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살이 되다니
이상한 용기가 솟았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내 인생을 살 준비가 된 것 같았다. 가장 먼저 한 것은 구직 어플 켜기. 이것저것 따져 일자리를 구하자니 돈이 안 됐고, 돈을 먼저 생각하며 추려보자니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주 6일 12시간 교대 근무까지는 이제 감당이 안 됐고,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너무 지쳤다. 사무직에 지원하려 자기소개 이력서를 쓰다 채울 수 없는 빈칸에 수치스러워 관뒀다. 내가 가진 것은 전문대 졸업장과 자격증 몇 개, 2종 보통 운전면허, 학자금 대출, 정신병이었다.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오면 하고 싶은 것을 골랐다. 그것에 맞춰 내가 할 일들을 계획하는 게 나의 즐거움이었다. 깨달은 것은, 계획은 소용이 없다는 거였다. 그림을 그리는 게 좋아서 디자인을 배웠는데, 이제 포토샵으로 배경을 지우는 것도 어렵다.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이기적으로 굴지 말라는 엄마의 말에 취직을 했는데,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이력이 되었다. 늦게라도 나의 길을 가고자 남들은 졸업할 나이에 대학을 갔으나 남은 것은 교수님과 담배를 피우고 동기들과 술을 마신 기억뿐, 뭘 배웠는지 생각해보면 그저 그랬다.
졸업 후 전공을 살리고 싶었으나 자꾸만 취직을 해야 한다는 엄마의 말에 미용실 매니저 일을 시작했지만, 그때 사람에 대한 애정과 기대를 모두 잃었다. 정신도 잃어 번아웃 역풍을 맞고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었다. 그런 것은 이력에 필요가 없다. 어떻게 포장을 하느냐에 따라 다른 경험이 되겠지만, 자신이 없었다. 간단히 쓴 이력서를 여러 장 준비해 가방에 넣어두고 여러 군데 면접을 봤다.
대부분의 사장님들은 내 주민번호 앞자리를 보고 나이가 많네? 하셨다. 지금은 뭐 해요? 쉬어요? 그 전에는 뭐 했어요? 왜 이렇게 오래 쉬었어요? 무슨 일 있었어요? 내가 벗어났다고 생각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모두 붙잡고 있었기 때문에. 면접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곱씹었다. 뭐 했다고 벌써 30년이나 지난 거지. 왜 또 벌써 5시지.
별 기대 없이 약국 면접을 보러 갔다. 본 날 합격이 결정됐다. 갑자기 취직이 됐다. 당장 다음 주부터 출근이었다. 전처럼 떨리거나 불안하지는 않았다. 출근하기 전 남은 시간 동안 부지런히 술을 마셨다. 친구들과, 가족과, 혼자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잘 지낸다는 것을 차분히 알렸다. 조금 취한 상태였기 때문에 차분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으나 암튼 간에.
그때 나를 만났던 친구들에게는 사실 내 전부를 알려주지 않은 채였다. 가끔은 숨고, 많은 거짓말을 하면서 지냈다. 술을 먹고 하는 말의 절반은 늘 마음에 없는 말이나, 거짓말이었으나 그게 반복되다 보니 그 말들이 진정 내가 된 것 같았다. 그 친구들은 나의 소식을 반가워했고, 내가 잘 지내길 바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눈물이 나 길에서 조금 울었다. 어쩌면 많이. 적어도 역에서 집으로 가는 25분 동안에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게 이 시대의 좋은 점이었다. 나의 절반은 가릴 수 있다는 것.
우는 얼굴을 들키기 싫어 집에 들어가자마자 세수를 했다. 마지막 술자리를 끝내고 돌아온 날에는 조금 더 울었다. 내일이 출근이었다.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당장 날짜가 다가오자 불안이 치솟았다.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첫날부터 지각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여유 있게 출발했다. 예상보다 한 시간을 일찍 도착해서 근처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우다가 출근을 했다. 긴장한 탓인지 숨 쉬는 게 조금 버거웠다.
첫 번째 점심시간을 지났고 첫 번째 퇴근을 지났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신났다. 아직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적어서인지는 몰라도 쉽고 재미있었다. 더 배우고 싶었다.
한 주가 지났고 이 주차를 맞이하면서 조금씩 일에 익숙해지고 있는 내가 좋았다. 배워나갈수록 할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 이렇게 표현해도 될지는 모르겠다. 짱이었다.
한 달이 지났고 집을 나서면서 출근이 싫지 않은 게 놀라웠다. 이게 가능했던 거였다니. 일을 하러 가면서 즐겁다니. 그건 아마 내가 많이 신난 상태였거나, 일을 덜 했다는 뜻이었을 거다. 거의 그렇다. 일이 편하거나 좋으면 덜 하고 있거나 즐기고 있는 상태다. 내가 덜 하고 있는 만큼 누군가는 더 한다. 한 사람이 2인분을 하면 한 사람은 제 몫을 하지 않아도 대충 굴러간다는 말이다. 융통성 있게 쉬엄쉬엄 요령 있게 일을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기꺼이 2인분을 하는 사람이 있다. 때로는 융통성이 2인분을 멍청이로 만든다.
중요한 사실은 그 멍청이들이 세상이 돌아가게 만든다는 것이다. 사람 사이에 기댈 곳을 만들어주는 것은 열심히 하는 그들이다. 그들이 자신의 몫 이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쉬엄쉬엄 할 수 있는 건데.
남에게 피해 주기 싫고, 실망시키기 싫어 거절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한다. 그 바보 같음이 자신이 받고 있는 사랑이고, 배려라는 걸 모르는지. 그러면 너도 깨끗하지 않은데 왜 나만 나쁘냐고 말하겠지만.
점심시간에 밥을 먹고도 시간이 남으면 건물 건너의 로데오 거리 나무 밑 벤치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동료들과, 때로는 혼자. 봄의 햇볕과 바람이 따뜻하게 내려앉았다. 사원증을 걸고 무리를 지어 걷는 사람들과 가방을 메고 손을 잡고 가는 사람들, 유니폼을 입은 채 인상을 쓰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들. 그 사이에 내가 있었다. 약국에서 신는 슬리퍼를 신고 나무 밑 벤치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직장 동료들과 몇 마디 이야기를 하는 것도 좋았다. 그들과 있으면 내가 더 밝고 좋은 사람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로. 그러면 동료들은 말했다.
“그냥 다른 것뿐이야. 굳이 안 되는 걸 하려고 할 필요 없어.”
이게 아량이다.
퇴근 시간은 언제나 정확히 지켜졌다. 늦어질 때도 있었지만 10분 이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동료들은 이제 막 배우기 시작한 나를 배려해줬다. 때에 맞게 할 수 있는 일을 넘겨주었고 그것만 잘 해내길 바랐다. 그럴수록 나는 더 신이 났다. 더 열심히 해야지, 열심히 해서 얼른 1인분을 해야지. 퇴근 시간이 되면 신발을 갈아 신으라고 해줬고, 점심시간이 되면 꼭 손을 씻으라고 해줬다. 내가 어려워하고 있으면 이건 이렇게 하면 돼, 하고 타일러줬다. 사람들과 가까워지는 것보다 일을 배우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던 내게 자연스럽게 다가와 줬다. 그게 느껴질 때마다 마음을 조금씩 더 열고 싶었는데.
입사 한 달이 지나고 진료를 보러 갔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선생님은 몇 가지 질문을 하시고 얘기를 들어주셨다. 아무 일이 없는데도 불안했고 갑자기 무슨 사건이 생길 것만 같았다. 내 인생이 이렇게 즐겁고, 조용할 리가 없다고 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이상하다고. 선생님은 늘 그렇듯 괜찮을 거라고 말씀하셨다.
퇴근 지하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 끼어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손잡이를 잡고 있지 않아도 넘어질 수가 없을 만큼 많은 인파 속에 내가, 방 밖으로는 나가지도 못했던 내가 있다는 게. 가끔은 참견하고 싶었다. 퇴근하세요? 하하 저도요. 내일도 출근을 해야 해요. 신나지 않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보면 내 옆에 끼어있던 사람이 나를 째려봤다. 밀지 말라, 는 의미였겠지만 죄송하다는 의미로 빵끗 웃었는데. 마스크를 쓰고 있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입만 웃었기 때문에 나는 그냥 쳐다본 사람이 됐다.
내가 내리는 정거장은 환승 역이었다. 칸 안에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내렸고 그들을 따라 조금씩 움직이다 보면 바깥이었다. 교통카드를 찍고 출구 밖으로 나와야 비로소 퇴근이었다.
봄이 끝나가고 있었다. 잠깐 피었던 벚꽃이 봄비 한 번에 금세 바닥으로 떨어졌다. 바닥에 고여있는 꽃잎들은 또 바람에 날려 살살 다른 곳으로 움직였고 어느 날 길은 깨끗해졌다. 물론, 새벽에 길을 청소하시는 분들 덕분이겠지만은. 어쩐지 나는 좀 낭만적으로 생각하고 싶었다. 계절이 다가오고 떠나가는 것. 그 가운데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 늘 같은 속도로 굴러가고 있는 사회의 궤도에 다시 나를 올려두었다는 것. 직장이 있고 월급을 받는다는 사실이 내게는 정상인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평범함, 이라는 기준에 끼어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안정으로 다가오는지.
어릴 때 내게는 평범하다는 것이 모욕적인 말이었다. 평범하다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는 거니까. 나는 조금 다르고 싶은데 다른 사람과 같다는 말에 자존심이 상했다.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꼭 뭔가가 되리라. 뭐가 돼도 되리라. 하지만 살아가면서 평범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이루기 힘든 성취인지 깨달았다. 직장이 있고, 집이 있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연인이 있다는 것은. 그 모든 것과 섞여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이지, 누구나 하는 일 같아도 누구나 할 수 없다.
습관처럼 땅을 보며 걷다가 하나 떨어져 있는 꽃잎이 보여 살짝 피해 걸었다. 나까지 그 꽃잎을 밟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는 밟겠지만 그게 내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밟지 않게 되길 바랐다.