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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 빠진 May 04. 2020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유네스코 문화유산 도시,  쿠바  트리니다드

 



태어난 모든 것들은 기약조차 없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라시안- 



 



강행군 탓인지, 한국에서 가져온 마음의 병 때문인지 트리니다드에 도착하자마자 지독한 감기를 앓기 시작했다. 비상약에 기대어 며칠 밤을 악몽과 함께 끙끙 앓았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병원을 찾았지만,  모든 게 부족한 그곳에선 병원마저 약이 부족했고 약이 다시 채워질 기약도 없었다.






쿠바도, 여기까지 온 나마저도 원망스러웠다. 아픈 몸을 이끌고 숙소 앞에 도착하니 여자 꼬마가  스마트 폰을 달라했다. 숙소 선술집 주인장의 아이였다. 스마트폰 때문에 아이는 줄곧 내 옆에 붙어있었는데, 이유가 어찌되었 건 홀로 여행자 곁에 있어준 꼬마가 고마웠다.

 

약 몇 알을 얻기 위해 산삼을 찾는  심마니처럼  병원을 매일 오갔지만 늘 허탕이었다. 숙소에 돌아올 때면 어김없이 꼬마는 나를 기다렸고 스마트폰을 얻었다. 나는 꼬마 옆에서 시름시름 앓았다.  시간이 흐르자 몸은 점차 나아졌고 일주일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내 손에 약 몇 알이 놓여졌다.

 




인간이 발견한곳 중 가장 아름다운 트리니다드


 감기가 안개처럼 걷히자  트리니다드 풍경이 보였다. 콜럼버스는 트리니다드를 보고 인간이 발견한 곳 중 가장 아름답다고 말했다. 실제로 트리니다드는 쿠바의 매력적인 도시로 손꼽히며, 1988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18~19세 게에 걸쳐 조성한 이 도시는 설탕과 노역을 기반으로 부를 쌓았고 전성기를 맞는다. 스페인과 쿠바 각지의 부호들은 돈을 좇아 이곳으로 와  호화로운 건물을 지었다. 현지인은 조상이 살던 건물에서 삶을 이어 간다. 도시의 도로에는 당시에 만들어진 그대로 대부분 돌이 촘촘히 박혀있다.


트리니다드의 압권은 단연 노을이 내릴 때다. 제 몸을 태워 지평선으로 던지는 해는 온 마을에 용암 같은 선홍빛 파도를 뿌려 극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불같은 해는 수백 년간 매일 마을을 붉게 만들고 극적인 이별을 고했으리라–  





아무리 작더라도 세상에 아프지 않은 이별은 없다.


트리니다드의  마지막 밤. 아쉬운 마음에 꼬마에게 작별을 고할 할 겸 선술집을 찾았다. 꼬마는  어김없이 스마트폰에 빠져들었다. 주인장에게 이별 인사를 전하자, 주인장은 꼬마에게 이별을 전해 주었다. 갑자기 아이는 세상의 모든 눈물을  품은 듯 오열했다. 스마트폰이 아쉬운 건지, 나와의 이별이 슬픈 건지는 모르겠지만, 혼자 아파 끙끙  앓았던 일주일이 떠올라, 내 옆을 지켜준 작은 존재의 고마움에 나도 눈물이 나고  말았다. 주인장만 당황해하며 우리를 바라보았다.  





세상에 마음 아프지 않은 이별이 어디 있으랴. 이별이 정해진 여행의 작고 사소한  만남까지도 이렇게 절절한데, 마음 두었던 이와의 이별이,  잊히지 않는 그 마음은 오죽할까.  어쩌면 돌아올 걸 알면서도 여행을 떠나는 건, 수많은 이별을 할걸 알면서도 여행을 떠나는 건, 이별의 아픔을 견디기 위한 백신 같은 마음 근육을 얻기 위한 건 아닐까.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 따위 없다. 참 엿같다.  질질 짜며 보고 싶으면 보고 싶어 하고 아프면 아파하는 수밖에 없다. 약을 먹어도 일주일, 먹지 않아도 일주일이면 낫는다는 감기처럼 이별도 시간만이 약일뿐. 노을이 지나 깊은 밤이 찾아오면 어김없이 해는 떠오른다. 


심연 깊이  빠져 버린 마음은 호수에 빠진  오래된 보물과 같다. 잊어버리거나 계속 찾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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