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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 Dec 26. 2024

레 미제라블 1

비앵브뉘 예하의 고독

비앵브뉘 예하의 고독이 유래한다. 우리는 암담한 사회에 살고 있다. 성공한다는 것은 앞으로 튀어나온 부패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교훈이다. 말이 났으니 말이지만,

성공이란 참 끔찍스러운 것이다. 진실한 가치와 성공의 허울뿐인 유사성이 사람들을 속인다. 군중에게 성공은 우월성과 거의 같은 모습을 띤다. 재능과 쌍둥이같이 닮은 성공에 속는 것이 있다.


<중략>


 성공하라. 이것이 학설이다. '영달'은 '능력'이라고 추측된다.

복권에 당첨돼라. 그러면 그대는 재주 있는 사람이 것이다.

승리하는 자는 숭배받는다.

팔자를 타고나라. 모든 것이 거기에 있다.

행운을 가져라. 그러면 그대는 그 밖의 것을 가지리라 행복해라.

그러면 사람들은 그대를 위대하다고 믿으리라. <<레 미제라블 1  P.100. 민음사>>




내가 글을 쓰고 싶다고 했을 때, 성공한 작가였던 S는 먼저 스님이 되라고 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아이러니하게도 수년동안 독자들의 소유로 거듭나면서 출판계에선 하버드대 출신 혜민스님부터 유튜버로 인기몰이를 한 법륜스님의 책들이 베스트셀러였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S는 진지하게 말했다.

"작가로 돈 벌려면 그게 더 빨라"


글을 왜 쓰는가?라고 물으면, 부자가 되기 위해서라고 말하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성공한 정치가,  화가, 피아니스트, 의사, 배우들은 쉽게 글을 쓰고 책을 냈다. 그들의 글은 날개 돋친 듯 팔리고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글을 업으로 삼는 작가들은 넘치는 재능에도 불구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자살하거나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방송작가들은 수시로 우울증 약을 집어 먹고 아파트에서 떨어지는 상상을 하다가 질식하곤 한다. 대학을 졸업한 스물네 살의 나는 kbs 방송 교육원에 합격하고도 당시 (2000년) 방송작가가 자살했다는 뉴스를 듣고 심각하게 고민하고 작가 수업을 포기했었다. 그렇게 글 쓰는 일과는 관계없는 일을 하다가 30년 만에 다시 글을 쓰려고 하는 지금은 이젠 은퇴해도 되는 나이가 돼버렸다.


글을 쓰는 일은 백수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돈 한푼없이 빈둥거리면서 글만 쓸 수 있을까? 생계가 막막하고 성공과는 까마득히 거리가 먼일.  그 일을 왜 하려고 했는가.    


 


발언권을 가진 사람들은 돈이 많거나 힘이 세거나 인기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들은 말하고 대중은 들었다. 그러나 작가는 힘이 없어도 가난해도 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뭉치게 할 수 있었다. 단, 그 말이 진실일 때 힘이 생겼다. 나는 그런 힘이 좋았다.


나의 성공은 바다에 비치는 별자리(레미제라블 p101)와 같은 그런 것이었다.  

가난함은 구차함이 아니라, 작가라면 당연히 간직해야 할 빛이었고 영달과 바꾸지 않은 고귀함이었다.

어쩌면 가난했기에 나는 글을 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부자가 되는 일이 아니었다. 성공하는 일도 영달을 얻는 일도 아니다.

성공과는 반대의 길로 들어서는 일, 홀로 고독해지는 일이었다.   



극도의 자기희생 속에서 사는 성자는 위험한 이웃이다. 그런 성자는 고질적인 빈곤과 승급에 유익한 관절의 경직, 그리고 요컨대 여러분이 틀림없이 원하는 것보다도 더 많은 포기를 여러분에게 전염시킬 수 있다.

사람들은 그런 敗德에서 도망친다. 여기서 비앵브뉘 예하의 고독이 유래한다.

 <<레 미제라블 1/P. 100.민음사>>


나는 작가는 비앵브뉘 예하의 고독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만난 시인들은 그런 극도의 성자 같은 모습, 고질적 빈곤, 고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적인 美라고 불릴만했다. 그들은 고요했으며, 고독했고, 지독히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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