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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 Dec 09. 2024

6.보이지 않는 선명함과 보이는 흐릿함/김한중

-나는 보이고 흐릿하다, 온 세상은 보이진 않지만 선명해진다. 

지난 3일 대통령의 난데없는 계엄령 선포 후 잠을 못 잤다. 

정치에 관심 없던 나도 매불쇼를 보고 아침마다 도서관에 가서 한겨레와 조선일보를 읽었다. 

뉴스쇼는 놓치지 않고 듣고 시간만 나면, 지난 청문회와 검사비리를 고발한 pd수첩을 봤다. 

 세월호 사건 후, 박근혜 탄핵을 외칠 때는 남편과 광화문에 나갔지만, 이번에는 거리로 뛰쳐나갈 수가 없었다. 지난주에 다녀온 미술관의 여파로 후두염까지 진행되어 목소리가 안 나왔다. 목소리는 사라졌다. 

그러나, 나 개인은 선명하게 드러났다. 

 


소다미술관에서 본 김한중 작가의 아시바(높은 곳에서 작업할 때 재료 운반 또는 낙하방지 등을 위해서 임시로 설치하는 지지대)의 형상이 떠올랐다. 


아시바 파이프는 쉽게 만들고 그래서 쉽게 분해된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시민들의 모습은 그렇게 순식간에 모여 만든 거대한 빌딩 같았다. 목소리를 내기 위한 "탄핵"이라는 소리는 단단하고 선명한 모습으로 보인다. 선명함을 위해서 개인의 욕망은 사라진다. 아니, 사라져야만 올바르다. 지금은 시국이 그래, 개인의 욕망은 자제하자. 그래, 나도 이 말에 동참하고 싶다. 나는 뭔가 더 멋지고 대단한 일을 하고 싶어 진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탄핵이 되겠지라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k는 아닐 거라고, 잘됐다고 2번 찍은 니들은 더 고통을 당하고 나라는 더 망해봐야 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절망했다. 그때는 1번도 2번도 다 싫다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도 투표전날까지 노선을 정하지 못했었다. 둘 다 거짓말을 했고 둘 다 대장동 개발사업, 부산저축은행까지... 연루된 똑같은 부류였다. 나는 그들을 믿을 수 없었다. 1번을 좋아서 찍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2번을 좋아할 없었다. 3번은 나에게 커다란 배신감을 안겨주고 2번과 손을 잡았다. 나는 정치에 신물이 났다.   


몇 번 찍었냐고 물을 때마다, 비밀 선거잖아.라고 못 박으면,  2번이구나 하면서 비난했다. 

 모두가 1번이어야 살아? 묻자, 그래도 2번보다는 낫지라고 말했다. 아니 아니 중간은 없냐고  비밀투표잖아. 그런 건 개인적인 일인데, 자꾸 물어봐. 그를 지지한 게 아니라 이렇게 될 줄은 아무도 모른 거잖아.

왜 몰라, 바보야? 손에 왕자 쓰고 나왔는데... 아니, 대통령하나 잘못 뽑았다고 나라가 망하면 그건 아니잖아, 야당 의석수가 많잖아. 2번 맘대로 못할 거라고 믿은 거지. 1번도 너무 많은 잘못을 한건 맞잖아. 지금의 2번이 그렇게 힘을 갖게 만든 건 집권여당이었어. 


그러나 내 목소리는 묻혀버린다. 소수의견. 개인적 견해. 나는 흐릿해진다.

흩어진 나는 보이진 않지만 한 가지 소리가 아니라 다양한 소리들을 듣는다. 의자에 앉을 수도 있다. 

가열차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이런 소리는 모이지 않기 때문에 흩어진다. 넓게 넓게, 소곤소곤, 정의롭진 않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가 더 많아. 너무 1번과 2번으로만 몰지 마.


  1번을 찍었든 2번을 찍었든 계엄령은 미친 짓이고, 대통령은 그 지위에 맞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하야하면 된다. 그러나 우리에게 정말로 2번을 대신할 그 무엇이 있어? 


나는 1번과 2번 그 중간에 있다.  맹목적인 하나의 목소리는 높게 올라갈 순 있지만 넓게 포용할 순 없다. 

그 좁은 공간에선 아무도 쉬어갈 수 없다. 

시민들은 선명함이 필요하 시기엔, 아시바처럼 쉽게 모일 것이고 이 시기가 지나면 아시바처럼 또 쉽게 흩어져 개인의 목소리를 내며, 아무 말이나 막 하면서 살아갈 것이다. 

패로독스 paradox. <보이지 않는 선명함과 보이는 흐릿함>

 이건 쉽게 모이고 흩어지는 지금, 나의 모습이다.  나는 보이지 않아도 흐릿한 목소리를 내고야 마는, 

보이는 내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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