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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 Dec 30. 2024

보잘것없는 것들

프랙티스/안서후 이시산






"도대체 어디야?"

"주차장으로 내려왔는데, 잘못 들어왔나 봐... 좀만 기다려"


k를 찾으러 주차장으로 갔다. k라면 걸어갔을 길을 따라갔다.

수풀을 헤치고 들어가니 이런 거짓말 같은 공간이 나왔다. 이곳은 無爲의 공간이다.  

보잘것없는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했고 풀들은 시들거나 말라비틀어졌으며 듬성듬성 서있는  갈대들은 어수선하고 초라했다.

도대체 왜 이곳에 존재하는지 의아할 따름이었다.


<숭고한 형상들>...? 이름만 거창하군, 나는 k를 찾았다.

저 학벌만 좋은 무위도식하는 인간.

k는 한심하다고 치부해 버리기엔 누구보다 편안함을 지속하고 산다.



그들이 나를 바라본다. 몇 천년을 바라봤던 그 시선 그대로다.


 이 콘크리트 가득한 신도시에서 <숭고함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나는 소다의 뒷마당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 전시가 열리기 전까지.


땅바닥을 디뎌본 것이 한 달 만이었다.


자연은 모두 사라졌다. 아파트가 빼곡히 들어섰고 땅에는 아스팔트가 깔렸다.

내 신발은 비가 와도 흙 하나 묻지 않는다.   

숲은 이미 사라졌다.






보들레르의 시구가 나를 오래 앉아있게 했다.

"자연은 살아 있는 기둥들이 때때로 혼란스러운 말을 내뱉는 사원이다."

"인간은 익숙한 시선으로 자신을 관찰하는 상징의 숲을 지나간다."

무슨 뜻이야? 너무 어렵잖아. 내가 묻자 k도 모르겠다는 듯이 해석을 해줬다.  

"그래도 미술관인데, 좀 가꾸면 좋았을 텐데... 공간이 아깝다."

태양열을 받아 따뜻한 유리 의자에 앉아 내가 투덜대자, k가 말했다.

"이곳을 가꾸면 더 이상할 것 같아. 그냥 이대로가 더 나을지도 몰라."

완벽하게 꾸며진 세계에서 비켜간 세상, 이게 현실이 아닐까, 이런 공간에 오자 숨이 쉬어진다고 k가 말했다.

벨트의 후크를 뒤로 한 칸 민 것처럼.

너도 숨이 안 쉬어질 때가 있어? 나는 도마의 손가락처럼 의심스럽게 k의 옆구리를 찔렀다.    


 화장을 지우고 벨트를 풀고 수면바지를 입고 편안하게 누워 있을 수 있는 곳,

진짜 보잘것없고 은밀하고 어리숙한 곳이다.    


 나는 살아있는 자연을 살아있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인간의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의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자연은 언제나 나를 바라보고 말하고 웃거나 화내기도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알지 못했다. 그랜드 캐년이나 거대한 자연 속에 들어간다면 아마 조금은 아름답다고 도취되거나 폭포의 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하찮은 수풀, 모래흙뿐인 공터에서 감탄은 없다.

아무것도 아닌 것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그게 꼭 나 같다.

 


처음 여기 왔을 때, 나는 이곳이 바닷가였다면, 이곳이 숲 한가운데라면...

 이 설치물은 더없이 아름다웠을 텐데...라고 한탄했었다.

숭고한 형상들이 여기 어디 있단 말이냐고 물었다. 이 구조물 속에서 밖을 바라보는 곳엔 온통 파헤쳐진 대지와 아파트가 너저분하게 들어서고 있었다. (이곳은 신도시의 번듯함과도 거리가 멀었다.)


I walk into a sea that has neither shore nor floor /Johann Heinrich Füssli 

나는 해안도 바닥도 없는 바다로 들어간다.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


이곳에 퓌슬리의 글이라니!


요한 하인리히 퓌슬리의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끔찍한 악몽을 꾸고 있는 여인의 처절한 모습. 여인의 배위엔 요괴 같은 흉측한 형상이 여인을 누르고 있다. 가위에 눌릴만한 그림이었다. 섬뜩한.  

그때, 바람이 불었다. 풍경이 조용하게 소리 낸다. 그건 어떤 이에겐 울음이었고

  어떤 이에겐  노래였다.


아무리 인간이 파괴와 전쟁을 일삼아도 어딘가에선 바람이 불고 아침이 오고 햇빛이 비친다.

보잘것없는 풍경이었다. 그래서 예술이다. 예술은 더 보잘것없어야만 한다. 한없이 하찮아야만 한다.  


이 구조물 밖의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면,

나는 현실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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