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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비 Dec 02. 2024

5. 나쁜 남자,  카라바조(미켈란젤로 메리시)

-한가람 미술관 2층

"버스 타고 가자! 버스! 두 정거장이면 바로 미술관 앞에서 선다고!"

운전하는 남편에게 버스 타는 즐거움을 알려주고 싶었다. 운전하지 않고 즐기는 대형 버스에서의 안락함이나 차 안에서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을 듣다가 꾸벅꾸벅 졸다가 보면 어느새 도착하는 매력.

버스가 미술관 바로 앞에 서는 경험 등등...

나는 차 없이 걷고 술도 한잔 하는 여유로움 같은 걸 오랜만에 함께하고 싶었다.

그런데.... 버스가 안 왔다. 주말이라 그런가?  30분이 넘도록 기다리다 지친 남편은 버스를 타고 가자고 주장하던 나에게 불만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집에서 나온 지 벌써 50분이야. 차 가지고 갔으면 벌써 도착하고도 남았을 거야, 내 말대로 하자니까..."

"이왕 나온 거 그냥 버스 타고 가는 걸 즐기면 안 돼? 시계만 보지 말고 책도 보고 다른 것도 좀 봐, 차 타면 느긋하게 잘 수도 있어. 그렇게 싫으면 집에 가서 차 가지고 와"

"오늘 하루 쉬는데 시간이 아까우니까"

"시간 있으면 맨날 쇼츠만 보잖아!"

편안하게 가려던 일정이 모두 틀어지고 우리는 엄청나게 휘몰아치는 감정을 안고 50분 만에 온 버스를 타고,  좌석에 앉자마자 곯아떨어졌다. 그렇게 카라바조를 만났다.


<도마뱀에게 물린 소년>은 악 소리를 질렀다.  

점잖은 척, 아름다운 신처럼 그리지도 우아한 미소를 짓지도 않았다.

저 입모양은 어쩌면 "씨*" 이라는 욕지거리를 내질렀는지도 모르겠다.

한껏 멋을 부리고 나왔는데, 난데없는 도마뱀에 물린 소년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삼켰던 욕을 내뱉었다.  

"진짜 잘 그렸네, 씨발"

유리잔에 비친 문을 보면서 나는 탄성을 질렀다.  

"내가 그렇지 뭘! 남편과 미술관을 오면서 뭘 대단할 걸 바라. 멍청이야! 그와 만남부터가 인생 꼬이는 일이었잖아.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버스는 코앞에서 놓치고 전철은 연착되고 그래도 죽진 않았잖아!"   



<성모의 죽음>, 카라바조

맨발이 드러난 성모 마리아, 퉁퉁 부은 그림 속 마리아의 모델이 물에 빠져 죽은 창녀라는 소문이 돌면서 불경스럽다는 이유로 회수되었던 그림.

왜 카라바조는 남들처럼 돈 받고도 고객의 니즈 needs를 무시하고 멋대로 그렸을까?

그냥 그게 도저히 안 되는 인간이었던 거다. 카라바조는 상상 속의 죽은 성모가 아니라, 시체 냄새를 맡으며 생생한 죽음을 그려만 했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성녀는 그릴 수 없지만, 돈을 받고 자신의 몸을 내주는 창녀는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너무 솔직해서 그래, 그래 그는 너무 솔직한 거야. 빈말은 못하는 거지" 나는 남편을 생각했다.   

호암아트홀에서 하는 <dust> 전시에서 본 니콜라스 파티의 <커튼>이 카라바조의 <성모의 죽음>에 걸려있던 커튼이었다.


파티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처음으로 성화에 인간의 감정을 그린 <바로크>를 만든 거장, 카라바조가  그린 그림의 인간적인 모든 장면을 삭제한 니콜라스의 <커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가득 펄럭이며 나부낀다. 카라바조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이겨내지 못하고 살았다. 툭하면 때리고 싸우고 집어던지고 훔치고 도망 다녔다. 그의 그림들엔 오만가지  감정들이 살아 움직인다. 결국 그 감정 때문에 후회하고 후회하고 후회했지만.... 어쩌면 그 비극이 그를 살렸다. 영원히 존재하는 카라바조. 바로크의 후예들의 그림들을 보는 내내 나는 너무 선명한 선혈 자욱처럼 이글 거리고 폭발하는 喜怒愛樂哀欲擄의 감정이 넘치는 그의 그림을 보면서 역시 역시 나쁜 남자는 오래 기억된다는 걸 알았다. '착하지 않아. 착할 필요 없어'

그는 나를 늘 감정의 극까지 치닫게 하지. 그래서 아마 헤어 나오지 못하나 보다.   



 

"손을 그렇게 넣으면 어떻게 하니? 아프다" 예수도 도마의 의심하는 맘을 알고 만져보라고 하지만, 손가락이 깊숙이 들어오자 손을 막는다. 나는 아무리 내가 잘못했다고 해도 자꾸만 같은 말을 지적하는 그의 입을 막고 싶었다.  "잘 봐!  예수도 이렇게 깊숙이 들어오는 건 참을 수 없었던 거야!"  

나는 예수도 아니다. 그에게 소리를 꽥 질렀다. "그만해라"   

예수의 체포에도 카라바조는 안타까워하는 게 아니라 잡혀가는 예수를 구경하기 위해 등불을 밝힌다.

내가 잡혀갈 만한 죄를 저지른다면, 사람들은 나를 보호하기보다는 그 죄를 더 자세히 보려고 달려들 것이다. 당신은 판사도 아니면서 내 잘못을 그렇게 꼼꼼히도 밝히고 싶어 하는지... 결백했던 예수도 그랬는데... 나 따위가 뭐... 정우성만 해도... 죄를 보면 사람들은 달려든다. 불을 밝힌다.  

골리앗의 머리를 든 다윗

젊고 능력 있는 천재적인 카라바조도 그의 인생에서 쉬지 않고 일어나는 폭력과 범법행위의 끝에 결국은  살인까지 저지른다.  어쩌면 그렇게 살다가 갔을까? 그런 천재적인 능력을 가지고!!

 친구를 때리고, 월셋돈을 안내서 재산을 압수한 주인집에 돌을 던지고 자택연금을 내려도 싸돌아다니다가 잡히고, 주문을 잘못한 종업원에게 접시를 집어던지는가 하면, 그를 잡으러 온 경찰관에게까지 돌을 던진다. 맘에 안 드는 사람들의 그림을 그려 놀리고, 끊임없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하고 테니스 경기에 지고 분해서 결국 살인까지 저지른다.

이런 나쁜 남자인데도, 미술관을 나오며 사람들은 나의 절절한 감정과 카라바조의 무모했던 감정들을 추모한다.


나는 괜찮지 않지만, 그래서 인간이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인간이고 그래서 자주 분노한다.

너무나 인간적인 카라바조.  그걸 한치의 과장 없이 거짓 없이 그려낸 그를 추앙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를 인정하기로 단단히 결심하고 돌아가는  버스는 더 엉망이었다.  

20분을 기다리면 대기는 20분이 늘어나는 식이었다. 예상했던 대로 아무것도 예상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갑자기 연착되는 버스.... 그냥 가만히 기다리면 될 것을 다른 버스를 탄다고 다른 정류장으로 움직이다 결국 50분 만에 온  버스를 또 놓쳤다. 잠깐 들어가 몸을 녹이고 나오자는 식당에서 버스가 떠나가는 것을 보고 서둘러 나왔더니 버스는 또 정상적으로 연착되었다. (이게 바로 빌어먹을 머피의 법칙!) 결국 나는 버스를 타고 가자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또다시 온갖 핍박을  받다가 십자가에 못 박혔다.

오들 오들 떨며 버스를 기다리고 남편의 잔소리를 듣다가 결국엔 몸살이 나고 말았다.

'내가 너랑 같이 미술관을 오나 봐라!' '내가 버스를 타나 봐라!'  우리는 무기가 없어서 서로를 죽이지는 못했지만 둘 다 상처받았고 밤새 아팠다.

  열이 난다. 아프다. 그래, 인생은 내가 죽든, 네가 죽든, 죽어야 끝나는 거다.

아주 좋아 죽는 하루였다. 부라보~ 이게 인생이지,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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