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톺아보기 Oct 06. 2024

익숙하고 권태로운 '오늘'을 깨워보아요 ~

-<오늘>, <학교 가는 길> 

'오늘, 당신의 하루는 어땠나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떠세요? '그날이 그날이지 뭐', 아니면, '정말 환타스틱한 하루였어요.' ? 특별한 이벤트가 없다면 우리는 매일매일의 '오늘'에 대해 대부분 어제와 다르지 않은 날이라고 생가하지요. 그래서 때로는 아침에 일어나 '아이구, 오늘 하루를 또 어찌 보내나?'라며 권태로운 마음이 앞서기도 합니다. 


오늘 뭐할까? 

이렇게 그날이 그날인 하루 하루를 보낸다고 여기는 우리에게 캐나다 일러스트레이터 줄리 모스테드의 그림책 <오늘>은 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오늘은 뭐할까?' 아침에 눈을 뜬 소녀는 이렇게 말하며 기지개를 켭니다.  '집 근처에서 놀까? 아니면 멀리 가볼까?' 이렇게 말하는 소녀를 보니, 언젠가 아주 오래 전 24시간의 계획표를 머릿속에  세팅해 놓지 않았던 어린 시절이 떠오르지 않나요?

'우선 옷을 입어야지. 너는 어떤 옷을 입을래?' 한 페이지를 넘기면 옷들이 잔뜩 펼쳐집니다. '가죽 반바지, 예쁜 원피스, 뿔달린 모자, 끈달린 구두, 줄무늬 타이즈, 망토' 등등등. 옷의 스타일만큼이나 다양한 색감의 의상들이 '오늘'을 기다립니다. '머리는 어떻게 하고 싶니?' '아침은 뭘 먹을까?', '너는 어떻게 갈래? 마치 '워크북'처럼 그림책은 하나의 질문에 맞춰 수많은 선택지를 펼쳐놓습니다. 

어떻게 할래? 한 장 한 장 넘기며 그림책 속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그날이 그날이라는 우리의 하루에 저렇게나 많은 선택지가 있었구나 새삼 감탄하게 됩니다. 

'한 가닥으로 땋은 머리, 짧은 머리, 나비 모양 머리' 등의 수많은 선택지들 사이에서 '결정 장애'를 느끼기도 하지만 잠시 나도 어린 시절의 나로 돌아가 맘에 드는 것들을 선택해봅니다. 밀짚 모자에 멜빵 반바지를 입고 빨간 장화를 신으면 천하무적이 아닐까요? 아니면 샤랄랄 원피스에 날개까지 달고 끈 달린 구두는? 그림책 속 옷들처럼 다양하지 않더라도 매일 아침 '오늘 뭐 입지?'라는 고민도 이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모처럼 나풀거리는 원피스를 골라입은 하루, 유난히도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경험은 비단 저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니겠지요. 또 가보고 싶던 식당에서 좋아하는 이와 나누는 한 끼의 식사로 인해 '행복이 뭐 별 건가'하고 스스로 므흣했던 경험 역시 누구에게나 있지요.



하루를 땜빵하는 의상이나, 한 끼를 때우는 식사가 아니라, 그 모든 선택지가 그저 '결정 장애'의 순간이 아니라, 그림책 속 놀이처럼 스스로 즐기는 것들이 된다면 지겨운 하루가 풍성한 나만의 하루로 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처럼 '오늘'을 채우는 것들은, 그리고 그 오늘의 행복을 채우는 것들은 거창한 것들이 아니라, 저처럼 우리들 스스로 한 사소한 선택들일지도요.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지 말고/ 미래를 바라지도 말라

과거는 이미  버려졌고/  또한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초기 불교 경전의 한 문장입니다. 오로지 '오늘'만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른바 '현존(現存)이지요. 하지만 그저 살던 대로 사는 걸 '현존'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심리학자 타라 브렉은 '지금 이 순간의 자신의 경험을 온전히 자각하고 있는 그대로 체감할 때 일어나는 깨어있고, 열려있는, 심지어 다정한 느낌'을 '현존'이라고 정의내립니다. 이 정의를 그림책 <오늘>로 대신하면 어떨까요? 오늘 하루 뭐하고 지낼까 하며 눈을 반짝이며 하루를 맞이하는 아이, 그 아이처럼 우리의 하루를 깨어 맞이한다면, 그 순간들이 모여 오늘을 사는 '현존'의 시간이 되지 않을까요? 



오늘을 여행처럼 

또 한 권의 색연필로 터치한 '오늘'이 있습니다. 로젠 브레카르의 첫 번째 그림책 <학교 가는 길>은 2023 IBBY 최우수그림책, 프랑스 저작권협회 선정 신인 작가상에 선정되었습니다. 

외딴 곳에 사는 남매는 아직 동이 터오지 않은 이른 새벽에 학교로 출발합니다.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만 놓쳐버려요. 여기서 부터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버스를 놓친 남매, '너때문이야!', '맨날 누나가....'하면서 다투는 것도 잠시 학교까지 걸어가기로 결심합니다. 

지름길로 가겠다며 다른 길로  접어듭니다. 처음에는 '고슴도치야, 너무 귀여워'하던 동생에게 '시간없어, 서둘러 가야 해'라며 누나는 재촉하지요. 하지만 남매는 떠오르는 아침 해를 1열에서 직관하면서 슬슬 학교 가는 길이었다는 목적을 놓치고 맙니다. 그러다 '학교로 가기엔 너무 늦'어버린 남매는 고장난 보우트로 '힘내시오 꼬마선원' 하면서 항해 놀이를 하다 경찰 아저씨에게 들키지만 '학교 가야지'라는 말을 뒤로하고  정말 보트를 타고 도망을 쳐버립니다. 

'오, 분노여, 오, 절망이여, 오, 원수같은 내 나이여!'라며 시까지 읊어대며 우왕좌왕하는 배 위에서 한껏 기분을 내던 두 아이들은 자신들의 모험에 스스로 독려되어 고물상 담을 타넘어 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험에 동행하는 검은 개 한 마리도 만나게 되지요. 낡은 물건으로 가득찬 고물상은 보물 찾기가 되고,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는 경찰들은 그들의 여정을 모험 어드벤쳐로 만듭니다. 신이 난 아이들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다에 맨 몸으로 뛰어들어 물놀이를 즐기기까지 합니다. 

프랑스 브루타뉴 지역을 배경으로, 펼쳐진 바다와 사과 나무가 있는 들판, 오솔길 들이 이어진 풍경 속에 오롯이 하루를 '일탈'한 두 남매의 하루 덕분에 보는 이들도 잠시 일상의 '우회도로'를 맛보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도 땡땡이 치고 놀아보자는 거냐구요? 아이들처럼 땡땡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일상을 여행처럼'이라는 말이 있듯이 일상의 '변화'를 스스로 만들어 보는 건 어떨까요? 아주 사소하게는 늘상 다니던 길 대신 다른 길로 가보는 겁니다. 그러면 새로운 풍경이 '여행'처럼 나를 반길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들어가며 가장 두려운 질병이 요즘 바뀌었다지요. 의학의 발달로 암 치료가 좋아지는 대신, 자신을 잃어가는 치매를 가장 걱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학자들은 나이가 든다고 해서 꼭 머리가 함께 굳어지는 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우리의 뇌세포는 우리가 노력하는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하는데요. 그 노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익숙해지지 않음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뇌세포는 마치 도로를 뚫듯 자신이 학습된 내용들 사이를 연결하고 그대로 하려는 '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 습에 '반기'를 들고 새로운 길을 내면 뇌세포는 굳어지는 대신 새로운 '연결'을 만들기 위해 애쓴다고 하지요. 그게 바로 치매의 특효약이라네요. 굳이 치매를 운운할 것까지도 없이, 그저 우연히 접어든 낯선 길의 여유를 자신에게 허락해 보면 어떨까요? 우선 <오늘>과 <학교 가는 길>을 보며 익숙해진 '오늘'의 습에서 자신을 깨워보는 것부터 해보는 겁니다. 



                                                                



이전 08화 오늘 하루 어땠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