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끼인 날>, <완벽한 하루>
퇴근하는 길인가요?
오늘 하루 어땠나요?
조금은 쳐진 목소리가 안쓰러워요.
그_냥의 <퇴근길>이라는 노래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여러분의 오늘 하루는 어땠나요? 노래는 '괜찮으면' 함께 걸어보자고도 하고, 내 어깨에 기대라, 내가 꼭 안아주겠다, 그러면서 그대를 힘들게 하는 모든 것들을 잠시만 내려놓으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나즈막하고 다정한 위로? 저마다 자신들의 축쳐진 어깨가 버거운데 쉽지않습니다. 그렇다면 위로가 필요할 때 한 권의 그림책은 어떨까요? <끼인 날>과 <완벽한 하루>는 '오늘 하루도 수고했어요 내 사랑'이라며 달달하게 귓전을 속삭이진 않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우리의 하루를 살펴보게 하고, 숨막히던 우리에게 여유를 선사합니다.
2021년작 <끼인 날>의 김고은 작가, 2024년작 <완벽한 하루>를 만든 박밀 작가는 그림책 장르의 기대주들입니다. 세계적인 그림책 작가인 앤서니 브라운과 한나 바르톨린은 2011년 워크샵을 통해 한국 작가들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이후 매년 그림책 공모전을 통해 유망주들을 발굴해왔습니다. 김고은 작가는 2016년 5회 공모전에 <어디 갔어>를 통해 세상에 자신을 알렸습니다. <어디 갔어>에서 물건을 잘 잃어버리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그려냈던 작가는 이후 <나는 빨강이야>를 통해 보다 추상적으로 형상화된 이미지를 자신의 캐릭터로 구축했고, 그런 작가의 세계는 이제 <완벽한 하루>에서 눈물을 잘 흘리는 그렁이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킵니다.
또한 <끼인 날>의 김고은 작가는 독일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하고, 그곳에 머물며 그림책은 물론, 어린이 책의 삽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일어날까? 말까?> <딸꾹>, <우리 가족 납치 사건> 등 제목만 봐도 위트가 느껴지는 작가의 그림책은 한 눈에 김고은 작가의 작품인 걸 알 수 있는 독특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엉뚱하고 유쾌한, 그러나 가볍지만은 않은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특히 <끼인 날>은 2022 아침독서신문 선정, 2021 문학나눔 선정, 2021 한국학교사서협회 추천, 2021.06 학교도서관저널 추천작으로 선정된 작품입니다.
그렇다면 우선 <끼인 날>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초등학교 저학년 쯤되는 여자 아이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첫 번 째 날 하늘을 봤는데, 하얀 개가 하얀 구름 사이에 끼어있네요. 아이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강아지를 데리고 내려옵니다. 하얀 구름 속에 끼어있는 강아지에, 그걸 사다리를 타고 데리고 내려오는 아이, '환타지 월드'입니다. 우선 이 그림책을 읽으려면 이 '황당무개한 세계'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아이는 한 술 더 떠, 할머니 주름 사이에 끼어 울고 있는 모기며 맨홀에 부리가 끼어 낑낑대는 펭귄, 아저씨 엉덩이에 낀 스컹크, 축구 골대에 낀 대왕 문어까지 엉뚱한 상황에 끼인 동물들을 구해주는 대단한(?) 일을 날마다 해치웁니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거듭될 수록 아이는 지쳐가지요. 동무들 구해주는 이야긴 줄 알았는데, 지쳐가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사람살이에 시달리는 우리의 얼굴이 거기있습니다.
거기다 한 술 더 떠 지쳐 집에 돌아오니 엄빠가 '네 탓이야!. 내가 먼저야!, 너 때문이야!'라며 싸우고 있습니다. 끼인 남들(?)은 씩씩하게 잘 구해주던 아이가 정작 내 가족을 구하는 데선 쩔쩔 매네요.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싸우면 그 사이에 끼어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랐던, 그래서 누가 나 좀 꺼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던 작가, 그런데 살아보니 다들 어긴가에, 어느 사이에 끼어 당황하고 때로 힘들어 하더라는 ...... 거기서 그림책 <끼인 날>이 탄생되었답니다. 우리 가족이 산산조각나면 어쩌지 하고 걱정하던 아이, 그래도 싸움 요정이 사라지고 엄빠 사이게 끼어 있으니 좋다네요. 끼어서 치이지만 끼어서 행복한, 그게 사람살이가 아니냐고 작가는 말합니다.
여기 7개의 문항이 있습니다. 이 중 몇 개나 해당되시는지? 출판사 제공 카드 리뷰에 등장한 이 테스트에서 절반 이상이 그렇다라면 완벽주의에 해당된다고 합니다. 이른바 파워 J?
여기 매일 아침 완벽한 하루를 위해 완벽한 계획을 세우는 그렁이가 있습니다.
날씨를 확인하고 우산을 챙겨 나온 그렁이, 시간에 맞춰 나왔는데도 그만 버스를 놓쳤습니다. 다음 버스는 십오 분이 넘어서야 오는데...... 이렇게 그렇이의 하루는 아침에 세운 계획이 무색하게 다 어긋나고 맙니다. 비는 오지 않았고, 버스는 놓쳤으며, 사려던 케이크는 다 팔리고 없었어요. 매콤한 떡볶이를 사가려 했는데, 오늘은 일요일 떡볶이 집이 쉬는 날이었습니다.
흔히 말하듯 '재수없는 날'이었을까. 더구나 아침에 일어나 일기쓰듯 계획을 짜든 파워 J 그렁이라면 더더욱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하루에 지치지 않았을까. 그런데 그렁이의 태도가 뜻밖이네요.
'걸으면 운동도 되고 좋지~', 버스를 놓친 그렁이는 걷기 시작합니다. 비를 피하려고 들고 나온 우산은 쨍쨍 해를 막아주는 양산이 되지요. 그래도 막상 사려던 케이크가 없으면 화가 나지 않을까. 이번에도 그렁이의 눈에 맞은 편 가게에 파는 빨간 모자가 들어옵니다. 집안을 온통 빨간 색으로 장식한 친구에게 빨간 모자를 선물하겠다는 센스! 초대받은 친구들이 모두 케이크를 사왔으니 그렁이의 선물은 얼마나 돋보였을까요. 말 그대로 전화위복!
집으로 돌아오니 비로소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제야 버스에 두고 온 우산이 떠오릅니다. '누군가 그 우산으로 비를 피할 수 있다면 오히려 잘 됐어. 그렁이는 우산의 새로운 여행을 응원하며 빙긋~.
그림책은 말합니다. '완벽을 넘어 뜻밖의 일에 미소지을 때 행복으로 나아가는 문이 열린다'고. 파워 J인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닦뜨렸을 때 그에 대응하는 우리의 태도가 삶의 질을 다르게 만든다는 거죠. 다음 날도 그렁이는 완벽한 계획을 세웁니다. 하지만, 그 완벽한 계획이 또 어그러진다고 해서 그렁이는 짜증을 내지는 않겠지요. 그렇게 그림책은 우리가 J형이냐, P 형이냐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삶이 주는 뜻밖의 상황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느가에 우리의 행복이 달렸다고 말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