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행복해지고 있는가? 불행해지고 있는가? 그리고 한국은?
전 세계인은 행복해지고 있을까? 아니면 불행해지고 있을까?
질문은 간단하지만, 답하기까지의 과정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데이터의 축적과 추적을 통해서만 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10년 넘게 축적된 자료들을 통해 행복의 변화 추이를 추적할 수 있다. 그동안 축적된 세계행복보고서가 없었다면, 행복을 연구해온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먼저 삶의 만족도부터 살펴보자. 삶의 만족도는 보통 인지적 행복(Cognitive well-being)이라고 부른다. 인지라는 말이 어려울 수 있는데, 인간의 기억에 기초한 평가라고 보면 된다. 한 개인의 기억들을 종합해 봤을 때, 좋은 일들이 많았던 것 같으면, 내 삶에 대한 평가가 좋아질 것이고, 나쁜 일이 많았던 것 같으면 내 삶에 대한 평가가 나빠진다. 여기 핵심은 '좋았던 것 같은지, 나빴던 것 같은지'이지 '실제로 좋았는지, 나빴는지'가 아니다. 그래서 인지적 행복이다. 실제 경험들을 수학적으로 계산해서 내린 평가가 아니라, 개인의 주관적 가중치가 반영된 행복인 것이다. 이것에 대한 측정은 내 삶의 흔적들을 회상해볼 때, 내 삶을 아주 좋다고 평가할수록 10점에 가깝게, 내 삶이 정말 최악이었다고 평가할수록 0점에 가깝게 평가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그림 1(Cantril Ladder)을 살펴보자. 그림에 보면, 최근 3년 간 급격하게 증가하는 그래프가 있고(옅은 남색), 최근 5~6년 간 급격하게 감소하는 그래프(진한 남색)가 있다. 급격한 증가를 보이는 그래프는 인구에 가중치를 두지 않은 그래프다(Non-population weighted). 이는 그냥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그래프라고 생각하면 된다(옅은 남색). 그리고 이 그림을 보면 전 세계인의 행복이 최근 3년 간 증가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인구에 가중치(Population weighted)를 두면 어떻게 될까?(진한 남색) 단순한 국가별 평균 점수가 아니라, 인구비율을 따져서, 인구비율에 대비해 삶의 만족도가 높은 사람이 많은지, 인구비율에 대비해 삶의 만족도가 낮은 사람이 많은지를 고려하여 가중치를 부여하면 어떻게 될까? 그랬더니 양상이 전혀 달라진다. 최근 5~6년 간 급격한 감소추세를 보이는 것이다.
인구에 가중치를 두었을 때와 두지 않았을 때, 급격한 차이를 보이는 이유는 특별히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 국민들의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추세이거나, 그대로이거나, 증가하더라도 아주 소폭으로 증가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중국은 지난 5년(2008-2012)에 비해 최근 3년(2017-2019)의 삶의 만족도가 0.251포인트 증가했다. 그러나 인도네시아는 같은 기간동안 0.004포인트 감소했다. 미국은 같은 기간동안 0.187포인트 감소했다. 브라질은 같은 기간동안 0.472포인트 감소했고, 심지어 인도는 같은 기간동안 1.216포인트 감소했다.
인구가 많은 5개 나라, 중국, 인도, 미국, 인도네시아, 브라질(China, India, the United States, Indonesia, and Brazil) 중 중국을 제외한 모든 나라의 삶의 만족도가 감소하는 추세인 것이다. 이 때문에 인구에 가중치를 두어 도출한 삶의 만족도는 급격한 감소를 보이게 된다.
그래서 더 정확한 판단을 위해서는 위의 다섯 나라를 제외한 인구 가중치 그래프(Population weighted (excluding top 5 largest countries)가 필요하다. 그것이 연두색 그래프다. 연두색 그래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전 세계인의 행복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특히 최근 3년 간에는 완만한 증가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삶에 대한 평가만을 인간의 행복이라고 보긴 어렵다. 순간순간 경험하는 감정(Affect)도 행복이다. 소위 감정적 행복(Emotional well-being)이라고 부르는 영역이다. 경험에 대한 반응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어떤 경험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지만, 부정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다. 또한 다양한 경험들에 주로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고, 주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 이렇게 정의된 행복은 삶의 만족도와는 다른 양상을 보일 수 있기에 별도로 측정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세계행복보고서는 "어제 웃을 일이 있었습니까?" 등의 질문에 네(숫자 1로 코딩됨), 아니오(숫자 0으로 코딩됨)로 답변하게 하면서 긍정 정서(Positive affect)를 측정한다. 또한 "어제 걱정할 일이 있었습니까?" 등의 질문에 네(숫자 1로 코딩됨), 아니오(숫자 0으로 코딩됨)로 답변하게 하면서 부정 정서(Negative affect)를 측정한다.
그림 2를 보시면 알겠지만, 긍정정서(Positive affect)는 약간 내려가는 추이이고(오른쪽 그림), 부정정서(Negative affect)는 증가하는 추세이다(왼쪽 그림). 이는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일들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하기보다 부정적인 반응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특히 부정정서는 최근 10년 간 계속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고, 인구 가중치를 두든 안 두든, 인구가 많은 나라를 빼든 안 빼든 굉장히 일관성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전 세계인의 부정정서 경험 증가 추세가 높은 신뢰도를 가지는 데이터라는 의미다.
부정정서는 3가지 세부 요소를 가지는데, 하나는 걱정(어제 걱정이 많았습니까?), 슬픔(어제 슬펐습니까?), 분노(어제 화가 났습니까?)에 '네/아니오'로 응답하면서 측정된다. 그림 3을 보면 전 세계인들의 걱정이 늘고 있고, 슬픔이 늘고 있고, 분노가 늘고 있다는 것이 한 눈에 들어 온다. 아까 말했듯이 인구가 많은 나라를 넣거나, 빼는 것, 인구에 가중치를 두는 것과 안 두는 것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 굉장히 일관성 있게 최근 10년 간 걱정, 슬픔, 분노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데이터는 전 세계인이 조금 불행해지고 있다는 조심스러운 결론을 도출하게 한다(코로나-19와는 관계없다. 이번 보고서는 코로나-19 발생 이전까지의 데이터이다).
그럼 한국은 어떨까? 한국인의 행복은 증가했을까? 감소했을까?
그림 4는 행복 변화도 순위를 보여준다. 특별히 우리나라가 있는 부분만 잘라낸 것이다. 그림 4의 세 번째 칸에 보면, 한국(South Korea)이 있다. 왼쪽에 있는 105는 순위이다. 즉 한국은 행복 변화량 순위에서 105위이다. 140개국 중 105위니까, 하위권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즉 한국인은 지난 5년에 비해 최근 3년에 조금 불행해 졌다(0.145포인트 감소). 다시 말씀드리지만, 이는 코로나-19 이전 통계가 기준이다.
내년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벌써부터 내년 보고서를 보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