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 나의 보물들>
좋아하는 것들을 적은 공책,
가장 잘 그린 새 그림,
바닷가에서 주운 매끈한 돌멩이,
작은 종이 들어있는 은색 공,
줄무늬 포장지로 싼 과자,
쓰고는 부치지 않은 편지,
그리고 작은 나무 인형 네 개
<안녕, 나의 보물들> 주인공 틸리의 보물들입니다. 틸리는 이 보물들을 틸리의 방이 있는 꼭대기 층 계단 속 비밀 장소에 숨겼습니다. 그리곤 하나씩 꺼내보지요. 보물들의 이름을 공책에 적고 예쁘게 장식하기도 하고, 은색 공을 꺼내 목에 걸고 짤그랑 짤그랑 은은하게 울리는 소리를 듣습니다. 틸리의 보물들이 그곳에 있다는 건 아무도 몰라요.
기억나세요? 어린 시절 바닷가에 가서 정성껏 주워모았던 조개 껍데기들, 아니면 산타할아버지께 받은 선물 케이스? 그게 아니면 소중하게 자신의 마음을 담으려 했던 사춘기 시절의 일기장, 그 일기장 갈피에 넣어두었던 학교 교정에서 주웠던 낙엽, 이런 건 어떨까요? 홀로 떠난 첫 여행지의 티켓? 그리고 아이의 침으로 누렇게 변색된 배냇저고리 등등.
낙서같은 그림이나,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돌멩이, 과자 껍데기 등 <안녕, 나의 보물들>에서 어린 틸리가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들을 보면 저절로 미소가 지어집니다. 참 별 거 아니다 싶기도 하지만, 우리도 살아오며 어느 시절에 틸리처럼 저렇게 소중하게 간직했던 보물들이 있었는데 하는 기억이 '소환'됐기 때문이죠. 김춘수의 시 '꽃'처럼 '그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사물들이 내게 와서 의미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틸리네 가족이 외출했다 돌아왔을 때 복도에는 새 카펫이 깔려있었습니다. 햇살을 받은 환한 모래같은 색깔이었어요. 새 카펫이 폭신폭신해서 좋았는데, '아, 설마......', 나쁜 예감을 틀리지 않는다더니, 계단 속 틸리의 비밀 장소를 부드럽고 폭신한 새 카펫이 단단히 덮어버렸습니다. '틸리의 보물이 영영 갇혀버린 거예요,'
틸리는 매끈한 돌멩이의 감촉이 그리웠습니다.
손에 쥐고 있으면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따스하던 나무 인형에게 귓속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까짓 돌멩이나 과자, 인형 따위가 뭐라고? 하지만 소중한 것과의 헤어짐이 주는 아픔이 어리다고 다를까요. 김춘수의 시 <꽃>이 그저 꽃의 이야기가 아니라 꽃이라는 상징적 대상을 통해 '관계'에 대한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듯이 틸리의 보물들 이야기는 우리에게 '추억'을 넘어 '이별'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때 '보물'들은 그저 '사물'을 넘어 '사람'이나, 혹은 보물처럼 소중했던 나의 '일'이나 '꿈꾸어왔던 목표'가 될 수도 있겠지요.
새 카펫에 단단히 갇혀버린 틸리의 보물들처럼 우리 삶에서 '상실'은 본의 아니게(?) 익숙합니다. 코로나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관계와 일에 있어서의 '성살'들을 경험했습니다. 이제는 고전이 되어가는 <상실의 시대>를 비롯하여, <어톤먼트>, <라이프 오브 파이> 등등 많은 작품들이 삶에서 우리가 겪게 되는 많은 '단절적 상황'을 모티브로 삼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삶에서 그런 상황이 필연적이라 할 만큼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뜻이겠지요.
틸리는 커다란 세상 속에서 자신이 참 자그맣다고 느꼈습니다.
틸리는 보물들을 되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여의치않았죠. 세상 속에서 자신의 '의지'가 관철되지 않을 때 우리는 갈피를 잃습니다. 저 넓은 세상이 나를 향해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절감할 때 나는 너무도 작고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소중한 것을 잃어버림이 '자존'의 상실을 낳습니다. 영국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는 '누구든 자기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것을 갈망한다면 영원히 절망에 빠져 지낼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보고싶어,'
아름다운 밤 하늘도, 잎이 무성한 나무도, 주변의 사람들도 위안이 되지 않지요. 그런데, 시간은 흐릅니다. 우리에게는 '심리적 면역 체계'가 있어 우리 맘을 '아프기' 이전으로 돌려놓으려 애쓴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한 가장 보편적이고 효과적인 전략은 사실 '시간'이라고 랜돌프. M 네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전합니다.
틸리 역시 마찬가집니다. 시간이 흐르자 다시 '보물'들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새로운 비밀 장소도 마련했구요. 그러면 다 치유가 된 걸까요? 우리가 흔히 이별을 겪은 사람들에게 충고를 하지요. 새 사람을 만나면 잊는다고. 그런데 지난 '사랑'의 상처는 때로는 새로운 '사랑'의 방해꾼이 되기도 합니다. 어디 사랑 뿐인가요. 우리는 다 큰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에 겪은 '상실'의 늪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합니다. 시간이 치유이기도 하지만, 때론 여전히 욱신거리는 흉터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며 틸리의 보물들처럼 불가항력의 상황들을 맞이합니다.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겪은 '단절'과 '상실'에 시절에 대해 스스로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이후의 삶이 달라집니다. <안녕, 나의 보물들>은 그 '해석'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함께 하지 못한다고 해서 보물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추억이 어디로 간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한 시간은 보물들의 시간이 아니라, '나의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나의 시간을 내가 어떻게 해석하는가에 따라 앞으로 살아갈 나의 시간이 달라집니다. 그냥 묻어버릴 수도 있고, 별 거 아니었다고 부정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틸리는 지금은 함께 할 수 없지만 보물들과 함께 한 시간을 그대로 소중하게 간직합니다. 틸리에게 그 보물들은 '상실'이 아니라 '추억'으로 오래오래 기억될 것입니다.
가끔 밤이 아주 고요할 때면
틸리의 귓가에는
딸그랑딸그랑 종소리가 들립니다.
오직 틸리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입니다.
틸리의 보물들은 오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