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된 영상을 백업하면서
6미리로 촬영해 두었던 한 무더기의 테이프들을 더는 방치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세월이 지나 플레이를 해서 볼 수 있는 방법도 없어지고 테이프도 상태가 안 좋아지니 아카이브 차원에서라도 서둘러서 메타데이터로 전환해야만 했다.
어렵싸리 6미리 테이프 플레이어와 컴퓨터의 편집기를 연결해서 20년 전의 자료들을 복사했다.
2000년 전 후로 교회 행사를 촬영했던 테이프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고스란히 담아져 있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원로 목사님의 생생한 모습과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살아있고, 노부부의 단란했던 일상이 담겼으며, 청. 장년으로 쑥 자라나 엄마 아빠가 된 유치부와 유년부 아이들의 모습도 보였다. 이제는 눈과 귀가 어둡고 거동이 어려워지신 장로님과 권사님들의 정정하다 못해 활력이 넘치게 찬양하시던 20년 전의 영상이 마음을 요동시켰다.
무엇보다 2~3십 년 전 자신의 엄마 아빠의 모습으로 변해있는 꼬마들의 모습이 가장
신비하고도 경이로웠다. 20년만큼 나이를 먹어 5~6십대로 접어든 어른들의 3~4십대의 얼굴은 또 얼마나 젊고 탄력이 넘쳐나던지.....
세월이 흘러 한 세대의 시간이 지난 것뿐인데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은 엄청난 변화가 생겨났다. 그 시간을 살아내면서 배우자와 사별의 아픔을 경험하기도 하고, 원만하게 보이던 가정이 갈라서기도 했다. 이사를 가면서 교회 공동체와 작별한 가정도 생겼고, 신앙을 떠나간 이들도 있었다.
전도사님은 개척해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고, 청년들은 가정을 일구었다.
많은 사람들이 거쳐 갔고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어쨌든 한 시대의 특정한 시기에 같은 공간에서 신앙의 길을 걸었던 사람들이 포착된 역사적 기록물로 남았다. 모두의 영상이기에 함께 공유해서 감상했다.
누군가에겐 이미 돌아가신 이의 살아생전의 웃는 모습과 건강하던 시절의 목소리다.
잊고 있었던 아이들의 어릴 적 해맑은 표정이며 나 자신의 싱그러웠던 젊은 날의 초상이다. 가리지 않아도 어여쁘고 멋지던 더 푸르던 날의 숨결이다. 검었던 머리칼이 희끗해지고 거침없던 젊음이 중후함으로 변모한 시간이었다. 삶과 죽음이 그리 멀지 않다는 깨우침이 있고, 사는 동안 의미 있는 일을 하기에도 시간이 그리 녹록지 않음을 증언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많았던 유초등부의 아이들과 청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아이들의 낭랑하던 찬양소리를 이젠 듣기가 어려워졌으니 말이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의 소설이 불쑥 떠오른다.
모두가 피난을 떠난 텅 빈 서울의 끝자락에서, 수도 서울을 잘 사수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떠들던 놈들은 이미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도망갔는데도 당당히 남음을 선택했듯이......
피난 갈 형편도 못되었고 차라리 남은 김에 누구도 본 적 없는 텅 빈 도시의 광경을 글로 남기겠노라는 결의에 찬 의기가 불끈 내게도 솟아나는 이유는 무얼까?
분명한 건 내가 무등을 태우던 아들 녀석이 이젠 그 무등 태우던 높이의 키로 자라났으니
20년이 아니라, 1년 사이로 확확 바뀌는 세상을 잘 살아가려면 오늘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건 아닐지.
720. 480 사이즈로 촬영하던 테이프의 해상도는 1920.1080의 크기를 거쳐 4k의 시대로 돌입했다.
그래도 삶아가는 기본만은 줄곧 유효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