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란히 입는 스쿠터 전용 우비도 걸쳤다. 하나의 우비에 두 사람의 머리가 바깥으로 고개를 내미는 독특한 구조였다. 헬멧까지 쓰고 나니 영락없는 베트남 현지인이다.
그녀의 허리를 붙잡고 호찌민 시내를 달리는 기분은 매우 상쾌했다. 관광객들은 잘 안 간다는 현지인 마을을 지나 목적지로 향했다.
“베트남을 제대로 알고 가시려면 이 박물관을 가보셔야 해요”
그의 진심 어린 눈빛과 호소에 가까운 권유로 출국하는 날 이른 아침에 나는 박물관으로 발길을 향했다.
그녀는 출장 내내 우리 일행의 입맛에 맞는 맛집을 안내해 주었고, 잠시 쉬려고 들어가는 카페 하나에도 신경을 써주었다. 스타벅스가 자리를 못 잡을 정도로 베트남의 커피는 맛이 강하고 감미로웠다. 물가도 저렴했고 숙소도 훌륭해서 전혀 힘들지 않은 출장이었다.
2013년, 코이카가 동아시아지역에 지원하는 ODA 사업의 성과를 담아내기 위해 며칠 간 호찌민에 머물며 일하고 있었다. 응언은 그때 우리의 통역을 맡아 모든 스케줄을 돕고 있었다. 그는 이미 한국 사람들이 어떤 음식을 좋아하고 뭐가 입맛에 맞을지 디테일한 것 하나하나를 다 꿰뚫고 있었다.
한류 드라마로 우리말을 배웠다고 말하면서 당시 한국의 대통령 선거 결과가 자신에게는 ‘멘붕’이었다는 표현을 할 때에는 우리가 혀를 내두룰 정도였다. 저렇게 우리말을 잘하고 정세에 능한 통역자를 우린 ‘맛집 투어 가이드’로만 활용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반성이 몰려왔다.
도착한 곳은 War remnants museum (전쟁박물관)이란 곳이었다.
박물관 건물 마당에는 우리의 전쟁기념관처럼 비행기와 탱크 등의 무기가 놓여 있었다.
멋진 위용을 자랑하지만, 그것들이 한때는 사람을 향해 사정없이 포탄을 쏟아부었던 치명적인 살인무기들이란 것에 소름이 일었다.
위아래층의 전시관을 다 돌아보기도 전에 몇 장의 사진과 기록에서 그만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 짐승처럼 그을려 새카맣게 타버린 사람, 사지가 찢겨 나가 너덜거리는 사람들, 이념과는 상관없이 희생된 남성과 여성과 어린아이들의 모습, 전쟁 중에 벌이는 무자비한 학살과 학대, 증오와 고문의 흔적들.
잔혹한 죽음을 맞은 민중이나 그들을 학살한 가해자들 모두가 제국주의의 희생양임을 각인해주는 기록물이었다. 미국이 베트남전 당시 정보국 건물로 사용했던 곳을 활용해서 그들의 범죄를 낱낱이 기록으로 남겼으니 참으로 아이러니한 역공이 아닐 수 없다. 전시물은 대부분 베트남전 당시 종군기자들이 포착하고 남긴 사진과 문서들로 이것은 고스란히 인류의 탐욕을 성찰케 하는 근거로 남았다.
무성하던 원시림을 순식간에 고사시켜 버린 무자비한 고엽제의 공중살포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고엽제를 살포하는 비행기와 이로 인해 폐허가 된 숲
비행기에서 뿌려지는 비처럼 하얀 맹독성 액체가 지표면을 뒤덮으며 내려왔다.
결과적으로 그 아래에서 살던 농민들은 오염된 토양과 식수 및 생활환경에 굶주려 죽었고, 살아남았어도 고엽제란 독극물에 기형이 되어 그의 자녀와 손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살포된 고엽제 아래서 작전을 수행한 미군과 그들의 동맹국 병사들, 독극물을 취급한 미군 비행사들이 고엽제의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모습이 고스란히 사진으로 남겨져 있었다.
무거운 마음으로 전시 공간을 돌다가 심장에 바윗덩이가 쿵 떨어지는 충격과 마주했다.
베트남 중부지역의 민중들에게 큰 상처를 입힌 한국군의 전과가 서글픈 역사로 기록되어 있었다. 타국에서 우리의 흔적을 마주하고 있는 현실이...... 외세로부터의 독립을 꿈꾸던 베트남 민중을 좌절케 만드는 역사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합류해버린 백의민족......
하워드 진이 저술한 ‘미국 민중사’ 베트남 전쟁 부분을 읽으며 이미 베트남 전쟁의 실상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생생한 사진과 세계의 치열했던 반응들을 마주하니 그 충격과 생생함이 전율처럼 전해졌다.
100여 년간 프랑스의 식민치하에서 신음하던 나라가 일본의 2차 대전의 아시아 침략의 틈바구니에서 겨우 독립을 이루려는 시점에서 미국의 야욕이 빚어낸 1960년대의 베트남 전쟁.
아시아의 농산물과 자원을 포기할 수 없는 미국은 프랑스의 지속적인 지배를 도우려 했다.
일본이 조선을 앗아가기 위해 포격을 유인하고 불평등 조약을 맺듯 미국도 통킹만의 포격을 빌미로 여론을 조작하고 선동했던 것이다. 왜곡된 프레임을 만들고 정치적으로 선동했다.
이러한 잘못된 씨앗은 인류의 전쟁사 중 가장 많은 폭탄의 투하와 엄청난 희생을 몰고 왔다. 미국은 자국의
유색인종 문제와 명분 없는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는 악수 속에서 값비싼 홍역을 치러내야만 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전쟁을 반대하며 베트남 민중들의 희생과 미국의 결단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다시 확인했다. 양식 있는 미국의 청년들은 자국의 제국주의적 야욕과 팽창에 맞서 징집 명령서를 태웠고, 총을 들고 나서는 것을 거부했다. 사진 한편에서 전쟁을 반대하며 나의 자녀가 귀하듯 베트남의 생명도 소중하다며 총을 드느니 차라리 감옥을 택하라는 어느 어머니의 피켓이 보였다.
전시실 한쪽에선 한국 내에서의 전쟁 파병반대 움직임을 담은 한 편의 사진을 접했다.
나의 자녀는 헛되이 죽었다 싸우느니 차라리 감옥을 선택하라!
파병 반대를 알리는 호외와 한국군 작전지역
세계시민의 가치를 지니고 살지 않는 한, 시대와 역사를 통찰하는 안목을 지니지 않는 한.
국가 중심의 이데올로기와 소수 지배 기득 계층의 이념적 공세를 이겨낼 능력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녀도 이 박물관을 와 보기 전에는 자기의 역사와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의 역사를 직면한 후로는 자신 만을 위한 삶이 아닌 타자를 향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녀는 2013년에 우리나라로 유학 와서 대학원에서 "아시아 NGO"와 관련된 학문을 이어갔다.
불볕더위가 맹위를 떨치는 휴가철이라 기억에 남는 여행지들이 떠올랐다.
베트남의 호찌민은 그중의 한 곳이다.
음식은 맛났고 날씨는 화창했으며 안마로 몸을 풀기에 좋았다. 아시아라고 말하기에는 프랑스 유럽의
건축양식과 문화가 곳곳에 스며있어 특이했다. 모든 것이 좋았지만 무엇보다 잊을 수 없는 것은 나의 시선과 지평을 더욱 확장시켜준 박물관과의 만남이었다.
동학 농민과 민초들의 기본적 인권과 권리를 무능한 왕조는 수용하려 들지 않았다. 봉건왕조를 유지하려고 일본을 불러들이고 중국의 힘을 끌어오니 조선은 스스로 열강의 전쟁터가 되었다.
선진국들도 손 놓고 당하고 있는 기후위기의 피해와 그에 따른 대응은 한 나라만의 노력만으론 해결할 수 없는 시대를 맞았다. 이웃 나라의 고통은 외면한 체 부유한 나라의 국민만 부스터 샷을 맞춘다고 전 지구적 위기인 코로나의 위험을 벗어날 수 없다.
지구를 몇 번이나 멸망시키고도 남을 핵무기의 위협과 전쟁 코로나의 팬데믹에 맞서려면 국가 이기주의의 한계를 벗어나야만 한다. 세계시민의 가치와 공동체성으로 평화와 공의가 편만해져야 한다.
코로나에서 벗어나 여행이 자유로워진다면 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맛난 쌀국수와 안마받을 곳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지만 호찌민의 전쟁박물관을 꼭 방문하시라고......
그날 나는 응언에게 사과의 말을 전하지 못했다. 일본의 지인이 어느 날 갑자기 자기 선조들의 과거를 내게 사죄하며 고개 숙이던 순간을 경험했으면서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