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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톺아보기 Oct 14. 2023

부러질 때가 있어, 그냥 그런거야

- <부러진 부리> 


<부러진 부리>의 작가 너새니얼 레첸메이어는 정신 건강 문제와 무주택자, 홈리스 등에 관심이 많은 작가입니다. 작가의 생각이 고스란히 담긴 <부러진 부리>는 1986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수상한 오스트레일리아의 자연주의 작가 로버트 잉펜의 그림을 통해 한층 풍성하고 깊은 울림을 가지고 다가옵니다.



 








  


 






‘어느 날 아침, 잠을 깬 꼬마 참새는 밤새 자기 부리가 부러진 걸 발견했어.’







부리가 부러지다니, 부리가 부러지기 전 참새는 그 공원에서 먹이만 보이면 잽싸고 멋지게 내려앉아 언제나 큼직한 부스러기를 골라잡는 ‘잘 나가는 참새’였습니다. 큼직한 부스러기를 잘 골라잡던 참새가 하루아침에 ‘부리’가 부러졌다는 이야기는 읽는 이에 따라 다양한 ‘상징적 의미’로 다가올 법한 상황입니다. ‘부리’는 이후에 보이듯 ‘먹이를 먹기 위한 수단’입니다. 그래서 참새에게 부리가 부러진 상황은 ‘호구지책’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부러진 부리>에는 또 한 명의 ‘부러진 부리’를 가진 사람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번에 ‘부러진 부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참새가 발견한 큼지막한 빵 덩어리에 손을 먼저 내민 참새만큼이나 형편없이 야위고 지저분한 사람, 그 사람 역시 부리가 부러진 참새처럼 돌아갈 집이 없어진 사람입니다.


 


그냥 그런 일이 생기는 거야 


눈에 보이는,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리가 부러진 상황, 우리는 살아가며 늘 ‘평안’을 기원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평안’의 기도는 ‘평안’하지 않는 삶으로부터 길어집니다. 하루아침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는 삶의 현실에서 튕겨져 나오는 순간이 맞이하게 됩니다. 하던 일이 문제가 있어서, 혹은 ‘번아웃’처럼 스스로 자신이 견딜 수 없어서. 눈에 보이게, 혹은 눈에 보이지 않게 ‘부리’가 하루아침에 부러져 버리는 상황은 평온을 기원하는 우리 삶의 또 다른 이면입니다. 그런데 <부러진 부리>는 이에 대해,


 






‘어째서 그런 일이 벌어지는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그냥 그런 일이 생기는 거야’






라고 합니다. 



 








  



삶의 문턱에 걸려 넘어지고 주저앉았을 때, 대부분 우리는 그 원인을 찾으려고 애쓰지요. 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그 원인을 세상에서도 찾아보고, 주변에서도 찾아보고, 그러다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서, 자신이 살아온 궤적에서 지금 자신이 걸려 넘어진 원인을 찾으려 애써봅니다. 그런데 원인을 그렇게 내 안에서 찾으려 애쓰면 애쓸수록 주저앉아 풀린 다리는 여간해서 다시 힘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러진 다리>는 말한다. ‘그냥 그런 일이 생기는 거야’라고. 남 탓도 아니고, 내 탓도 아니고, 그냥 그럴 때가 있는 거라니. 어쩐지 그냥 그런 일이 생긴다는 그 말에 후~ 하고 숨이 내쉬어집니다.


 


심리 상담을 하는 분들 중에 ‘타로’나 ‘사주’를 같이 공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상담을 하러 온 분들에게 이러이러해서 이런 결과가 되었다고 심리적으로 분석을 하면 수긍하지 못하다가도 ‘타로’나 ‘사주’를 들이밀면 고개를 끄덕인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불가역적인 상황이 외려 ‘위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공평한 삶의 불가역성이 주저앉은 이로 하여금 자신을 향했던 칼날을 거두게 만드는 것이지요. 나한테만 그런 게 아니라 세상사가 그렇다는데 어쩌겠는가. 그리고 그 ‘위로’는 나로 향하던 가시돋힌 의심과 의혹의 눈초리를 거두게 하고,  문턱에서 주저앉은 다리를 다시 곧추세울 수 있게 합니다. 



<부러진 부리>에서는 서로 눈에 보이는, 혹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리가 부러진 참새와 야위고 지저분한 떠돌이가 서로의 ‘부리 부러짐’을 알아보고 빵을 나누고 함께 합니다. 그런데 그에 앞서 저의 시선을 끄는 장면이 있습니다. 



 








  



포기하지 마라  


부리가 부러진 참새, 언제나처럼 잽싸게 날아가 먹이를 쪼아먹으려고 하지만 더는 부러진 부리로 예전처럼 먹이를 먹을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부리든, 보이지 않는 부리든 부리가 부러져 더 이상 예전처럼 살아갈 수 없을 때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요? 



참새는 어땠을까? 참새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리고 친구들이 도와주지 않자, 친구들이 먹고 가버린 다음 남은 부스러기라도 먹습니다. 점점 더 약해지는 참새, 이제 참새는 친구들에게 먹을 걸 나눠달라 ‘빌’고, 식당에 온 손님들에게 ‘구걸’을 합니다.


 


‘살면서 부처를 죽이는 것보다 더 큰 죄는 스스로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러니 포기하지 마라.’


-테오도르 준박, <참선>



눈에 보이는 부러진 부리를 가진 참새와 눈에 보이지 않는 부러진 부리를 가진 떠돌이가 '연대'하게 되는 이야기, 하지만 그 전에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부러진 부리를 가진 참새는 부리가 부러졌음에도 '먹이'를 구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장면이 아닐까요. 친구들이 흘리고 간 부스러기라도 먹으려 애쓰고, 빌고, 구걸하면서도 살아가려 애쓰는 노력의 과정에서 떠돌이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만약 부러진 참새가 더는 예전처럼 잽싸게 먹이를 잘 먹을 수 없게 되었다고 포기했다면 떠돌이와 함께 빵조각을 나눠 먹으며 그의 헝클어진 머리에라도 깃들어 평온하게 쉴 수 있었을까요. 



 








  



그래서 이 책을 함께 본 이는 떠돌이의 모습에서 '신'의 잔영을 찾아냅니다. 삶을 포기하지 않은 참새에게 찾아온 신의 손길이라 느껴졌다는 것입니다. 그게 실제 떠돌이였든, 혹은 떠돌이의 모습을 하고 찾아온 '신'이었든 참새는 살아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빵도, 동지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림 책을 통해 찾아내는 이야기는 각자의 시절마다 다르겠지요. 내게 찾아온 <부러진 부리>가 전하는 이야기는 '포기하지 마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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