얀 빛깔은 안팎으로 청소와 손질을 잘해둔 테가 났고 수전도 고급스러워 보였다. 그런 화사한 느낌을 받았던 터라 우리 집 욕실도 손볼 것은 손을 보고 바꿀 것은 바꾸면서 청소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차에 샤워세트교체를 시도한 것이다.
주문한 물건이 드디어 도착했고 드릴과 공구를 준비해서 작업에 들어간 시간은 오후 4시였다. 길게 잡아야 한 시간이면 세팅 완료할 것이라 생각하고 설명서 대로 하나씩 일을 진행해 나갔다. 우선 수도 계량기에서 공급되는 물을 차단시켰다. 다음엔 연결된 냉온수 관을 새것으로 교체하느라 기존 설치 된 수전을 해체했다. 그런데 수도관 연결이 오래되고 결박이 깊어서 쉽게 빠지질 않았다.
아파트 소음을 최대한 줄이면서 작업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지만, 어쩔 수 없이 망치로 나사를 두드리면서 압착된 관의 연결부를 조금씩 풀어냈다. 겨우 해체 작업을 끝냈나 싶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수전함은 냉 온수관을 지지해서 수평을 맞춘 후 위에 얻는 방식인데 두 관의 높이가 서로 다르다. 그냥 올리면 심하게 기울어서 높은 관은 그냥 두고 그 높이에 맞게 다른 쪽에 피스를 박아 고정시켜야 했다.
드릴을 빌려다 놨지만 타일을 뚫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힘을 줘서 드릴을 압박하고 구멍을 깊게 뚫는 동안 땀이 비같이 쏟아졌다. 타일 사이로 돌아가는 드릴 나사는 금세 벌겋게 변하며 타는 냄새를 풍겼다. 어찌어찌 낑낑거리며 나사를 박아 본체를 성공적으로 올려놓았다. 이제 상부로 향하는 샤워관의 중간 부분을 고정하는 피스 하나만 벽에 박아주면 완성이다. 다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어렵사리 타일에 나사 두 개를 고정시켰다. 관만 연결시켜 주면 된다. 시간을 확인하니 저녁 7시가 지나고 있었다.
'이게 뭐라고 3시간이나 쩔쩔매면서 씨름을 했단 말인가', 허탈해하면서 마무리지을 생각이었는데 아뿔싸 중간에 고정하는 피스와 샤워봉 연결부의 높이가 안 맞는다. 봉에 높이 조절이 가능해서 타일에 박는 피스를 어디에 뚫어도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 제품은 정해진 높이를 제대로 측정해서 정확히 박아줘야만 했다.
순간 어이가 없었다. 설명 동영상은 모든 과정을 아주 간단하고 쉽게 보여줬는데 막상 따라 하려니 변수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전문가라서 간단하게 보였던 거지 비숙련자에겐 결단코 쉽지 않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변신한 욕실을 짜잔 보여주면서 우아하게 저녁을 먹으려는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자신 없으면 사람 부르지 뭐 그리 애를 쓰냐며 핀잔이나 안 들으면 다행이다. 퇴근 무렵이고 밤이 가까워오니 소음으로 이웃에게 피해를 줄까 봐 아쉽지만 일을 중단하고 욕실을 정리했다. 완료를 못한 채 하루를 보냈다.
드디어 다음날, 두 팔과 가슴에 땡땡한 힘이 전달되도록 전동드릴을 꽉 쥐고 힘차게 타일에 구멍을 냈다.
타일이 갈리며 뱉어 내는 도기 타는 냄새조차 향긋하게 느껴졌다. 적당한 높이에 피스를 고정해서 샤워봉을 올렸다. 스위치를 이리저리 바꿔가며 상 중 하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확인해 본다.
깔끔하고 깨끗하게 바뀐 샤워기를 대하면서 아이들이 “아빠 수고하셨어요. 감사합니다”라는 말 한마디 해줬으면 좋겠다. 아내도 “ 당신 멋지다”라고 치켜세워줬으면 고맙겠다.
때로는 사랑받고 칭찬받는 한 사람이고 싶다.
설치하느라 땀을 한 바가지는 흘렸지만 오늘 저녁의 샤워는 속 시원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