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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 빠진 Mar 10. 2020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아

노인과 바다- 코히마르



노인과 바다의 코히마르 


쿠바의 수도 아바나 동쪽에는 ‘전망이 좋은 곳’이라는 뜻을 가진 작은 어촌 마을 코히마르(Cojimar)라는 곳이 있다. 코히마르는 산타클라라(santa Clara)처럼 체 게바라 혁명의 흔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트리니다드(Trinidad)처럼 마을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것도 아니지만, 쿠바 여행의 마지막 성지라 불리며 많은 여행객이 찾는다. 이는 오직 어니스트 헤밍웨이 때문이다. 소설 <노인과 바다>의 배경이자 모티브가 된 곳 코히마르.



illust by_ nasa 빠지ㄴ




하바나 프라도 거리에서 58번 버스에 몸을 실었다. 얼마나 가지 않아 아바나의 고풍스러운 스페인식 건물은 자취를 감추고 드넓고 푸른 카리브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끝없는 해변은 멈춰진 필름처럼 느껴졌다. 버스 안 사람들도 미동 없이 창 밖만 응시했다. 10여 분만에 소박한 마을 코히마르에 도착했다. 코히마르에서 가장 먼저 여행자를 환영해준 것은 헤밍웨이도, 카리브해의 푸른 바다도 아니었다. 대신 뜨거운 태양이 정수리를 강렬하게 내리쳤고, 남루한 차림의 두 할아버지가 기타를 들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오랜만에 여행객을 본 탓인지 노래와 박자가 맞지 않았다. 여행객의 성지라 불린다고 하나, 코히마르의 정류장엔  할아버지들과 나 그리고 불같은 태양뿐이었다.





헤밍웨이의 마을 


조금 걸어가자 헤밍웨이의 흉상이 보였고 그 앞에 한 청년이 조각처럼 굳은 자세로  앉아있었다.


미국의 대문호이며 현대 소설의 개척가로 칭송받는 헤밍웨이는 쿠바를 2제의 고향으로 여길 정도로 쿠바를 사랑했다. 그가 쿠바에 머문 시간은 무려 28년이나 된다. 그는 대표적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 <노인과 바다>를 모두 쿠바에서 썼다. 하지만 1960년 쿠바 혁명으로 추방되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원고가 있는 쿠바로 돌아가지 못해 우울증에 시달렸다. 결국 1년 뒤인 1961년 그는 스스로 총을 입에 물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바다를 건넜다. 만약 추방되지 않았다면 그는 쿠바에서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발걸음을 재촉해 마을로 몸을 옮겼다. 소설에서 본 어촌을 기대했으나, 어디서도 어촌 마을 분위기는 찾을 수 없었다. 엉성하게 만들어진 방파제에서 낚시에 몰두하고 있는 몇 명의 강태공들만이 보였다. 그들 옆에 앉아보았다. 강태공 바구니에는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전부였다. 물고기들도 더위에 지쳤는지 움직임이 없었다. 기분 탓인지, 아름다운 풍경도, 노랫소리도, 물고기도, 사람도 모두가 정지된 것만 같았다.


항구로 걸어갔다. 작은 항구의 배들은 하나 둘 출항을 준비하고 있었고, 한 청년이 작은 건물 안에서 청새치로 보이는 커다란 물고기를 해체하고 있었다.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과 사투를 벌이던 그 물고기였다. 소설에 묘사된 것처럼 대단하게 큰 물고기는 아니었다. 바로 옆 해변에서는 두 노인과 소년이 함께 그물을 던지고 있었다. 헤밍웨이도 이곳에서 저들의 평범한 일상을 보았으리라.

 



이보다 멋질 수 있을까?


정지된 이 마을을 움직이게 하고 싶었다. 아니 내 마음이 움직이고 싶었다. 커피보다는 진한 모히또 한잔이 간절했다. 헤밍웨이 단골집으로 유명한 라 떼레사다(La Terraza)에 갔다. 소설 속에서 소년 마놀린이 노인 산티아고를 위해 커피를 받으러 왔던 식당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고풍스러운 갈색 나무로 만들어진 바와 벽을 가득 채운 술병들이 보였다. 오전 시간이라 식당 안에는 직원과 기타를 튕기는 두 남자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정갈하게 머리를 넘기고 흰색 셔츠를 입은 무표정의 바텐더가 나를 쳐다보았다. 홀로 바에 앉아 헤밍웨이가 사랑했던 모히토를 주문했다. 헤밍웨이는 낚시하지 않는 날에는 이곳에서 모히토를 마시며 글을 썼다.




 


창문 밖에서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왔고, 가게 안에 앉아 있던 남자가 누구를 위해서 노래를 불렀다. 헤밍웨이도 이른 오전부터 이곳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모히토를 마셨겠지. 누군가 술은 아침에 마시는 술이 최고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술 때문일까. 세상이 드디어 움직이는 거처럼 느껴졌다. 노래를 들으며 아침 술잔을 기울이자 헤밍웨이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일상이 소설처럼 극적인 누군가의 삶이라고. 고요한 바다에서 사투를 벌이는 노인의 삶이, 사투를 벌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라고 말이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어도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헤밍웨이의 말처럼, 수많은 고통을 이겨내며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는 삶은 결국 패배 할 수 없는 법.


혹자는 코히마르는 특별히 볼 게 없는 곳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면 어떤가. 이곳에서는 모두가 소설 속의 노인이 되고 헤밍웨이가 되는데, 이 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illust by_ nasa 빠지ㄴ



힘내요! 그대여.


-헤밍웨이는 <노인과 바다>로 1954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이 소설의 주인공(어부 산티아고)의 실제 모델이었던 그레고리오 푸엔떼스(Gregorio Fuentes)는 2002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코히마르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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