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학년이 18반에 이르고 각 학급의 아이들이 65명쯤인 큰 규모의 학교에서 학생들의 이름을 또렷하게 기억해서 불러주신 분은 거의 없으셨거든요.
선생님은 달랐어요. 1년이 지나도록 반 학생들의 이름을 못 외우는 선생님이 허다해서 아이들을 번호로 호명하는 일이 많았는데 그렇지 않으셨거든요. 눈에 띠지 않고 존재감이 없는 아이들 중의 하나로 있다가 지명해서 이름을 부르시는 선생님의 관심과 애정 앞에서 저희는 한동안 어리둥절했습니다. 그것도 학기가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서 나라는 존재를 파악하고 주목하신다는 것은 그야말로 충격적인 사랑이었습니다.
그때 각 사람 사람에게 향하던 따스함과 열정이 얼마나 큰 가르침이었는지, 여전히 평생의 귀한 교훈으로 살아있습니다.
선생님은 참 아름답고 포근하면서 기품이 있으셨습니다.
교육에 있어서도 조별로 나누어 조사하고 작성해서 발표하는 것을 강조하셨는데, 생각해보니 수동적 학습에서 능동적 참여와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시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저는 자주 돌아오는 발표가 부담스러워서 조장에게 미루고 회피하곤 했는데 돌이켜보니 부끄럽네요.
선생님이 우리에게 관대하시고 많은 사랑을 주신다는 생각에 이르자 저희는 그런 부분을 조금 이용하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밥을 빨리 먹고 남자애들은 모두 운동장을 몰려가서 축구하며 놀았습니다. 5교시를 알리는 종이 울려도 저희는 축구하며 노는 것을 멈추지 않고 계속 운동장에서 공을 찼습니다. 당시 학교 축구부였고 몸도 컸던 SC이가 조금 더 놀다 들어가도 된다는 말에 십여 분을 더 넘기는 것은 예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이 들어오라며 보내신 여학생의 경고를 뭉개며 노는 것에 정신을 팔았었죠.
마지못해 끌려 들어가듯 수돗가에서 씻고 교실로 들어가면서 혼날 것을 각오했지만, 선생님은 실은 소리 한 번을 안 하셨습니다. 칠판 앞으로 나오라고 하시며 늦게 들어온 사과의 의미로 친구들에게 노래를 들려주라고 주문하셨습니다.
“ 축구가 그렇게 재미있니, 그래 많이 놀고 싶은 때지......”
저는 그때 규율과 강압 권위를 선생님이란 개념과 연결 짓곤 했는데 선생님이란 뜻 속에는 또 다른 의미가 담길 수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을 습관처럼 늦으며 5교시의 중간쯤에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갔지만 미소로 화답하시며 조용히 앉히신 그 환한 얼굴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자습을 시키시며 그 사이에 제출한 일기를 촘촘히 읽으시곤 하셨죠.
숙제도 귀찮았지만 일기는 더더욱 힘든 과제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글을 써내던 친구들의 글은 정말 듣기에도 문학적인 감탄의 요소가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그렇게 잘된 몇 편의 일기를 골라서 읽어주곤 하셨죠.
저는 들으면서 상황을 글로 잘 표현하는 친구들의 글솜씨와 간결하면서도 위트 있는 표현과 전개가 너무 멋지게 다가왔습니다. 저의 일기가 읽힌 기억은 없지만 은근히 친구들의 일상을 듣게 되는 순간은 잔잔한 여운이 이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은 한참 일기를 읽고 펜으로 느낌을 달아주시다가 소리 내어 흐느껴
울기 시작하셨습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불길한 맘으로 교탁을 바라보는데 선생님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하시고 교실 바깥으로 뛰쳐나가셨습니다. 무슨 일인가 놀라 우리는 서로 눈만 말똥말똥 쳐다보는 사이 옆반 선생님의 그날의 수업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입이 거친 남자아이들이 선생님을 흉보며 욕하던 표현을 여자아이가 듣고
분한 느낌으로 일기에 적었는데, 이를 보시고 충격을 받으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선생님께 얼마나 송구하고 죄송스럽던지 어린 마음에도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마음이 상하셨다면 정말 대신 사죄하고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당시 운동부였던 친구들은 입이 좀 거칠었습니다. 우리들끼리야 그렇다 치더라도 어른과 스승에게 범하지 말아야 하는 선이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여러 노래들도 많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새롭게 배운 멜로디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고 종종 부르기도 합니다.
레크리에이션의 중요성도 알려주셔서 잘 쉬고 노는 것을 강조하기도 하셨죠. 한마디로 끼를 잘 발산할 수 있는 시간을 주셨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아이들 하나하나마다 선생님에 대한 따뜻한 기억들이 새록새록하더라고요. 가끔은 청소하고 남아 있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도 하시고, 학급신문 등을 작성 중인 임원과 조장들에게 맛난 간식을 대접해주셨더라고요.
가끔 그 시절의 친구를 만나게 될 때면 우리에게 행복한 추억을 선물해 주셨던 선생님의 이야기로 화기애애한 과거를 곱씹게 됩니다.
제가 선생님을 마지막으로 뵌 것은 중학교 1학년 때였죠.
검은 동복을 입고 중학교로 향하는데 수유 국민학교의 후문쯤에서 선생님과 마주쳤습니다.
그때도 저의 이름을 먼저 불러주신 것은 선생님이었습니다. 결혼해서 아이를 가지셨던 넉넉해진 배와 선생님의 환한 미소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눈물이 나올 정도로 기쁘고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짧았지만 잠시라도 뵌 기쁨이 오래 이어졌습니다.
실은 6학년에 올라가서는 너무 무섭고 날카로운 남자 선생님을 만나는 바람에 불과 1년 전이던 5학년 때를 그리워하며, 바짝 긴장한 상태로 한 해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렇게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내고 대학에 들어와서야 어떻게 겨우 선생님의 집 전화번호를 알게 되었죠. 전화번호 수첩에 번호를 기입하고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반가움은 유선의 울림 속에서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1년 늦게 대학에 진학했으니 더욱 열심히 공부하라는 당부의 말씀을 끝으로 대화를 마쳤습니다.‘
그 전화를 끝으로 선생님께 연을 잊지 못하는 시간이 30여 년이 흘렀습니다.
뵙고 인사드리고 싶은 마음은 원이지만 길을 모르겠네요.
어디에 계시든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저희에게 너무도 빛나고 아름다운 추억을 주셨고 따듯한 사랑과 다양한 시각으로 세상을 보도록 가르쳐 주셔서 감사합니다. 비록 이른 나이에 세상을 등지는 친구들도 생겨나고 있지만 그들도 동일하게 선생님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