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친도 채용가능하죠? 자만추는 어렵고 소개팅은 싫었다.
나의 마지막 한국인 남자친구는 2017년도 겨울이 마지막이었으며, 나는 아이오아이가 모른 채로 대학에서 또는 대학원에서 썩어가고 있었다.
그때 만났었던 홍콩인 남자친구의 취직을 따라서 홍콩으로 건너갔고, 나는 홍콩에 있는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였다. 그리고 나는 직장을 얻었고 남친을 잃었다.
외국계 HR 시스템 컨설턴트로서 회사에서도 썩어갔고 수습 3개월을 넘기자마자 나는 바로 서울 사무실로 장기출장을 오가는, 연애의 ㅇ자도 보이지 않는 삶을 살고 있었다.
업무도 익숙해지고, 비행기를 타는 횟수가 늘어나고, 나의 마일리지도 쌓여만 가는데... 연애세포는 거꾸로 반감되고 있었다. 업무량과 연애는 반비례 관계에 놓여있는 게 틀림없었다.
직장인과 대학원생 두 가지 타이틀을 달고 있는 나에게 있어서, 대학원 연구여행이라는 것은 그럴싸한 명목이 생겼고, 10일간의 휴가를 얻고 부산으로 향했다.
XX영화제 혹은 XX페스티벌 따위의 이벤트는, 새로운 만남을 생성 가능한 이벤트였다고 판단되었고, 나는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격적으로 '남자친구 채용 프로젝트'를 구체화하고 실행에 옮겼다.
어차피 채용도 채용박람회에서 불특정다수의 이력서를 받으며, 그 자리에서 즉석면접을 실행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 회사 홍보는 덤이고. 남자친구도 똑같지 뭐.
HR의 관점에서 보는 '남자친구'란, 어쩌면 나의 근무시간 이외의 리소스와 시간을 써야 하는 존재였으며 인생 프로젝트 마일스톤에 있어서 상당히 큰 작용을 하는 존재일 수도 있다.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2박 3일 호텔에 혼자 있는 특권을 누릴 수 있었다. 광안리에서 혼맥을 하다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은.. 자만추가 어렵지? 소개팅은 싫지? 어플로 인재풀을 구성해 보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어버렸다.
바로 틴더를 깔았다. 디지털 세상인데, 채용도 링크드인으로 하는 마당에 틴더로 남자친구정도 채용할 수 있잖아. 사실 남자친구보다 혼자 호텔에서 보내는 밤이 외로웠으며, 연애의 ㅇ보다는 침대의 한 구석을 채우고 싶다는 욕구가 가득했다. 여기에 더 붙여, 친한 대학원 한국인 동기가 나에게 넌지시 한 이야기가 있었다.
야 요즘 남자애들 코르셋 쫙 조이고 잘 꾸며. 업데이트된 모양새가 괜찮아.
젠더연구니 페미니즘 영화이론이니, 공부에 찌들고 일에 미쳐 살던 나에게는 도파민이 필요했고, 한 끼 식사 마냥 한 번 침대에서 만날 사람이 필요했다. 뭐 이왕이면 침대에서 한 번 보는 게 아니고 식당에서, 공원에서 한 번 더 보면 개이득이 아닌가. 그리고 업데이트된 모양새를 좀 확인해보고 싶었다.
나는 광안리에 있는 한 호텔에서 그렇게 데이팅 앱을 깔았고, 배민에서 '매콤한 게 당길 때?'라는 카테고리에서 오늘 뭐 먹지를 고르듯이 남자를 고르기 시작했다.
유럽에서도, 일본에서도 유구하게 사용해 왔던 익숙한 UI의 틴더에 나의 프로필을 업데이트하고 오늘 저녁 남자를 스와이핑 하고, 쏟아지는 라이크에 뭐가 있나 구경하다가 지금 당장 배달 가능 표시 기능인 '온라인'이 켜져 있는 남자에게 채팅을 시도하였고 그는 아니나 다를까, 지금 당장 스스로를 배달하였다.
급하게 시킨 음식은 맛없다더니.. 실제로 너무 별로라서 그는 도중에 반품하였다.
그 남자를 선두로 나는 작년 10월 5명의 남자들을 1주일 단위로 이터레이션 하며 데이트를 하였으며 (사실 어떤 날은 데이트를 2번, 즉 2명의 다른 후보자들의 면접을 보았다), 본격적으로 남자친구 채용에 관하여 심도 있게 고찰하고 내가 좋아하는 혹은 선호하는 인재가 갖추어야 하는 덕목과 인재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5번째가 나의 n 년만의 한국인 남자친구가 되었고, 그는 나와 8개월 동안 연애를 하였다.
다만 아직 미흡한 채용과정에서의 실수인지, 그는 나에게 정착하지 못하였고 중간중간에 다른 여자들을 만나면서 결국 나에게 발각되었고... 그는 나에게 '남자친구'라는 직함은 물론이고, 공식적으로 남자친구 포지션에서 해고되었다.
헤어진 이후에 자만추를 하려고 시도하였으나... 직장인은 회사-집 밖에 다니지 않았고, 회사조차 재택으로 돌리고 있는 상황에서 불가능했다.
소개팅도 시도해 보았지만...
"웃는 게 예뻐서 소개팅을 부탁했어요. 한 번만 웃어주세요."
따위의 부탁을 소개팅 자리에서 들었기에... 빠르게 아 나는 소개팅이 싫은 사람이구나.라고 판단하였다.
나는 나의 일의 프라이드를 갖고 매니저의 입을 빌리자면, 야근을 마다하지 않으며 클라이언트의 기업크기가 어떻게 크든지 말든지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말하는 타입의 사람이라 그런지...
"왜 그 직업을 선택하셨어요?"
라는 질문에 "부모님께서 원하셨어요" 혹은 "그냥... 취직이 되었네요." 따위의 모험심 없는 분내 나는 대답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몇 번의 소개팅을 거치고 나는 어플을 사용해 불특정 다수의 인재풀을 형성해서 채용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고, 나는 채용과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계하고 정리하기 시작하였다.
정말 정직하게 말하건대, 나는 미친놈도 아니고 남미새도 아니다.
다만 나의 정해진 시간과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며 연애를 하고 싶었고, 그놈이 그놈이었네 따위의 말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왕 하는 거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내 인생은, 내가 프로젝트 오너인 가장 긴 프로젝트니까.
취직도 연애와 같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한 명제가 있다면, 연애도 채용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나는 실패 없고, 낭비 없는 연애를 위하여 남자친구 채용 프로젝트를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