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는 남편, 숨는 아이들
남편은 시장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이다.
성실하고 부지런한 것 말고는 부모도, 능력도 없던 남편을 쌀집을 하던 엄마가 사위로 삼아 성철 떡집을 운영하게 했다.
남편은 자기 이름을 딴 가게를 가지게 되자, 새벽부터 잠들 때까지 머슴처럼 일했다. 돈은 엄마와 왕십리 할머니가 다 가져갔다. 다들 바보 성철이라 불러도 남편은 허허 웃기만 했다.
“성철이 저 병신, 일은 지가하고 돈은 여자가 다 가져가잖아.”
아이고 빙신, 빙신—시장 남자들은 남편만 보면 눈을 찡끗거리고 입을 삐쭉거렸다.
그래도 성철 떡집은 점점 더 잘됐다. 생일이든 잔칫날이든, 명절이든 상관없이 성철이네 떡집은 시장에서 제일 먼저 문을 열었다. 왕십리 시장 앞에 대형 교회가 생기자 일요일마다 떡집은 더 바빠졌다.
돈이 벌리자, 엄마는 돈놀이를 시작했다. 시장에서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돈을 꿔주고 이자를 받았다. 돈이 돈을 벌었다. 남편을 빙신이라 놀리던 상인들도 더 이상은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그 무렵부터 남편은 술을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그리고 취해서 들어오면, 그동안 머슴 품삯이라도 받듯이 손에 잡히는 대로 몽둥이질을 했다.
“빙신, 빙신이라고 헐 때 니들도 비웃었지?”
눈이 뒤집힌 남편은 나를 보자마자 머리채를 잡았다. 처음엔 맞았다. 다음엔 아이까지 맞을까 도망쳤고, 아이를 숨겼다. 쌀독에 숨기고, 다락에 숨기고, 쓰레기통에 숨겼다. 술에 취한 남편이 들어오면 우리는 숨바꼭질을 하는 거야, 알겠지? 아이들이 겁먹을 까봐 놀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을 숨기다 몸을 피하지 못한 내가 심하게 맞은 다음 날, 남편은 멍든 내 허벅지와 얼굴을 보고 미안하다며 울었다. 그 뒤로 남편은 술을 끊었다.
살 만해지자, 고모가 집으로 들어왔다. 미국인과 결혼해 잘 산다더니, 이혼하고는 엄마네 이층 집을 비워 달라고 했다. 연세로 2천5백을 먼저 내밀었다. 마땅치 않아 하던 엄마도 돈 앞에서 고모를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세련되고 우아한 상류층 여자의 외모와 태도에 희재가 좋아했다. 영어를 잘했고 불어도 곧잘 했다.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려 다녔고 홈 파티도 갔다. 희재가 고모와 동반해서 외국인들과 어울려 놀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온 날은 다른 세상을 만난 것처럼 달떠 있었다. 엄마, 미국에서 성공하면 세계에서 1등이 되는 거래. 여기서는 1등 해도 돈 많은 사람에게 가려 안 보이지만, 미국은 아니래. 전 세계가 다 머리를 숙인대. 나는 꼭 미국에서 1등 해볼래.
고모가 우리 다섯 식구의 등에 올라앉아 날개를 달아준 것 같았다. 그래, MBA든 하버드든 어디든 날아가렴.
나는 허리를 숙여 아들의 머리에 미국 사람이 된것 마냥 키스를 했다.
외국에서 살다 들어온 고모는 외국 채권에 투자하면 열배로 불어난다며 시장 상인들을 꾀었다. 국밥을 팔던 희정 씨, 족발을 삶던 수원댁, 국수를 말던 장 씨까지… 아이들 학자금까지 싹 털어 투자했다.
처음부터 큰돈을 맡긴 건 아니었다. 고모는 처음엔 코인 회사에 취업했다고 하며 백만 원을 오백으로 만들어 줬다. 그 오백을 세 달도 안 돼 오천으로 불려줬다. 돈맛을 본 상인들은 너도나도 돈을 들고 고모 방문을 두드렸다. “나도 그놈의 코인 좀 사줘라, 아가.”
장사꾼들은 욕심이 많았다. 처음엔 재미로 1~2백을 하다가, 천 단위로, 그다음엔 억 단위로 불어났다. 사돈의 팔촌 돈까지 긁어모아 고모에게 맡겼다. 6개월 뒤, 시장 상인들의 돈을 몽땅 챙긴 고모는 먼지처럼 사라졌다. 그때부터 집안으로 상인들이 몽둥이를 들고 들이닥쳤다.
“내 돈 내놔라!”
돈통에 돈이 들어오자마자 상인들은 죄다 가져갔다. 집안은 매일 고함과 울부짖음, 난장판이었다. 미친년, 미친년—고모를 믿은 내가 미친년이지. 나는 젊은 여자와 눈 맞아 집을 나간 아버지와 그 피를 이어준 집안을 욕했다. 남편은 다시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새벽에 술에 취해 돌아오면 나는 또 맞을까 봐 남편 발밑에 엎드려 싹싹 빌었다.
“여보, 여보,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우리 아이들이랑 몰래 도망갈래? 희재는 의대에 가야 하고, 희수도 공부 잘하잖아. 우리 희영이까지 다 의사 만들어야지. 우리 여기서 떠나자. 아무도 모르는 데로 가자. 아이들 위해서라도….”
남편은 의연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때만큼은 남편이 존경스러웠다. 죄인인 나는 그 말을 믿고 따라야만 했다. 그때는 그게 아이들에게 더없이 좋은 교육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하늘에 맹세코, 그건 순수하고 선한 마음이었다.
“여보, 부모가 남들 돈 떼먹고 야반도주했다고 하면 애들이 뭘 보고 자라겠어? 의사가 되면 돈만 밝히는 돌팔이가 될 거야. 돈만 벌면 뭐 해? 사람이 돼야지, 사람이… 우리 희재는 사람 살리는 손을 가지고 태어났으니 뭐든 할 수 있어. 우리 아이들 보기 부끄럽지 않은 부모가 되자. 그래야 마음이 편하고… 그게 아이를 잘 키우는 일이야. 미안하지만, 우리 그 돈 죽을 때까지 갚아 나가자.”
남편은 나를 일으켰다.
왕십리 시장 한가운데서 우리는 다시 엄마와 떡을 만들었다. 그러나 갚아도 갚아도 빚은 줄지 않았다. 똑똑했던 희재도 결국 고등학교를 마치고 반도체 공장에 취업했다. 아이 월급의 절반은 빚 갚는 데, 나머지는 생활비로 들어갔다. 희재는 일 마치고도 악착같이 공부했지만, 어느 날 코피를 흘리며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 병원에 갈 돈도 없었다. 희재가 깨어나자, 남편은 책을 모두 묶어 고물상에 팔았다. 희재는 넋 나간 사람처럼 공장으로 돌아갔다. 의대에 가려던 오빠가 공장에서 빚을 갚는 걸 본 희수도 공부를 포기했다. 희영이는 아예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장사를 도왔다.
지금 돌아보면, 나와 남편은 아이들을 위해 도망치지 않은 게 아니다. 가난해도 자존심을 지키겠다고, 그 욕심 때문에 아이들까지 희생시켰다. 남편을 닮아 착해 빠진 희재와 희수, 희영이를 보면 숨이 막힌다. 왜 여기 들러붙어 죄인처럼 살아? 평생 남의 빚을 짊어지고! 나가! 꼴도 보기 싫어!
나는 오늘도 술을 마신다. 주정을 부린다.
남편을 때린다. 아이들은 숨는다. 살림은 부서진다.
나는 남편을 닮아가는 내가 서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